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셔츠를 입었다. 청셔츠를 입는다고 해서 청순해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주섬주섬 채비를 하고 나왔다. 쉬는 동안 써지는 대로 글쓰자.하고 마음껏 책읽자.는 마음 덕분에 도서관을 수시로 찾는다. 집근처 도서관이 있다는 건 고도로 계획된 것이다.
믹스 커피를 종종 마시곤 하는데, 대학 시절 아침 9시 1교시 수업 시작 전 강의동 1층에 있는 자판기 커피를 뽑아먹기 시작한 후부터 직장인 시절까지 믹스 커피는 사랑이었다. 왠지 모르게 종이컵에 또르르 나오는 믹스 커피란 낭만 그 자체였다. 지점에서든 본점에서든 딱 내 자리 반경 안에서 찾은 믹스 커피 한 잔의 여유. 낙이었다. 탕비실에서 노란봉지 아니면 돌체 라떼, 겨울이면 견과류 들어간 율무차, 생강차가 좋았다.
따뜻한 걸 타서 내 자리로 성큼성큼 걸어들어오는 풍경, 그렇게 엉덩이에 있는 힘을 실어 푹신한 회전의자를 책상 가까이로 들여오는 풍경... 그 시절이 이따금씩 그리워질때가 있다. 회사 생활의 어려움과는 별개로 나만이 알고 있는 낭만들... 그런 것들이 있기에 그 시간을 견딜 수 있는 것이다.
집에서 나오면서 작은 머그컵과 믹스 봉지 하나를 챙겼다. 갑자기 믹스 커피가 그곳에서 먹고 싶어진 것. 글쓰거나 책 읽을 때 후루룩 쫩쫩. 훌쩍이는 맛.이 있다. 실은 종종 믹스 커피를 가지고 다니는데, 한 번은 누군가가 "머그컵 가지고 다니는 사람 처음봐요." 마치 외계인 마냥, 신기해하는 표정이었다. 텀블러도 아니고 머그컵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사용하는 텀블러는 보통 용량이 크기도 하고 믹스 커피를 타 먹기엔 그 맛.이 안난다. 꼭 작은 머그컵, 종이컵 사이즈만한 것이어야 그 맛.이 난다. 이왕이면 내 기분을 위한 건데 갖고 다니는 것이 유익하다. 귀찮지 않다. 외려 설렘이고 즐거움이고 자기 기분.이다.
도서관에 와서는 믹스 커피를 탔다. 1봉을 탈탈 털어 뜨거운 물을 붓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달콤함에 마음이 금세 몽글몽글해진다. 도서관 서가 안의 따뜻한 공기와 믹스 커피의 달콤함이 만나 말랑한 마시멜로가 됐다.
지금 이 기분이라면야, 한 생각 일으켜지는대로 쉼없이 글쓸 수 있겠다. 책읽을 수 있겠다.
제목 그대로, 아침 준비를 하다 불쑥, "나만의 시간, 절대 못 잃어 지켜!"가 나왔다.
웬일이니. 정말... 너 왜 이렇게 귀엽니?...^^ 그래 절대 못 잃어. 지켜!!! 마치 변비 비켜!.광고 카피가 연상됐다. 불타는 의지겠다.
집에서나 일터에서나 자기 만의 시간.은 중요하다. 그 확보는 가히 실제적이고 구체적일 수록 좋다. 자기 만의 시간은 낭만의 시간이기도 하고 스트레스와 피로에 스러져가는 나를 소생시키는 것이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분명 같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과 있지만 누가 뭐래도 자기 만의 내적인 고독, 내적인 시간을 확보하면 견뎌내진다. 함께이지만 나만 아는, 나만이 향유하는 절실한 고독이다. 내 자신이 직장인이었을 땐 미처 잘 하지 못했던 것으로 이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있지만 이젠 어떻게서든 사수하려는 것이, 지키고 싶은 것이 이것이다.
글자 그대로, 나만의 시간 절대 못 잃는다. 가뜩이나 텅빔인데 이마저도 없으면 텅빔을 넘어 공.이 될 소산이다. 실은 이미 공이지만서도.
어느 계절엔 외투 하나로 한겨울을 난 적도 있고, "왜 똑같은 옷만 입어요?"라는 질문을 들었던 계절도 있다. 언제부터인가. 정확한 시점은 모르겠다. 다만, 분명 나의 내적 고독이 활성화 되기 시작한 후부터다.
매일 똑같은 옷을 입어도 상관 없었다. 사람들은 내게 실은 관심이 없다. 내가 꼭 그런 것처럼. 저 사람이 뭘 입는지. 매일 똑같은 옷을 입는지. 전혀 관심없다. 그런 것도 있고 내가 개의치 않으니, 내가 불편하지 않으니, 내가 아쉽지 않으니 그리 하는 것이다. 무언갈 하는데 있어서 나.에 집중하면 가짜는 알아서 사라진다.
집에서는 옷이나 수건을 바짝 말려 총총하게 포개어 잘 개어 놓는 일, 날 위한 요리를 하는 일, 이부자리를 깔끔하게 정리하는 일, 불필요한 물건들을 비우고 왠만해선 새물건을 채우지 않는 일, 헤어팩을 하는 일, 피부 보습에 열심인 일, 글쓰고 책읽는 시간, 걷는 시간, 명상하는 시간, 내 안에서 유영하는 일, 따뜻한 물로 샤워하는 일, 향좋은 바디 크림을 듬뿍 바르는 일, 뽀송뽀송한 이불안에 들어가는 일, 커피 한 잔 선물하기, 치즈 케이크 한 조각 사서 나오는 일...
이 찰나에도 수많은 선택과 행동들이 나. 그리고 이 순간을 재생하고 있다.
내 기분이 있어야 뭐든 잘 풀린다.
내 기운과 동의어인데,
내 기분을 살리는 것이라면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어떻게서든 지켜야 하는 그 무엇.이다.
짙은 카키색 머그컵을 가져왔는데, 유난히도 영롱해 보이는 건 무엇.
덕분에 커피 타임이 이토록 낭만 가득하게 되었으니.
내 마음에서 예뻐보이는 것이니 내 눈앞에 펼쳐지는 현상도 예뻐보일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