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 어린이의 뒷모습에서

by Aarushi

설연휴동안 호되게 앓았다. 체했는데ㅡ 간만에 엄마 집밥이라고 과식한 탓이다. 근육통에 오한과 발열에 구토에 정말이지 어떻게 견뎠을까 싶을만큼 이틀을 끙끙 앓았다. 365병원에 가서 닝겔을 맞고서야 조금 가라 앉았다. 평소 양보다 욕심내 과식한 것이 화근이었다. 혼자일 땐 그렇게 안먹다 먹으니 속이 놀랬구나.싶다. 그렇게 설 다음날이 되어서야 조금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끙끙 앓고 나니ㅡ 조금 나아지니 살 것 같으니 다시 태어난 기분에ㅡ 을사년을 앞두고 액땜한 것 같은 혹은 개운한 것은 아닐까.했다. 생각하기 나름이니 당연 좋은 방향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였다.


감기 몸살이든 그렇게 한 번 아프고 나면ㅡ 다시금 정신이 맑아지는 에너지가 다시 차오르는 것이 있다. 끙끙 앓게 된 김에 그렇게 이틀을 꼬박 방 안에서 꼼짝없이 누워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머릿속은 절로 이는 생각들로 날 쉬게 하지 못했지만 끙끙 앓다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겠다가 어느 새 또 눈떠보면 밤이고 그랬다. 몸이 아플 땐 별의별 생각이 든다. 몸이 이토록 취약하구나. 날 하릴 없게 꼼짝도 못하게 일어서지 못하게 하네. 몸이 이토록 취약해서야ㅡ 이래서야 무슨 일을 하겠나... 그러다 잠에 든다.


설 즈음, 실은 내 몸과 마음이 문자 그대로 꼼짝없이 완전하게 갇혀버린 듯한 기분이었는데ㅡ 옴짝달싹 못하게 된 기분이었는데 과식도 과식이었지만 감정의 혼돈이, 감정이 고스란히 몸으로 드러난 것임이 분명했다. 몸이 아프기 전 날, 혼란스럽기만 한ㅡ 나의 평온을 잡식해버린 생각과 감정의 나열을 몸의 움직임을 통해 어떻게서든 회복하고자 무작정 걸으러 나왔다. 어두컴컴해진 바닷풍경, 회색잿빛 그리고 핑크와 블루로 채색된 저녁 6시 즈음의 하늘은 날 다시 회복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한참을 그곳에 있다 돌아오는 길에 찍은 사진 한 장이다. 초연하게 찍은 사진 한 장에서도 나는 사람은 왜 사는지. 삶은 무엇일지. 인생이란 무엇일지. 산다는 게 도대체 무엇일지... 늘 그렇듯 절로 이는 철학적 사유와 사색에 발걸음을 맞춰가며 집까지 걸었다.


몸이든 마음이든 한 번 무너지면 오뚝이처럼 일어나 아무렇지도 않게. 무심하게. 아무일 없었다는 듯. 다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애정이 있다. 감기 몸살이든 무엇이든 몸이 아프고 나면 다시금 느끼게 되는 것들이 있다. 감정이 휘몰아치면 정말이지 어김없다. 몸의 통증이 온다. 어떻게서든 내게 알린다. 몸이 쑤신다든지 잠이 쏟아진다든지 잠이 오지 않는다든지 몸살이 온다든지 머리가 지끈 아파온다든지... 감정이 몸의 문제란 걸 그렇게 꼭 확인하고나서야 알아차리게 되는 일이란.


어느 날은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ㅡ 무기력한 상태로 누워있다가 또 언제 그랬냐는듯 생의 의지가 타올라 활발하고 생기있는 일상을 이어나간다. 죽을 때까지 이렇겠지? 그렇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동안 평온할 수 있도록 고요할 수 있게 하는 일일 것이다.


감정이 침잠하고 난 뒤, 폭풍우가 한바탕 지나간 자리엔 어김없는 정적, 고요가 찾아온다. 그것은 선물과도 같은 것인데ㅡ 이토록 평온한 순간일 수가 없다. 평온에 머무르는 사이, 옷장에서 무지 리빙박스 하나를 꺼낸다. 그 속엔 갖은 것들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는데 그 중 사진 앨범 2개를 꺼낸다. 아기때부터 초등학교 때까지 나의 어린시절 사진 앨범인데 고요한 순간 이 앨범을 보고 있자면 더욱 차분해지고 생이 아련해지고 생이 아름다워보이고 생의 찰나에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자식의 어린 시절 모습의 순간을 포착해 인화해 보관해 온 내 부모의 무한한 사랑과 지금의 나와는 생경하게 이토록 순수한 눈망울과 미소를 짓고 있는 아기, 어린이 내가 보고싶어서고 느끼고 싶어서다.


