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토록 비 오는 날을 반길까? 좋아할까? 처마밑에 두둥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대한 애정이 있다. 축축한 대지위에서 올라오는 흙냄새, 박테리아가 만들어내는 화합물 냄새... 차분하게 가라앉은 세계, 공기, 분위기. 내겐 그 모든 것이 낭만적이게 보인다. 짙은 생명력, 내가 살아있음을 너무도 천연덕스럽게 자연스럽게 알게 해주는 그것. 나는 쨍쨍한 날보단 흐릿한 날씨 속에서 비내리는 날에게서 생의 의지를 감각한다. 오늘의 비가 내게 그래서 더욱 감사한 이유다. 창밖 너머 들리는 빗소리가 다행스럽게도 감사하게도 오후의 중심을 잃지 않게 했다.
마트에서 파는 스모키 라떼가 마시고 싶어 나왔다. 모자를 썼기도 했고 이정도 비라면, 우산을 쓰지 않는다. 우산을 쓰지 않는 것을 선호해서이기도 한데, 더구나 외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라면야 나는 기꺼이 비에 흠뻑 젖는다. 비와 나의 맞닿음을 통해 정말이지 자연과 하나되는 기분, 내가 이렇게 태연히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빗방울은 거셌지만, 아무렴 상관없었다. 패딩점퍼에 두둑 젖는 모양새가 외려 반갑기만 했다. 걸으면서 우산 하나를 생각했는데ㅡ 엄마집에서 본 줄무늬 우산이었다. 오래 전 파리 시내 카페 테라스에서 보슬비가 내리는 순간에 멋쟁이 중년 여성 둘이 우산 하나를 받치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고선 저 우산 예쁘다했던 것과 비슷한 모양새였다. 들고 올까 하다가 집에 멀쩡한 우산 하나가 있는데 굳이.싶었는데 문득 비오는 길을 걷다 그 우산 생각이 절로 피어난 것이었다. 엄마집 우산이 이미지로 파득 떠오르다 그쳤는데ㅡ 마트에서 커피를 사고 나와 조금 걸었을까. 어떤 이가 조금 전 내 머릿속에 절로 떠올라졌던 그 우산과 정말이지 똑같은 우산을 쓰고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신기하거나 신비스럽다고 생각할 것도 없는 것이. 으레 그런가보다 하게 되었다. 그저 내가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ㅡ 내가 모르는 것들에 대하여ㅡ 그저 감사하고 감탄하고 미소짓고 마는 것 그것이 전부다. 정말이지 호들갑스럽지 않은, 유난하지 않은 평온한 미소가 나오는 이유는ㅡ 그 어떤 것도 해석하거나 판단하려 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내 머릿속에 분명 그려진 그것도 색감과 디자인이 너무도 분명하고 선명했던 그것이 몇 분 뒤 내 눈 앞에 상으로 나타난 것은 분명했다. 나는,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해, 이 세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비오는 날은 유난히도 글이 잘 써진다. 글이 절로 날 부르게 되는데ㅡ 텀블러에 큐브 얼음 딱 3개를 넣고 사 온 커피를 부으면 제 취향의 커피가 완성된다. 오른쪽 사이드엔 텀블러를 두고 창문은 활짝 열어젖힌 채 빗방울을 벗삼아 글쓰기를 시작한다. 내겐 이 시간이, 이 순간이야말로 평온이요, 고요요, 명상이고 행복이다. 나를 만나는 시간이자 내면으로의 여행이요, 나를 많이 돌아본다.
지금 나의 이 고독이 고립은 아닐지.싶을 때도 있지만, 내 자신이 밥벌이를 하고 있고 그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살아가고 있으며, 이 고독이 지극히 평온하고 편안하니 그러면 되었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건 이래야 돼, 저건 저래야 돼, 지금쯤이면 이래야 하고 이 나이대엔 이래야 되고 인생에서 이 정도는 있어야 되고 이 정도는 이뤄야하고 그래도 이래야 해..."라고 하는 것들... 이젠 그런 것들에게서 조금은 자유로워지게 되었다.
한 번 사는 인생, 이왕이면 이래야 해.!라는 생각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 생각이 날 가두고 있다, 날 옥죄고 있다, 날 더 집착하게 한다고 느끼게 되었기 때문인데ㅡ 흘러가는대로 내 인생을 그저 인정하고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나는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보통의 삶과 화려한 삶이 과연 다른 것일까? 무엇이 보통의 삶이고 무엇이 화려한 삶일까? 무엇이 없는 삶이고 무엇이 있는 삶일까? 그 기준 또한 그 잣대 또한 우리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인간은 본래 언어적 한계에 갇힐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질문해야 한다. 과연 진실이라고 할만한 것이 있는가?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과연 진실일까? 갇혀 있는 것은 아닌가?... 질문해야 한다.
