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을 가지 않은지 정말 오래다. 염색도 집에서 하고 머리에 변화를 주고 싶으면 사이드 뱅으로 쑥딱 자른다. 망칠지도 모른다는 걱정일랑은 없다. 잘못되면 잘못되는대로 이미 벌어진 걸 어뜩하나. 금세 길면 되는 것이지.한다. 한 번 미용실에 가는 비용이 만만찮은데 굳이 그렇게까지...하는 성미 때문이기도 하다.
가끔 머리가 양 옆으로 다리미로 다려진 것 마냥 착 붙을 때면, 이거 안되겠는데? 이대로 괜찮나?싶은 총체적 난국의 현타가 세게 올 때가 있지만 그때 뿐이다. 롤을 또르르 말면 된다. 언제부터인가 혼자서 할 수 있을 것 같은 것에. 굳이. 싶은 것들을 혼자서 해나가기 시작했다. 막상 해보니 별 거 아니었다. 어떤 건 시시할만큼 간단하고 쉬웠다.
익숙해지니 헤어 스타일링도 쉬워졌다. 보여지는 직업도 아닌데다 이젠 직장인도 아니고 너무 단정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움이 있다. 직장인 시절에도 내 개성대로 입었다. 블라우스에 정장 스커트나 바지는 내게 어울리지 않았고 내가 입고 싶은 옷들이 아니었다. 그 보단 차라리 가디건이 편했고 나았다.
직장인이던 때, 귀걸이만 해도 여자 선배들은 내게 말했다. "귀걸이 그런거 하고 다니지마 너무 튀어." 이런 이야기들을 꽤 자주 들어야 했다. 선배들의 귀걸이는 더 화려했다. 뭣 모르던 나는 그저 "왜 안되는 거지? 무엇이 잘못된 걸까?" 실은 적응하기 어려웠다. 그게 사회 생활이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그런 것들이 내겐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는데, 지금의 내가 그때로 돌아간다면 이젠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목구비 탓에 본래 내 성정과는 상관없이 화려해보인다, 뭘 해도 튄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는데 그런 부분이 직장 생활에선 그리 긍정적이지 않게 느꼈던 때였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겠지?
압구정 지점에서 일하던 시절, 미국에서 씨티 수석 부행장이 방문했다. 그와 잠깐 인사 나눈게 다였는데 지점장님 왈, "윗층에서 초아를 계속 물어봤어. 외국인 직원이냐고도 묻고... 초아 이러다가 미국 씨티로 스카우트 되는 거 아냐?" 처음 본 사람들도 내가 외국인 아니면, 오랫동안 외국에서 살다 온 사람일 거라 생각했다는 게 대부분이다. 타고난 까무잡잡한 피부도 이유일 수 있고 추측건대 눈빛.이지 싶다. 보통보다는 깊이 들어간 눈과 쌍커풀ㅡ 그 안의 눈동자 그리고 눈빛.
본래 어두운 피부인지라 마음이 어두우면 유난히도 더 어두워보이는 마법의 소유자기도 하다. 어떻게서든 피부의 낯빛만은, 눈동자의 빛, 맑음만은 사수하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가을 웜톤이라 립스틱만 해도 내 피부와 찰떡같이 어울리기가 쉽지 않다. 나이 들어갈수록 더더욱 화려해보이고 싶지 않고 편안하고 수수하고 싶은 마음이라, 이젠 립스틱도 바르지 않는다. 어쩌다 립스틱을 바르기라도 하면 무언가 아닌 것 같은 건 왜 일까? 차라리 안 바르는 편이 편하고 유리하다.
스물의 시절엔 하지 말래도 하는, 사수하는 것이 메이크업과 헤어였는데ㅡ 옷이었는데 지금은 이런 것들이 나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 무심한 것이 되어버렸으니. 이토록 변할줄이야. 그땐 하나도 성가시지 않았는데 귀찮지 않았는데 지금은 성가시고 귀찮은 걸 보면 새삼스레 점점 본래.로 돌아가는 것이구나.싶다.
더 자연스러워지고 싶고 더 편안하고 싶고 더 자연과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지금의 내가 더 옆집 언니, 동네 언니, 흔한 언니, 편안한 언니, 구수한 언니, 사람냄새 나는 언니.가 되게 한다.
화려하고 젊고 예뻤던 시절은 누구에게나 있고 있었다. 그 시절의 우리도 나였고 지금도 나인 것처럼.
그 시절은 그 시절대로 이따금씩 이렇게 추억하면 되는 것이겠지.
우연히 스친 영상에서 배우 킬리언 머피의 짤막한 인터뷰를 봤다.
그 왈, "나에게 노스탤지어는 죽음이다."
무릎을 탁 쳤다.
나는 분명 알 것 같았다.
지나간 시절을 그리워하는 건 그 시절을 산 우리들의 특권이다.
그렇다고 이미 지나간 것들을 그리워만 하고 붙잡고 있는 건 도움되지 않는다.
지나간 과거는 그곳에 그대로 두고 우리는 떠나야 한다.
나의 해석으론 자기 생의 나아감.이다.
실은 나 자신에게 하는 말, 하고 싶은 말이란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