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무엇이 되어야 하나?

by Aarushi

날씨가 확실히 풀린듯, 조금은 이른 봄 내음새, 봄기운이 바람으로 느껴진다. 봄이 오면 내 마음이 조금 나아질까? 따뜻한 봄바람이 불면, 내 마음이 다시금 환해질까? 경험적으로 봄과 여름, 나는 확실히 환하다. 밝다. 용기가 난다.


오랜만에 만난 6살 난 조카와 마주보며 부둥켜 앉고선 조잘조잘 재잘재잘 이야기를 하다,

고사리 같은 앙증맞은 두 손으로 내 양쪽 머리카락을 동시에 빗어 넘겨 주며 왈,

"이모~ 내가 머리 예쁘게 해줄게. 지금 이모 머리가 엉망이야~~^^"

안 그래도 산발한 머리였는데 어쩜 들켰다니... 싶으면서 빵터짐과 동시에 덕분에 내 마음도 마시멜로처럼 말랑말랑해졌다. 그래, 웃자. 웃으면 복이온다. 웃으니까 얼마나 좋아?


늘 이모에게 질문이 많은 조카인데, 오늘은 유독 결혼에 대하여ㅡ였다. "이모 결혼 언제해?" "누구랑 결혼할거야?" "이모 지금 남자친구 있어?" "아기도 낳을거야?"... 정말이지 판단없는 어린아이의 순수다. 워딩도 워딩이지만 질문할 때 눈망울, 질문할 때 느껴지는 톤에서 별 생각 없는, 순간 정말 궁금해서라는 걸 알 수 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뉴욕 치즈 케이크 하나를 사왔다. 디저트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이 뉴욕 치즈 케이크인데 이 한 조각이면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 첫 한 입이 가장 맛있다.


잠 잘 때가 돼서 방으로 들어왔다. 자정이 넘은 시각. 이 새벽 잠이 오지 않으면 나는 글쓰기를 한다. 억지로 잠을 청하기 보단 책을 읽거나 차분해지는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글쓰기를 한다. 명상이 알아차림이란 걸 감안하면 실은 일상의 모든 것이 수행이요ㅡ 명상이다. 글쓰기를 하고 나면 알아차림을 알아차리게 되고 생각과 감정이 내가 아니란 걸, 지금 현재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감정인지. 어떤 마음인지. 그래서 어떻게 해야하는지.가 드러난다.


"꼭 무엇이 되어야 하나?, 꼭 뭐가 돼야 해?" 요 며칠 내 안의 소리다. 꼭 있어야 하나? 꼭 있어 보여야 하나? 고급스러워야 하나?... 하는 것들. 아니, 꼭 뭐 얼마나 가져야 하나?...


돌이켜보면, 남과 비교하면 어김없다. 불행해졌다. 남과의 비교로 나 스스로를 괴롭혔다. 나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했고 나 자신이 초라해보였다. 외적인 것들이 진짜 나.라고 착각하며 살던 시절, 가장 불행했고 우울했고 무기력감을 느꼈다.


이제는 알겠으면서도, 이따금씩 혹은 여전히 불안해하고 우울해하고 무기력해지는 날 보고있자면, 정말이지 환장하겠다.가 맞다. "알면서 또 왜 그러니 얘야..."할 때가 있다. 인정해야 한다. 내 삶이 절로 이리 흘러왔음을. 생각보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없었음을. 만족하건 만족하지 않건, 어쨌건 여전히 나는 내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걸. 수용해야 한다. 받아들여야 한다. 내 상황과 내 상태 내 환경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학창시절, 대학시절, 이십대 중후반이던 때...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왜 남을 의식하며 살았을까? 나 자신이 누구인지 조차 잘 알지 못한채 왜 물질적인 것이 나라고 철썩같이 믿고 의식하고 인식하며 붕뜬 삶을 살았을까? 그 틀을 깨고 나왔을 때, 현실이란 내가 원하는 현실이 아니게 되었을 때 오는 충격은, 실망은, 좌절은 날 그토록 쉽게 무너뜨릴 만한 것이었다. 내가 누구인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내면을 들여다보며 나 자신에게 질문하지 않았던 대가는 실로 컸다.


