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인간

by Aarushi

집 안에서 유일하게 따뜻한 공간은 침대 안이다. 이불 속이다. 이불 밖을 나가면 한랭이다. 체감상 시베리아 툰드라다. 난방을 틀만도 한데, 안트는 이유는 이토록 시시한데, TV를 잘 보지 않으니 거실에 있을 이유가 없고 한겨울 집에 있을 때 내 반경은 고작 부엌과 욕실, 침실 뿐이다. 요리할 땐 가스레인지의 따뜻한 온기가 내게 난로가 되어준다. 그 바이브가 또 좋다.


조금 불편해도, 참는 것도, 조금 아쉬워도, 조금 견뎌보는 일에 실은 재미를 붙였달까. 넘치고 아쉬움 없는 것보단 적당한 아쉬움으로 살아가는 게 내 정신건강에 유익하다.


굳이.안틀어도 된다는 생각이 있다. 진짜 추우면 당연히 튼다. 틀게 돼 있다. 12월 초하루. 아직 충분히 견딜만하고 이 정도 추위쯤이야.싶고 이 정도 온도에 있으면 정신이 번쩍 들게 되는 이점이 있다. 못견딜만한 강추위 아니고선 난방을 켜지 않으니 난방비도 덜 나오고 내겐 여러모로 유리한 일이다.


온몸의 혈관과 생체조직이 파릇파릇 하달까. 그게 느껴진달까. 진한 생명력이 느껴진달까. 뒷 숫자가 바뀌어 12월이 왔어도 여느 날이다. 별 다를 거 없는 일상에, 하루에, 순간에서 심심함도 무료함도 삶 그 자체란 걸 안다.


도서관이 날 부르니 가야한다. 나오면서 든 생각은, 우째 집보다 밖이 더 안춥네. 도서관 안은 어쩜 이토록 따뜻한고. 이곳에서 무언가에 몰입하고 나면 양 볼이 울그락불그락 분홍빛깔을 낸다. 후끈하다. 내가 할 일은 서가에 파묻혀 읽을 책 한 권을 빌리는 것과 글쓰기,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위한 자료 수집 및 계획, 구상이다.


12월 초하루라 올리브영 최대 70% 세일 광고와 여기저기서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이란 광고가 넘쳐난다. 필요한 것들은 그때 그때 사두었으니, 스스로에게 "초아, 내려놔. 지난 번에 필요한 것들 샀잖아. 진짜와 가짜 욕망을 분별하라구. 세일한다고 왕창 사두면 무슨 소용일까. 소비 아니돼."


나름 비장한 각오로 그곳을 지나 도서관으로 왔다. 이토록 고요한 적막 덕분에 날 사로잡은 욕망들에게서 멀어졌다. 자주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규정될 수도 규정지어질 수도 없는 것인데, 내 안에 무언가가 갇혀 있는 것 같은 기분.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한 발자국 내딛는 걸 주저하는 것에서 완전하게 결박된 것 같은 기분에 소스라칠 때가 있다.


감정은 생각이 된다. 생각은 내가 아니나, 그 생각이 나.라고 착각하는 것에서 괴로움이 온다. 나는 그 연습을 하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자아 관찰, 그리고 몸의 움직임에 대하여ㅡ


이런 것들에 대해 질문하지 않으면, 궁금해하지 않으면 나는 변할 수 없을 거란 게 분명해서다. 생각이 현실의 반영이라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다면, 진짜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 싶다면, 지금과는 다른, 과거와는 다른 이야기를 써내려가야 한다. 새로운 스토리의 서사, 전개여야만 한다.


좀 더 깊은 질문과 그 여정을 생일 즈음까지로 구체화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아뿔사. 코 앞으로 다가왔다. 이젠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가야할 때.라는 분명한 사실만이 남았다. 12월이 그 어느 달보다 반갑다. 지나간 시간들이 아쉽지 않다. 과거는 이미 없어진 것. 없는 것이 됐다. 미래라고 다를까. 미래는 없는 것.이 된다. 내가 집중해야 할 것은 지금 여기. 이 순간 뿐이다.


늦은 오후 즈음해서 걷다가 무작정 이마트로 발걸음을 돌렸다. 다 떨어진 향신료를 몇 가지 사기 위해서고 가끔가다 단호박이나 양배추를 저렴한 가격에 세일한다. 양배추를 사려고 했는데 어맛, 1통에 1,990원. 정말 몇 백원, 몇 천원 덜 주는 것인데, 아주 작고 사소한, 시시한 즐거움이 있다. 왜 나는 알뜰살뜰한 내 모습에서 소소한 행복을 맛볼까? 청승과는 다른 것이겠다.


그렇게 한 시간여 장보고 돌아왔다. 혼자 있는 시간은 지독한 외로움의 시간이 아니다. 참 고요하고 평온하고 평안한 순간들인데, 혼자의 시간이 너무 익숙해진 탓에 웬만해선 약속잡지 않는 내.가 어떨 땐 이대로 괜찮나?싶지만 결국 이내 혼자만의 시간을 택한다.


직장인보단 실은 프리랜서가 내겐 적성에 맞는 것이었다. 퇴사하고 요리를 시작했을 때, 실은 그 첫 해. 나는 행복해했다. 시간가는 줄 몰랐고 혼자만의 시간인데다 그 시간에 누구의 간섭이나 동요없이 혼자 요리해내는 그 순간들이 내겐 빛이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잠시 멀어졌던 것에서 다시 한 번 빛을 꺼내어 보려 한다.


작년 이맘 때가 정말이지 엊그제 같은데, 꿈같은데 1년이 지났다.는 사실에 샤워를 하면서도, "아니 이게 장난인가?"했다. 그러곤 질문한다. "그래서 1년 전과 지금, 너는 어땠니? 지금 너는 변한 게 있어? 진짜 너답게 살았어? 도전했어?" 야단도 했다가 안아줬다가... 결국 내 자신을 끌어 안았다.


양 팔로 내 몸통을 꼭 끌어 안고 있으면, 들숨과 날숨이 명징하게 느껴진다. 그 명징한 호흡 속에서 몸의 움직임을 알아차린다. 내 감정과 생각이 내.가 아님을 알아차릴 수 있는 방법은 몸의 움직임이다. 걷고 바짝 뛰었다가 다시 걷기를 반복한다. 그 뛰는 찰나에 호흡을 알아차린다. 불안이 서서히 걷힌다.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얼마나 기적인가. 행운인가.를 즉각적으로 상기한다.


나라고 할만한 게 있는가?

이야기가 곧 나다.

나는 이야기다.

12월 초하루의 오후는 분명 여느 날이다.

드라마틱한 전개는 없다.


분명한 사실이 있다.

나는 더는 미루지 않을 거란 걸.

새 스토리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에 게을리하지 않을 거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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