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사르르 스르륵 그러다 주르륵 흐를 때가 있다. 슬퍼서 일 때도 자연 앞에서 형언할 수 없는 경이로움을 느낄 때에도, 내 안에서 솟아나는 어떤 것을 느낄 때에도, 감사할 때에도, 기쁠 때도 눈물이 흐른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결국 슬픔도 기쁨도 환희도 조이도 경이로움도 결국은 다 하나구나. 과연 옳은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는가? 옳고 그름이란 게 있는가? 좋고 나쁨이 있는가?...
이 새벽 자주 듣는 성시경의 노래를 재생하곤 노트북을 켜 자연스레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 글쓰고 있는 나를 알아차린다. 글쓰는 동안은 정말이지 과연 누가 쓰고 있는 것인가.싶을 만큼 휘리릭 쉼없이 써내려간다. 그렇게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고 나서야 무언가에서 깨어난 듯.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 시공간을 초월한 듯. 번쩍인다. 그러곤 내가 써내려간 글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내려간다. 내가 이런 문장을 썼구나. 네가 지금 이런 마음이구나. 다사다난하고 복잡한 심경과 번잡한 감정들이 한눈에 들여다보인다. 아, 그렇구나. 지금 너 많이 슬프구나. 아프구나. 힘들구나. 불안하구나. 두렵구나... 그렇게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보듬어주고 살핀다.
정말이지 사는 세상, 내가 아니면 누가 날 보호할까. 내가 아니면 누가 날 사랑할까. 내가 아니면 누가 날 아껴줄까. 내가 나를 존중하지 않으면 누가 날 존중할까... 하는 것들. 진심으로 내가 나에게 무한한 사랑을 준다.
부쩍 자주 눈물 바람을 한다. 길을 걷다가도 앉아있다가도 저 멀리 보이는 바다를 바라볼 때에도, 저 높은 밤하늘을 바라볼 때에도, 무엇이 이토록 날 눈물나게 하는지. 나이가 정말 드는 것인지. 정말이지 아주 조금씩 철이 들어가는 건지. 엄마 생각만 하면 어느 날은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나의 엄마이기 이전에 어여쁘고 순수한 어린이였을, 아이였을, 소녀였을 엄마가 보인다. 그런 엄마에게 나는 어떤 딸이었나?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딸이었을지. 이제는 정말이지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준, 나의 엄마에게 친절해야 한다. 정말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얼마 전, 엄마는 내 메이크업 파우치가 귀여우셨는지. 나는 그 자리에서 깨끗하게 빨아 엄마를 드리고 왔다. 새 것을 사드리고 싶었지만 온오프라인으로 이제는 구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던터라ㅡ 돌아와선 혹시 몰라 몇 년 전에 샀던 그 매장에 다시 가보았다. 내 것과 앞 그림과 색깔만 다른 게 딱 2개가 다른 제품들 사이 맨 뒤에 놓여져 있었다. 고민할 것 없이 감사합니다.하고선 2개를 샀다. 엄마와 커플템이라는 생각에 신이났다. 참 별 거 아닌 것이 기쁘고 즐겁다. 정말이지 별 거 아닌 것이 날 별 거 이게 한다.
그렇게 냉큼 집어 든 순간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딸 어디니? 밥은 먹었어?" 나는 곧장 새 파우치 사진을 찍어 보냈다. 전화너머 엄마는 소녀처럼 깔깔깔 웃으셨다. 귀여운 페이퍼돌인데 엄마도 여전히 소녀구나.를 느끼게 된다. 나는 오래전부터 필통이며 작은 파우치며 페이퍼돌을 쓰고 있다. 헤지면 헤진대로 잘 쓰고 있다.
새 파우치와 이것저것 함께 싸서 택배로 부쳤다. 택배로 부치면서 그 안에 메모를 남겼다.
