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를 사랑하는 이유

by Aarushi

요 며칠 설렜다가 흥분했다가 즐거웠다가 힘을 냈다가 멈췄다가 갈팡질팡했다가 침잠했다가 수그러들기를 반복하느라 몸과 마음이 너덜해진 시기였다. 조급해할 게 하나 없는 것에서 나는 또 다시 습관처럼 조급해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유난히 겨울이면, 파리의 겨울 그리고 내가 시시로 떠오르곤 하는데, 내 무의식 안에서 방황과 우울의 나날이었던 파리가 이토록 강렬하게 깊숙하게 박혀있나보다. 보들레를의 <파리의 우울>을 사랑하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니겠다. 보들레르의 눈빛을 사랑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겠다.


파리 살 때, 현지 친구 제시카의 딸 호만의 친구들 엄마와 와인 한 잔 한 적이 있다. 한명은 클레허, 한명은 이자벨 모두 9살난 딸, 아들의 엄마였다. 클레허는 프랑스에서 꽤 이름난 작가라고 제시카가 소개했고 결혼하지 않았지만 아이 아빠는 검색하면 나오는 프랑스의 유명한 감독이자 극작가였다. 나이 차이가 스물 몇 살 이상으로 기억한다. 프랑스에서는 나이도 그 무엇도 어떤 장애가 되지 않는다. 노 포블렘이다. 제시카도 결혼하지 않았고 혼자 호만을 기르고 있다. 호만은 일주일에 하루 이틀씩 돌아가며 마멍집, 빠빠집에 머문다.


프랑스에 머물다보면 이런 풍경들은 너무 자연스럽고 익숙한 것이 된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판단하거나 판단되어질 수 없는 그것에 대한 자유가 있다.


사랑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변하는 것. 깐깐하면서 이지적이기까지한 파리지엔느 여성들과의 대화는 결코 가볍지 않은데,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는데,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하여ㅡ 그녀들과의 대화는 신선했다.

담배 한 개비를 물고 열변하는 그녀들의 모습에서,

어느 대목에서는 낄낄껄껄.하며 박장대소했던 그때의 기억들이 담배 연기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그녀들은 사랑을 믿지 않았다. 사랑에 대해 거창한 철학이나 신념도 무의미한 것이었다. 16구 발자크 집에 방문했을 때 "발자크가 이곳에서 사랑을 노래했단 말이지... 그의 문학으로 사랑이 이토록 환상처럼, 로맨틱한 것.이 될거란 걸 예상이나 했을까?"


어쩌면 내가 경험한 파리지엔느 친구들이 사랑 이야기가 훨씬 더 현실적인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사랑과 연애와 결혼은 19세기 로맨스 소설이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는 것도 일리있었다.


재미난 에피소드도 많다. 어느 날 제시카가 친구네서 열린 한 파티에 초대돼 갔는데 가기 전 그 근처 바에서 와인 한 잔 마시고 들어가려던 참이었단다. 그런데 그곳에서 느닷없이 옆테이블에서 말싸움같은 것이 벌어졌고 호탕한 제시카가 그 상황을 보고 뭐라고 했다고 한다. 상황이 어느정도 정리되자 스탠딩바에 있는 어느 남자가 말을 걸어왔는데 이미 자기의 그 모습을 지켜본 것 같다고 했다. 대수롭지 않게 자기는 지금 파티에 가는 길이라 가봐야 한다고 그 바를 빠져나왔는데 그 파티에서 그 남자를 다시 만난 것.


알고보니 그는, 알랭 들롱의 아들 파비앙 들롱이었단다. 키스까지가 그날의 전부였다는 이야기... 안 그래도 호탕하고 위풍당당하고 시원시원하고 유머감각 넘치는 그녀인데 이 이야기에 홀린듯 빠져들어갔던 기억이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분위기가 팔할이다.


1년 남짓 나는 불완전한듯 하면서도 어느 날은 완벽하게 파리에 꼭 들어맞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이 그토록 아름다웠구나. 슬펐어도, 우울했어도, 방황했어도,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았어도 그 자체로 나였구나. 삶이었구나. 살아진 거였구나.하는 것들.


다들 잘 지내고 있겠지? 다들 자기 생.을 무사히 살아가고 있겠지?

사랑도 하고 글도 쓰고 낭만을 삼키며 잘 살아지고 있겠지?


사랑없이는 삶도 없고

삶 없이는 사랑도 없다.

사랑은...

거대한 것이 아니라

거창한 것이 아니라

죽고 못사는 게 아니라

이토록 아지랑이 같은 것.

이토록 잔잔한 것.

이토록 소리소문없는 것.이 된다.


파리의 사랑과 우울을 모두 경험했던 그 시절의 나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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