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이야기

by Aarushi

본래 먹성이 좋았다. 맛있는 걸 워낙 좋아했고 잘 먹었다. 여전히 아빠 휴대전화엔 내가 <꽃돼지(하트)>로 저장돼 있다. 조카는 할아버지 핸드폰에 꽃돼지.가 뜨면, "초아 이모다!."한다. 아빠는 장난스럽게 절대 바꿀 일이 없다고 하신다. 놔두라고 하신다. 내게 휴대전화가 생긴 후로 바뀐 적 없는 꽃돼지.다. 어릴 적엔 키가 크려고 그랬던 건지. 큰 키는 아니지만 165cm인데 자매들 사이에서 그래도 작지 않은 건 아마 잘 먹어서지 않았을까.


지금도 여전히 잘 먹지만, 하루 두 끼 정도면 충분하다. 체질이 바뀐 것인지. 맛있는 음식을 적당양으로 잘 먹는다. 과식하지 않기. 군것질 하지 않기.를 나름 잘 실천하고 있는데 요리하다보면 중간중간 간도 보고, 음식 냄새가 배다보니 맛있는 걸 두고도 그리 과식하지 않게 된다.


나의 경우 역설적이게도 요리하다보니 음식에 대한 자기조절 능력이 생겼다. 적당히를 알게 되었다. 요리는 왜 이토록 날 편안하게 할까? 안정되게 할까? 즐겁게 할까? 설레게 할까? 신나게 할까? 흥분되게 할까?... 매 끼니마다 밥 짓는 건, 성가신 일이 아니다. 내 몸 안에 들어가는 음식은 내가 직접 선택하고 보살피고 싶은 마음인데, 건강을 챙기는데 가장 큰 건 음식이 아닐까. 수면, 음식, 운동... 이 삼박자가 실은 다이겠다.


영양제를 먹지 않는다. 일부러 안먹겠어.하는 것은 아니고, 어떤 대단한 지식이나 철학이 있어서도 아니고 지금까지 영양제 없이 살아왔고 영양제를 사는 돈으로 좋은 올리브 오일, 버터, 소금, 비니거를 사용하고 신선한 식재료들을 사는데 쓰는 것이 내겐 더욱 직접적으로 유익할 거란 생각에서다.


주변에서 영양제를 하나도 챙겨먹지 않은 사람은 아마 나뿐일 것이다. 주변에선 유산균만이라도 먹어야 한다고 하는데 아직은 별다른 이슈가 없다. 잘 자고 잘 먹고 잘 배설하면 되는 일. 무튼 지금의 나는 일상에서도 이토록 아날로그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영양제를 먹어야 겠다.싶을 땐 언제든 사서 챙겨 먹으면 되는 일이다.


"정말 감사해야 해요."라는 말을 마치 제 3자가 나에게 건네듯 시시로 말하곤 하는데, 정말이지 아직 이렇게 건강한 것만으로, 무탈한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정말 감사해하고 있다. 건강하지 않으면, 아파 허덕이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싶다.


내 레시피엔 올리브 오일이 많이 들어간다. 모든 요리에 들어가는데 좋은 올리브 오일이 있으면, 소금과 후추만으로 간해도 맛있는 요리가 나온다. 부엌을 보니 지금 내 부엌 찬장엔 설탕이 없다. 꿀이나, 레몬, 라임, 오렌지, 자몽, 제주 귤이 있으면 제주 귤을 짜서 만든다. 사방 널린 것으로, 내 냉장고에 있는 갖은 식재료들로 이국적인, 새로운 맛.을 내는데 관심이 있다. 설레한다.


오래 전 퇴사하고 곧바로 떠난 스페인 여행에서 눈이 휘둥그레져 돌아왔다. 올리브 오일 종류가 이토록 다양한 것에 놀랐고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신이나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요리를 해야지.하는 결심이 있었어서 스페인 여행은 무척이나 고무적이었다.


그 이후 여러 차례 음식을 선보일 기회들이 있었다. 광화문, 을지로에서도 있었고 이태원 회나무길에서 있었던 오프닝 파티에선 냉파스타가 인기 있었다. 레시피를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파스타를 좋아해서 자주 만들었다보니 잘하는 것도 파스타가 되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 싶다. 어떤 재료라도 맛있고 건강한 수프를 만들 수 있을 것 같고 파스타, 샐러드, 샌드위치, 오븐 요리에 능숙하다.


실은 음식이 맛있다는 것도. 절로 드러나는 것이겠다.


요즘 나의 일은, 그동안의 요리들을 레시피로 한 번 정리해보는 것이고 새로운 레시피를 만드는 일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다. 어디서 돈이 나오지 않는 것인데도 이토록 신나고 즐겁다. 룰루랄라. 음악과 함께 요리할 때, 혼자서 잘도 논다. "그래서 진짜 중요한 건 뭐다? 과정!!."이런다.


나는 알고 있다. 내가 하면 기분좋아지는 것들, 설레는 것들, 행복한 것들, 몰입하게 되는 것들. 그렇담 해야지. 해야할 시간인 것이다.


눈도 오고 진눈깨비가 내 얼굴에 살포시 내려 앉는다. 마치 안녕.이라고 인사하는 듯하다.

꼭 "어디 네 마음대로 한 번 해 봐! 뭘 망설이고 있는 건데?"

무심하게 이 한마디 툭 던지고선 내 뺨위에 녹아 사라졌다.


내년이면 서른 여덞.

마흔이 닿을 듯 말듯 그러면서도 여전히 아직 닿지 않은 서른 후반이라는 시점에 대하여ㅡ

까짓 거 서른 초반의 나를 좀. 그때의 초아 좀 다시 소환해 주겠니?


요리는 삶이다.

요리하면 사는 맛이 난다.

요리하면 행복해진다.

요리하면 사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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