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굴레. 이토록 치명적이고 지리멸렬하고 파괴적인 것이란 걸 안다. 이 밤 절로 글이 날 불렀다. 이런 날은 써야한다, 아니 써진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건 결국 내 안에 있거늘, 모든 것은 다 내 안에 있거늘, 알면서도 이런다... 시시로 자신에게 묻고 답한다. 언제까지 이럴텐가? 괴로움과 고단함과 지침과 무기력감은 도대체 무엇인가? 사는동안 지속적인 평온함이란 정말이지 요원한 걸까? 사는 날까지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하는 것들이 있다.
생각 자체가 많은 성향이랄까. 그런 기질도 있는 것 같고 예민함도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예민함도 그 무엇도 잘못된 것은 없다. 결코 다름 아니구나.라고 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은 나 자신이 가장 괴롭고 힘겹곤 한다. 과연 나만 그런 것일까? 나만 힘든 것이 아니란 걸 알기에.
나는 여전히 모른다. 모르겠다. 정말이지 모른다. 무엇을 안다는 것도 실은 무엇을 모른다는 것과 같다. 그러니 겸손해지는 것도 있고 나는 정말이지 내가 사는 세상을 얼마만큼 알고 있는 걸까?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일까? 나는 모른다.가 실은 진짜.일 거란 생각이 있다.
2013년 즈음이었을까 신입행원이던 시절, 윤주언니는 늦은 밤 내게 음악을 보내왔다. 커피소년의 "다리미", "내가 네 편이 되어줄게"...노래였는데, 그 밤 눈물을 펑펑 쏟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그 후 어느 해 겨울, 내 생일 며칠 전 즉흥적으로 커피소년 콘서트에 다녀왔다. 당일 성수동 스타벅스에 들러 유연언니와 도란도란 삶에 대해 이야기하다 근처 분식집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갔던 기억. 콘서트 중간중간 서로 눈이 마주치자마자 우리 주책이라며 서로 눈물을 글썽이다 누가 먼저랄거없이 동시에 눈물을 펑펑 쏟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각자 자기만의 슬픔, 상처, 기쁨,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 그것은 "너도 힘들지? 잘 견뎌내고 있는거지? 잘 버티고 있는 거지? 삶은 그런거겠지?" 무언의 따뜻한 위로였다.
오늘 늦은 오후, 수진언니로부터 책 선물을 받았다. 메시지와 함께.
스무살이후부터 나는 동갑내기 친구보단 언니들과 친했다. 내 인연의 궤도에서 절로 그리되었달까. 언니들과 대화가 잘 통했고 언니들이 편안했다. 3살, 4살, 1살, 9살 터울의 친한 언니들이 있었고 좋은 인연은 꼭 언니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그 시절,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언니들과의 인연에 감사해한다.
이 밤 문득 그 시절, 언니들이 생각났다. 서로 나눈 주옥같은 대화들, 문장들이 있다. 감정에 휩싸여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겨운 날에 언니들과의 대화를 읽어내려가다보면 지금 나의 이 생각과 감정에 난 또 속았구나. 눈뜨고 코베이듯 난 또 그렇게 착각 속에 허우적댔구나를 실감할 만큼, 나 자신에게 쏘아올린 자기 비난이란 화살을 금세 사랑과 감사와 수용으로 바꾸곤 한다. 응원의 메시지. 내가 잊고 살았던 그 시절 나의 모습들이 있다.
"그래, 참 나 이랬지."하면서 다시금 정신이 바짝 차려지는 것들...
수진언니와 오늘 저녁 나눈 대화들, 문장들 속에 위로받았고 윤주언니가 문득 생각나 메시지를 보내놓았다. 나이들어가며 진심으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만난, 만났던 시절 인연들... 가족이든 친구든, 연인이든... 그들은 모두 날 성장하게 하기 위해 날 돕기 위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을 통해 알게 된 것들. 그것이 기쁨이었든 슬픔이었든 그 무엇이었든지 간에 모든 것은 다름 아니란 걸. 그걸 통해 성장하고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것.이란 걸. 스무살엔, 나의 이십대엔 참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마흔 가까이가 되어서야 이토록 선명하게 보인다는 것이. 그러니 실은 모든 건 다 내 안에 있었다는 걸, 늘 그 자리에 있었고 그것을 보지 못한 나의 어리석음 혹은 미성숙함이 있었다는 걸 받아들인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알을 깨고 나오는 것. 이것이 인생이 아닐까? 산다는 게 실은 그런게 아닐까?