지금의 내가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은 있다. 지금의 나.를, 내 모습을 온전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평온이란 평안이란 요원하다는 것을. 나는 또 다시 불행해질 거란 걸. 우울해질 거란 걸 무기력해질 거란 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지금을 사는 일이다.


기나긴 어둠에서 조금씩 빠져나오고 있을 땐 서른 후반이 되어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이런 걸 도전했어도 다시 시작했어도 늦지 않았을 것인데 무릎을 탁 칠만큼 아쉬운 부분이 있다. 아쉬워하면 무엇하나. 삼십여년 간 이어온 지난 나도ㅡ 내 삶도 소중하고 귀한 삶이었다. 지금의 나도 앞으로 살아갈, 살아질, 살아낼 날들 역시 소중하고 귀한 삶이다. 옳고 그름이란 게 있나? 좋고 나쁨이란 게 있나?


지금의 나는 시시로 생각한다. 그리고 다짐하게 된다. 기존의 기계론적 세계관이랄까. 고정관념이 지배하고 있는 낡은 나의 세계관을 깨고 나오자는 것. 알을 깨고 나오자.는 것이다. 생각과 감정이 만들어낸 스토리에서ㅡ 소설에서 빠져 나오자는 것이다.


가령, 마흔? 마흔이라고 해서 뭐가 달라지나? 무엇이 날 가두는가? 나이나이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우리가 철썩같이 믿고 있는 소설 아닌가?...


돌이켜보면 나의 스물, 서른까지만 하더라도 무엇.이 되려고 했다. 무엇.이 되고 싶었다. 실체없는 것이었음을. 다 내 욕심이었음을. 다 내 집착이었음을. 그로인해 찾아온 우울과 무기력과 불안과 두려움이란 집착 때문이었음을.


지금의 나는 전혀 반대다. 무엇이 되고 싶지 않다. 무엇이 되는 것이 내 삶의 목표나 의미가 아니다. 뭐 되지 않아도 나는 그 자체로 빛나고 있다는 걸, 소중하고 귀한 존재라는 걸 안다. 그래서 그런 두려움은 없다. 먹고 사는 문제가 있을 뿐, 사는 날까지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며 친절하게 사랑하며 살고 싶은 바람이 있다.


뭐 돼는 사람도 아니었지만, 지금의 나는 날 설명하고 싶지도 또 설명하지도 않는다. 지금의 내.가 있을 뿐. 누가 날 좋아해주기를 누가 날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인정욕구도 사라진 지 오래다. 다만 대한민국에 사는데 있어 어떻게 하면 남과 비교하는 마음 비울 수 있을까?... 그것이야말로 나 자신을 험난한 세상에서 지키는 일, 구하는 일이란 생각이 있다.


"꼭 무엇이 되어야 하나?" 일찍이 NO!.라고 말할 수 있는 고등학생 나였더라면, 대학생 나였더라면, 직장인 나였더라면 조금은 더 행복할 수 있었을텐데. 좀 더 평온했을 텐데. 좀 더 건강한 삶이었을텐데.하는 아쉬움은 있다.


삶이란 이런 건가보다. 경험하고 알게 되고 아하.하고 깨닫게 되는 순간 이미 모든 것은 눈깜짝할새 흘러왔고 지나왔고 지금만이 남아있는.


그것은 마치, "얘야, 인생이 이런거란다. 삶이란 이런거란다. 모든 걸 다 알면 경험이 왜 있겠어? 경험하려고 온 것인데? 그게 바로 인생이란다!"라고 말해주는 듯한.





keyword
작가의 이전글무엇이 괴로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