"소녀 OO에게(하트) 엄마 사랑해요(하트)" 매직으로 아주 큼지막하게도 썼다. 내 사랑이 나의 엄마에게 닿기를 간절히 바라며.
나는 늘 죽음을 생각한다. 나는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절로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는데ㅡ 그러다보니 지금 이 순간이. 나와 내 부모.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시간도 마찬가지로 그리 길게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래서인지 아주 많이 너그러워졌고 진짜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의 내가 만족스럽건 만족스럽지 않건. 그 어떤 것도 잘못된 것은 없다. 이제 더는 나를 설명하고 싶지 않다는 것도. 며칠 내 폭풍우처럼 불어닥친 불안과 우울과 두려움의 감정에 넉다운 되기도 했다. 아무렴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한들 잠깐새라도 나는 감정들에 여전히 치인다. 그 치임도 그러려니. 또 왔니? 그래 그래 그래... 잠깐이다. 넌 다시 사라질테니까. 받아들인다. 이게 인생이구나. 생각은 내가 아니다, 생각을 멈추고 싶다고 내가 멈출 수 없다는 것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알아차림뿐이란 것도.
감정이 일면 몸에 즉각적으로 반응이 온다. 그렇게 몇 분이고 몇 시간이고 스러져 있을 때도 있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감정이 몸의 문제란 것도 알아차리게 되면서 그 감정에 완전히 잠식되지 않는다. 발을 살짝 담갔다 떼는 정도일까.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지. 감사한지. 나의 평온을 위한 일엔 게을리 하지 않을테지만, 살아있는 동안은 에고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수시로 날 찾아오는 것이구나. 알아차리면 된다. 그렇게 나를 다독인다.
거울을 바라본다. 내 눈동자는 평안한지. 빛을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맑은지. 어린 아이같은 순수한 눈망울이 느껴질 때면, 눈물이 글썽여진다. "고생했다. 수고했어. 잘 견뎌냈구나. 애썼어. 사랑해." 내가 나에게 진심으로 하는 말이자 소통이자 위로다.
그 위로와 연민은 나를 넘어 나, 그리고 내 부모, 형제자매, 친구, 동료, 세상 모든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확대된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한 사람 한 사람 우리들의 영혼은 저마다 각자의 생을 살아가는 전사구나. 모두가 이토록 애쓰며 살아가고 있구나. 그것이 무엇이든지간에 우리 모두는 이토록 힘겨운 생을 붙잡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구나. 살아져가는구나... 하는 마음. 너와 나는 다르지 않다,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는 무한한 사랑이다.
나 자신이 흐르는 눈물은 나에 대한 눈물이자 타인을 향한 눈물이란 걸.
울고 싶으면 눈물이 흐르는대로 내버려둔다. 지켜본다. 받아들인다. 알아차린다. 지금 내게 흐르는 눈물이 무엇일지.그런 것 없이 내게 이는 감정을 기꺼이 수용한다. 내게 일어난 일 그리고 감정에 저항하지 않겠다.는 마음이기도 하다.
내 마음이 하염없이 무너져 내리는 날엔,
나도 이러할진대, 타인도 하루에도 여러 번 혹은 수십 번 무너져 내리는 일이 있을테지? 하는 마음이 든다. 그러니 사랑할 수밖에. 친절할 수밖에. 상냥할 수밖에. 존중할 수밖에.
정말이지 실체없는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잊을만하면 내게 똑똑똑. 문을 두드리며 찾아와 시험하는 에고라는 녀석도,
그것들과 싸워서 무엇하리.
마음과 싸우지 않는다. 물러갈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알아차리면 너는 내가 아님을.알게 된다.
모든 것은 다 내 안에 있는데ㅡ
이따금씩 불어오는 불안과 두려움, 걱정, 염려에 왜 이토록 쉽사리 무너지기를 반복하는 걸까?...
인생이 이토록 찰나였구나.
지난 시간들이 꿈같다는 건, 실은 진짜 꿈이기 때문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