삶에서 오는 모든 고통은 실은 나로 하여금 사랑.을 진짜 사랑.을 알게 하고 경험하게 하기 위함이 아닐까. 깨닫게 된다. 분명한 사실은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인데, 오지도 않은 미래 걱정에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지. 실체없는 과거를 후회하느라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 정말이지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한다.
무엇이 날 괴롭히는가? 절로 써진 문장 하나 붙잡고 지움없이 이렇게 쉼없이 써내려간다. 어떨 땐 신기한 노릇이다. 뇌와 몸의 움직임의 상호작용에 놀라울 따름이다.
알아차림을 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방황한다. 여전히 힘들어한다. 여전히 무너지곤 한다. 여전히 슬프고 여전히 서럽고 여전히 몸과 마음이 녹아져 내릴 듯 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사는 것 같다. 태어났으니까. 유한한 삶이니까. 그렇다고 해서 나 자신을 놓는 건 이 세상에 태어남이란 빛을, 값진 선물을, 행운을 놓아버리는 것이니까. 우리 모두는 어떻게서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희한하게 버틴다.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진다. 그러니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기도 하다. 버틴다...는 것보단 그냥 살아가는 것.이 현실적이고 와 닿는다. 버티는 삶보단 그저 살아가는 삶이 더 친절하다. 나에게 일어난 일을 모두 받아들인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라는 수용의 자세가 이토록 강력한 것이란 걸 서른이 넘어서야 알게 되었다. 정말 한끗차이같으면서도 수용과 감사의 관점과 마음과 태도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오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에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가 중요하단 것도. 내 마음이 평온하면 그 어느 곳에서라도 평온할 수 있다. 결국엔 내 안에 전체가 있다는 것. 그렇게 매 순간 내게 일어나는 이벤트와 경험을 통해 느끼고 알게 된다.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얼마나 나 자신이 힘들어지는지. 괴로운지. 고통스러운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ㅡ 내면으로 나의 주의를 기울이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질문하고 답하고 위로하고 다독이고 달래고... 그런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이전보다 더 나은 나, 단단해진 나를 발견하곤 한다. 지금도 여전히 무너질 때가 많은데ㅡ 뭣 모르던 스무살의 나, 이십대의 나, 서른 초반의 나.를 생각하면ㅡ "애썼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것 또한 받아들인다.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 살 수 없으니.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수밖에.
누군가 내게 다음생에 또 다시 태어나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내 대답은 아니오.다.
필멸은 분명한 사실이기에 죽음이 두렵지는 않다.
문득 이럴 때는 있다.
그것은 생에 집착보단,
"끄억. 와 인생 찰나구나. 이렇게 가는 것이구나. 이 세상에 살 날도 실은 그리 많이 남지 않았구나. 유한한 삶이야.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기적이라니. 이렇게 살아온 것만으로도 얼마나 기적이니... 그러니 어떻게 하면 즐거울까.를 생각하자! 웃으며 살자! 즐겁게 살자!"하는 마음이다.
참 가벼운 마음으론 살 순 없을까?싶으면서도 막상은 그리 되지 않는 것도 인생이겠지.싶고.
어디 내 마음대로 인생이 흘러가던가.하는 내려놓음도 있다.
또 다시 내 스스로가 만든 어두컴컴한 동굴로 들어간 며칠,
제3자처럼 멀리 바라본다. 그러곤 동굴 안의 아이를 엄지와 검지로 들어 끌어내린다.
"이제 그만. 거기서 나오렴." 이렇게 그러곤 나직이 말한다.
"나는 너를 절대 놓지 않을거야. 넌 혼자가 아니야. 사랑하자. 감사하자. 수용하자. 용서하자. 친절하자.묻고 따지지도 말고 옳고 그름 따지지 말고 그냥 나를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자...!
네 자신을 구할 사람은 너 뿐이야."
이제는 알 것 같다. 내게 주어진 삶의 무게 혹은 나만의 고통과 번뇌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그 용기란 실은 겸손함이란 걸.
휘리릭 이토록 한바탕 글을 써내려가고 나면,
막혔던 에너지가 다시금 뚫리는 기분이랄까.
돌덩어리에 짓눌려 움직이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 어떤 무게가 훅 내려 간 듯한. 개운함과 청량감을 느낀다.
글쓰고 난 끝엔 늘 이런다.
"잘했다."
그렇게 또 하루를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