파리3구 집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불랑제리가 있었다. 떵플(Temple)역 앞에 있는 모노프히에서 장을 보고집으로 오는 길엔 트라디시옹 드미 바게뜨(tradition demi baguette)하나를 꼭 사왔다. 내가 찾지 못하는 것인지 바게뜨만큼은 프랑스 것과 같은 걸 한국에서 도저히 찾지 못하겠다. 어느 바게뜨도 그 텍스처, 맛.이 아니라서 파리의 바게뜨가 생각날 때면 머릿속에 떠올리곤 그렇게 음미하곤 한다.
파리 부엌에서 내린 커피와 트라디시옹 바게뜨와 버터, 와인 한 병이면 나는 충분했다. 행복해했다. 요리하는 걸 워낙 좋아하니 산책 겸 집에서 7구 봉막셰까지 걸어가 예쁘게 포장돼 있는 식재료들을 구경하다 필요한 게 있으면 사기도 하고 돌아오는 길엔 6구 뤽상부르크 공원도 들렀다가 입구 들어가기 전 옆 미술관에 들러 미술 전시를 보고 돌아오곤 했다.
시간이 벌써 한참이 흘렀는데도 그 시절은 분명 아름다웠던 시절이었다. 내게 방황의 계절이기도 했지만 지나고보니 방황은 아름다운 것이었다. 값진 것이었다. 선물이었다.
오뗄 드 빌을 지나 센강까진 집에서 걸어서 15-20분 거리였으니 센강에서의 밤 산책은 내게 또 다른 낭만이었다. 13구 방향으로 걸어갈 때도 난 꼭 센강 아래로 걸어갔다. 루브르나 오르세, 개선문, 15구로 향하는 방향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여름엔 타는 햇살이. 겨울엔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과 빗방울이 내가 가는 길에 친구가 되어주었다. 실은 그때도 나는 사색과 사유를 밤낮 가리지 않았었다. 그냥 말없이 걸었던 수많은 나날들.
그때도 뚜벅이였고 지금도 뚜벅이인 걸 보면, 사유와 사색의 삶에서 뚜벅이는 어쩌면 필연인지도 모르겠다.
한 생각 일으켜지면 우수수 떨어지는 은행잎처럼. 나는 이토록 할말이 많아진다. 절로 손이 움직이는 걸 알아차릴 때면 참 신기한 노릇이다. 글은 쓰는 게 아니라 써지는 것이구나.싶은 것이. 내 영혼이 쓰는 것이 아닐까.하는 신비로움이 있다.
좀 전에 바게뜨 하나를 사서 나오면서 일으켜진 것에서 그 시절 파리 이야기로 자연스레 흐르는 건 이토록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니 나의 모든 추억, 그리고 경험을 사랑할 수밖에.
휘뚜루 마뚜루인 것 같으나 내 안에선 나도 모르게 고도로 계산된 맛.이 아닐까.하는 나의 이국적 레시피는 매일 업데이트 된다. 절로 만들어지니 어뜩하나.하면서 열심이다. 거센 바람을 가로 질러 마트에서 장보고 나오면서 동네 빵집에 들렀다. 이름이 사워도워 바게뜨인데 분명 파리의 것이 아니었지만 하나를 사왔다.
갓 나와서 온기가 전해졌는데 집에 와선 차갑게 식힌 뒤 바게뜨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며칠 전 만들어 둔 라구 소스를 넣어 샌드위치 4개를 만들었다. 3개는 언니네로 가져다 줄 것이고 하나는 저녁으로 내가 먹을 참이다. 요리하고 나면 꼭 나누고 싶어진다.
실은 지나온 모든 계절이, 시절이 꿈같다. 분명 순간마다 경험한 것일텐데 텅빈 것 같은... 설명하기 어려운 기시감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저러나 소용없는 아쉬움인 것이다. 이미 지나갔고 그렇게 사라졌고 스러져간 지난 나 그리고 지난 시절 인연들, 지난 시절들에 대하여.
지금 이 순간.이란 것도 실은 존재하는 걸까. 금세 지나버리는데.
그러니 영원한 지금 이 순간.이라는 건 실체 없는 것이겠다.
붙잡을 것 없는 이유다.
이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let it go. let it be.가 되는 것.
이것이 지금 이 순간을 산다는 것에 가장 가까운 설명이 될지도 모른다.
트라디시옹 바게뜨를 다시 만나게 되면,
나는 어떤 감상이 들까? 그런 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