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맛.이 당길 때가 있다. 어느 날은 새콤함이 달콤함보다 더 큰 위로가 되어 줄 때가 있다. 어제 늦은 밤, 가만 있어도 콧물이 주르륵 흐르기 시작했다. 감기 기운인가 본데, 곧장 레몬차를 탔다. 이불 속에서 훌쩍훌쩍 그러곤 곤히 잠에 들었다.
레몬차 덕분이었을까. 감쪽같이 콧물이 쏙 들어갔다. 적어도 절로 주르륵 흐르는 것만은 쏙 들어갔다. 동이 트기 전이었다. 침대 머리맡에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테의 수기>를 읽어내려갔다. 정신없이 빨려 들어갔다. 삼십여분 정도 읽고 아침 준비해야지.하고선 한 시간을 넘기고서야 침대 밖으로 나왔다.
아침에 단 몇 줄이라도 책을 읽으면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다. 사특한 생각이 비집고 들어옴 틈일랑 없어지고 텅빈 상태랄까. 멍한 것 같지만 실은 사유와 사색의 감각 신경세포들이 파릇파릇 기지개를 펴고 있는 것이다.
시를 쓰는 말테 브리게 그 자신의 말이었다. "시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감정이 아니고 경험이다."라는 문장이 내게로 닿았다. 그 자신은 지금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것도.
말하고 쓰는 법이 아니라 보는 법이라. 해석의 자유이겠다. 릴케가 말한 보는 법이란, 관찰 그리고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 그 너머의 통찰과 지혜, 직관적인 앎... 으로 해석했다.
새벽에 마주한 릴케와의 만남은, 말테와의 만남은 이토록 나아감이다. 내면의 확장이다. 한 시간여의 시간은 단순한 한 시간이 아니다. 명상이 되고 사색과 사유의 시간이 되고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고 시공간을 초월한 다른 세계와의 만남이고 내가 사랑하는 작가와의 대화이자 만남이다.
콧물이 쏙 들어갔다. 콧물이 나는 지도 모를 만큼 그렇게 잠깐이라도 몰입하고 나면 그 다음 해야할 일들이 수월해진다. 기능적으로 수월하게 작업된다. 독서와 글쓰기는 순전히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나는 아우렐리우스나 세네카, 에픽테토스... 스토아 철학자들, 헤르만 헤세, 니코스 카잔차키스, 도스도예프스키, 톨스토이, 카프카, 라이너 마리아 릴케... 그 시대 작가들에 대한 사랑이 있는데, 이들의 책을 읽고 있으면, 문장 하나하나에 서린 예리한 통찰과 지혜 그리고 "어떻게 이런 문장을 쓸 수가 있지?"매 순간 질문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문장들을 나열할 수 있을까? 자기 안에서 얼마나 치열한 사투와 투쟁을 깨고 솟아난 것들일까?"한다. 놀랍고 경이롭고 인간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그것이 언어화될 때 오는 그 짜릿함과 소스라침, 경이로움, 황홀경에 찬사를 보내게 된다.
이 아침 내 안에선 이토록 분주한데 동이 트기 전 밖은 이토록 대조적이다. 여전히 잠들어있다.
레몬차를 탔다. 효과가 좋았던 탓에 지금 이 시점에 따뜻하게 한 모금 마시면 더 괜찮아질 것 같았다. 컨디션 저조로 이 순간을, 이 하루를, 소중한 내 하루가 스러지게 둘 수 없다는 것이 분명했다.
어느 문장을 읽어 내려갈 땐 브리에와 나 자신을 동일시했다.
"보는 법을 배우는 지금, 나는 무언가 일을 시작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랑하는 고전은, 고전 작가들은 늘 이런 방식으로 내게 질문하게 한다. 알게 한다.
고전을 이토록 사랑하는 이유,
직접적인 방식이 아니라 늘 간접적인 방식으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게 한다는 것.
자기 자신을 알게 하는 것.
질문하게 하는 것.
사색하게 하는 것.
사유하게 하는 것.
솟아나는 그것.을 발견하게 하는 것.
자기 처지를 분명하게 깨닫게 하는 것...
고전은 클래씨함이고
클래씨함이란 본질이다.
인간 본성과 내면에 대한 깊은 통찰을 통해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 그 길이 나는 고전 속 수많은 문장들, 말들, 고전 작가들이 있어 외롭지 않다. 고전 작가들을 만나는 순간엔 어떤 흔들림도 없다. 비로소 갈피를 잡게 되는 순간이다.
내가 만약 언젠가 부모가 된다면,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 TV와 같은 스크린이 있는 전자 디바이스들을 아이에게서 멀리할 것이다.
아예 두지 않을 것이다.
부모인 나 역시도 아이 앞에서 핸드폰을 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어린 시절 아이에게 형성되는 부모와의 애착 관계가 성인이 된 후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기 때문이다.
대신,
자연과 늘 가까이 하는 법을 터득하게 하고
책과 가장 친한 친구가 될 수 있도록,
사색하고 사유할 수 있는,
생각하고 질문하는 능력을 알게 하는데 집중할 것이다.
어릴적부터 명상을 알게 할 것이다.
아이가 자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줄 알게 하고 거절하는 법을 알게 할 것이다.
자기 감정이 자기 몸 어디에서부터 올라오는지. 생겨나는지.
영어 문제 하나 더 풀고 선행하고 수학 문제 하나 더 풀고 선행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살아보니 현실을 사는데 그 보다 더 중요한 건 이런 것들이었다.
나 자신이 그러지 못해 우울과 방황의 나날들로 힘들어하고 아파하고 상처받았던 것처럼.
자기 자신을 아는 것.
자기 자신을 궁금해하는 것.
어릴적부터 자기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얻어내는 법을 터득할 수 있다면,
그 능력을 기를 수 있다면 자라나는 아이들이 지금보단 조금은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실패해도 괜찮다는 것. 실패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란 걸 아이들이 안다면 좋겠다.
내가 만약 부모가 된다면, 이런 것들을 알게 할 것이다.
지나고 나니, 살아보니, 나이 들어가니,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인생이란 게 그런 거 같다.
그 시절엔 아무리 알려줘도 모르겠는.
그 시절이 그렇게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알 것 같은.
그래서 그것이 인생.인가 보다.
공이다.
텅 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