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진짜 괜찮을 때까지. 연습하고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을 수 있을 때까지. 괜찮은 척, 그런 척.이 아닌 진짜 그럴 때까지. 그러고 나면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내 안의 두려움은 집착에서 오는 것이니ㅡ 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기를 연습하기란 동시에 집착을 놓아주는 연습인 것이다.
요즘이 그러한데, "이거 뭐지? 나 왜 이렇게 멀쩡해? 나 왜 이렇게 안 불안해? 나 왜 이렇게 안 두려워? 나 왜 이렇게 괜찮아? 나 왜 이렇게 걱정이 안되지? 너 지금 아무 것도 안하고 있잖아?..." 정말 괜찮아서 외려 당황스러운, 낯선, 그래서 헷갈리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 진짜와 가짜를 분별하는 시간이다.
도통 괜찮으니, 도통 걱정이나 염려가 안 생기니 실은 나 자신이 가장 당황스럽다. 이 당황스러움을 놓치지 않고 아주 부드럽게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다. 어제는 3시간 반을 커피 하나만 들고선 내리 걸었다. 지금 내게 철썩같이 붙어있는 이 적막과 고요와 평온과 평화의 감.을 연습하고 싶어서였고 내 것.으로 체화시키기 위함이었다. 그 어떤 눈보라도, 비바람도 이 연습을 방해할 수 없었다.
어느 골목 은행잎과 나뭇잎들과의 조후. 어느 골목에서 만난 냥이들과의 대화들, 어느 산책로에서 만난 억새풀들의 춤사위... 시시각각 절로 펼쳐지는 것들에 절로 숙연해지는 것들이 있다. 보려고 해서 보는 게 아니라 보여지는 것이다. 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다.
지난 주 재래 시장에서 청양고추 오천 원치를 사선 너무 잘 먹었다. 향도 짙고 맛도 좋아 또 사러 갔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선 지난 번 사간 청양고추 정말 맛있었다고. 그거 사러 왔다고 하니, 아주머니 왈, "그거 이제 없어. 그때 뿐인 것이여. 노지거라. 인자 내년 봄이나 돼야 혀." 아쉽지만 깐마늘 1kg만 사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아주머니의 말씀이 맴돌았다.
"노지거라, 노지에서 키워서 그렇게 맛있는 거야. 다른 것하곤 틀려."
노지라면, 그냥 이런 데서. 가리지 않은 땅인데 이곳에서 자란 것이 이토록 맛있구나. 실하구나.
역시 너도 노지구나...
비닐 하우스에서 착실하게 자란 것보다 거친 노지에서 자란 것이 더 좋다.
평소 나 자신이 온실 속의 화초가 아니라 노지에서 피어난 장미.란 생각이 있는데 너도 나와 같구나.
그래서 내가 너를 이토록 사랑하나봐. 좋아하나봐.
노지에서 자란 청양고추에게서 나를 보게 되는 나란 사람.
어뜩하나 절로 일으켜지는 것을. 절로 써지는 것을.
실은 삶이란 게ㅡ 인생이란 게 온실 속의 화초인 적이 내게 있던가?
우리는 늘 노지.속에 살고 있지 않은가?
갖은 풍파가 결국 우리를 파괴했던가? 무너뜨렸던가?
노지에서 자란 우리는 결국 강한 생명력을 목도하지 않던가?
노지에서 피어나는 것들에 대한 진한 애정과 사랑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서 매력을 느낀다.
나도 꼭 그런 사람이라서.
세상 그 어떤 사람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각자 자신 만의 노지 위에서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
삶의 슬픔, 아픔, 힘겨움, 무게, 고통과 기쁨, 사랑, 행복이 한데 섞여 자기 만의 삶의 봉우리를 피운다.
꼭 말해야 되는 것이 아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그것.
서로가 서로에게 무해할 수 있다면,
친절할 수 있다면,
따뜻할 수 있다면,
다정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