요즘 부쩍 눈물바람을 하는데ㅡ 어제 늦은밤 앨범 속 유치원 졸업장을 받는 어린이의 뒷모습을 보고는 눈물을 글썽이고야 말았다. 그러곤 나도 모르게 그 아이를 바라보며, "어쩜 이렇게 맑은거니? 어쩜 이토록 순수한 눈망울을 지녔니? 어쩜 이토록 활짝 웃고 있니? 무엇이 이토록 행복한 거야? 즐거운 거야? 너의 사랑스런 눈망울, 활짝 핀 입가의 미소를 보고 있자니, 눈물이 나. 이렇게 예뻤구나. 이렇게 사랑스러웠구나. 이렇게 귀여웠구나... 이토록 사랑많이 받고 자란, 어여쁜 아이였구나...! 그동안 많은 걸 놓치고 살았구나. 그래서 미안해."


알록달록 한복을 입고 유치원 학사모를 쓴 아이. 단상 위에 올라 졸업장을 받고 있는 아이. 내가 눈물이 또르르 났던 건, 상장을 받기 전 고사리 같이 작은 양 손을 야물게도 주먹쥐곤 양 옆에 가지런히 내린채 서있는 어린이 나의 모습에서였다. 분명 7살 난 어린아이의 뒷모습일 뿐인데ㅡ 그 장면을 포착했을 부모님의 모습도 보였고 정말이지 삶이 무엇일지. 인생이 무엇일지. 앞으로 너의 인생이 어떻게 될 지도 모른채 마냥 살아갔을, 삶은 그저 살아지는 걸이란 것조차 모른 순수 그 자체였을 아이의 뒷모습에서ㅡ 그 아이에 대한 사랑, 귀여움, 순수함, 맑음, 미안함, 안타까움... 갖은 감정이 뒤섞인 것이었다.


다른 것보다 고사리 같은 작은 양손을 굳게 쥐고 있는 그 뒷모습이 나는 왜 이토록 슬펐는지. 눈물이 나던지. 이따금씩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는 일은 역설적이게도 오래묵은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게 한다. 그러고나면 굉장히 개운한 기분에 지금의 나에게 토닥토닥 고마움과 위로를 절로 전하게 된다.


나는 왜 태어났지? 나는 어디에서 왔을까? 내가 태어나기 전의 나는 어디에 있었나? 나는 어디로 가는가?... 혼자만의 고독은 정말이지 행운이었다. 축복이었다. 선물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혼자만의 고독 속에 침잠한 채 나 자신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내면에 주의를 기울였다. 내 안의 나에게 질문했고 답하기를 반복했다. 고독은 내게 늦은 깨달음이라는 큰 선물을 가져다주었다. 깨달음이란 거창한 것이 아닌,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겸허히, 기꺼이 받아들 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과 사랑, 감사, 용서의 마음을 진실로 느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린이 나에게서 나는 빛을 본다. 그 시절의 나는 내 기억 속에 있다. 잡으려해도 잡을 수 없는,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스토리가 되었지만ㅡ 그 아이를 통해 지금의 나를 더욱 사랑하게 되고 더욱 존중하게 되고 더욱 친절하게 되고 지금의 나.에게 집중할 수 있게 한다. 그 아이는 기억이자 나의 스토리텔링이다.


몸이 이곳저곳 쑤시는 날이면 나이들어가는구나.싶으면서도 내 감정을 먼저 돌아보게 된다. 지금 내 마음은 평안한지. 우울한지. 무기력한지. 불안한지. 두려운지. 걱정이 태산인지.


그렇게 한참을 앨범을 들여다보다 이내 따뜻한 눈물의 온기에 젖었다가 이내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곤 앨범을 덮기 전 아이와 인사한다. "사랑해. 그리고 고마워. 넌 이토록 사랑받는 아이였단다. 지금도 언제까지나."


사랑.이 전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