우울했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현실의 나와 이상의 나.의 간극이 극에 달했을 때였다. 현실의 나.를 인정하지 않으니 받아들이지 못하니 수용할 수 없으니 과거에 대한 반추가 계속되고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나 자신을 끊임없이 벼랑끝으로 몰아세우고 있었다.
2019년 크리스마스, 나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 채 진심으로 내 안의 나에게, 내면아이에게 미안하다고 이젠 너를 외롭게 두지 않을게. 너를 힘들게 하지 않을게. 내가 널 지켜줄거야. 정말 사랑한다고. 그렇게 나 자신을 꼬옥 안아주었던 그날을.
나의 상황, 환경,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면ㅡ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었다. 한 발자국 나아간다는 건, 내겐 살아갈 용기를 갖는다는 것과 같았고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는 것이 현명했다.
그 우울과 무기력함에서 나오기 위해 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는 것. 몰입할 것이 필요했고 가장 먼저 내 몸을 움직이는 것이었다. 몸을 움직이니 많은 것이 해결되었다. 그땐 쉬지 않고 일을 잡아 했는데 주말이 따로 없었다. 그렇게 몸이 힘들어 사특한 생각을 할 겨를 없이 1년을 꼬박 보내고 나니ㅡ 언제 그랬냐는 듯. 지난 시절을 아름답게 기억하고 정말이지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내겐 그 시간이 정말이지 축복이었다고 선물이었다고 행운이었고.
나는 삶.에 대하여 나.에 대하여. 세상에 대하여 인간에 대하여ㅡ 이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뀔 수 있었다.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었고 겸손하게 되었다.
나는 대단하지 않다고. 대단하지 않아도 좋다고. 대단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라고. 사랑하기 위해 왔음을. 나는 그렇게 오랜 시간 뼈저리게 느끼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지금은 힘이 많이 빠지기도 했다. 여전히 흔들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전보단 많이 안정된 것도 있고 지친 것도 있다. 그 몰입의 1년처럼 다시 그렇게 살 수 있을까?싶을만큼 어쩌면 그 시간은 내 스스로 일어서기 위한, 스스로 살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었을까.싶다.
사람은 바닥을 치면 이젠 올라오는 일만 남는구나.그러니 견디지 못할 고통은 없구나.하는 것들. 경험적으로 나는 알게 되었다.
20대, 30대 초반만 하더라도 왜 그렇게 똑똑하고 지적여보이고 싶었는지. 왜 그렇게 만만해 보이고 싶지 않았는지... 지금 생각하면 이토록 겸손할 수가 없다. 지금의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나는 분명 이럴 것이다 싶은 것은 있다. "그때 똑똑하거나 똑부러지거나 단단해보이는 것보단 조금 부족해보이는 나, 조금은 덜 똑똑해보였으면 어땠을까... 어쩌면 그것이 더 현명했겠다.”
지금의 나는, 자연적이고 수수하고 보헤미안적이고 히피스러운 사람에 가깝다. 무엇을 설명할 것도 설명할 필요도 느끼지 못하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 이러면 이러는 대로 저러면 저러는 대로 그럴 수 있어.싶고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화장이나 옷차림을 하지 않는다.
내 마음에 여유가 있으면, 나는 이미 충만하단 걸, 나는 이미 있음을 아는 사람은 그 무엇이 더 필요할까.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이 왔고 갈 때도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채 흘러가지 않은가? 나는 그리고 우리 인간은 유한한 이 현실세계에서 더 갖지 못해 안달일까? 있음에 집중하지 못하고 없음에 집착할까? 괴로워할까?...
나부터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비오면 비가 오는대로 만끽하고 해가 쨍쨍한 날은 쨍쨍한 대로 만끽하고 모든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되는 거 아닌가? 알면서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은 현실에 이따금씩 좌절하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인생아니겠는가? 인생의 고통, 힘듦, 실패, 좌절은 피할 수 없다. 받아들이겠다는 마음만이, 수용만이 나를 더 큰 괴로움으로 몰고 가지 않게 한다.
사랑하며 살고 싶다.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고 진심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삶... 초연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다.
내 글을 보고 있자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내 글은 어쩌자고 모두 삶, 인생, 나, 사람에 관한 것일 뿐일까?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고 절로 그리 되는 걸 어떡하나.
내 세계의 관심이 이것이구나. 그 어떤 것도 묻고 따지지도 않지도 않고 내 안이 이야기하는대로, 내면의 소리 그대로 나는 지금처럼 나만의 글을 써내려갈 것이다.
나의 글.이 나 자신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위로하는 것처럼 누군가에게도 작은 공감과 위로가 조금이나마 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자리이타의 삶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