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부르면

by Aarushi

제주는 비가 내린다. 아침 일찍 엄마와 함께 볼일을 본 뒤 엄마는 엄마의 일정을 위해 떠나고 나는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나만의 시간을 갖도록 한다. 엄마댁에 오면 꼭 근처 맥카페에 들른다. 다른 곳보다도 맥카페 커피를 좋아하고 익숙해서이고 편안해해서인데, 이 아침 이토록 한산하고 여유롭다. 비가 오면 오는대로, 빗줄기가 거세면 거센대로 있는 그대로의 창밖 풍경을 바라본다. 우리가 보는 현실은 실은 있는 그대로일 수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비내리는 이 온도, 습도, 공기, 내음새, 빗줄기 소리, 창밖너머 자동차들의 라이트 조명, 아직은 어두컴컴한 아침... 맥커피와 에그맥머핀 단품... 핸드폰, 수첩과 노트, 노트북, 앉아있는 나, 노트북 키보드를 켜고 글쓰고 있는 나... 그걸 알아차리는 나... 이토록 조화로울수가. 감사하지 않은 것이 없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평온이고 안정이고 평화이지 않고 무엇이겠는가.한다. 우리 모두가 알아차림을 알아차리는 삶에 익숙해진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훨씬 더 평화로울텐데.


맥카페를 갈때면, 어김없이 시청역 맥카페, 마포역 맥카페, 여의도IFC 맥카페의 추억이 떠올라 그 시절 짙은 향수에 젖곤한다. 시청역 맥도날드는 광화문 직장인 시절, 출근 30분 전 쯤 들러 1000원짜리 드립커피를 마시다 회사로 들어갔던 스물 후반에서 서른 즈음의 스토리가 있다. 마포역 맥카페는 친한 동기언니와 평일이건 주말이건 만남의 광장처럼 만나던 곳이기도 했다. 십년 가까운 세월이 이토록 찰나일수가 없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어두컴컴한 아침에 엄마와 지나가는 길에 제주검진센터에 들러 엄마검진예약을 잡기로 하고 나서는 길이었다. 광화문 직장인 시절엔 광화문 건강검진센터로 검진받으러 종종 갔던 곳인데, 아주 사소한 것에서조차 진한 옛 향기를 느낀다. 그렇다고 해서 지나간 과거를 붙잡는 것은 아니기에, 절로 일으켜지는 것들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정을 인정하고 느끼고 수용한다. 돌이켜보면 광화문에 대한 추억은 늘 기분좋은 감정들만 떠오르고 따뜻한 온기다.


광화문은 나와 기운이 맞는 것이 분명하다. 광화문에만 오면 늘 편안하고 기분좋고 에너지넘치니.^^


차 안에서 엄마와 나눈 이런저런 무작위한 대화들도 좋았고 낭만이었다. 핑크색 털복숭이같은 니트를 입었는데 별 거 아닌 것에도 기분좋아지고 그저 모든 것이 감사하고 경이롭다.


나: 엄마! 생각해보면, 내가 앞으로 길어봐야 30년이나 살까? 분명한 사실은 필멸한다는 거야. 그러니 뭐가 그리 두렵고 불안할까? 그지? 왜 지난번에 내가 산방산 해안도로 달리다가 중간에 사진 찍어서 엄마한테 보냈잖아. 그때 엄마가 내게 보냈던 메시지 기억나? "네 마음도 저 푸른하늘처럼 늘 맑았음 좋겠어..."

엄마는 어릴적부터 나한테 그랬어. "씩씩하게 살아!"


엄마: 이토록 찰나지. 그러니까 더 젊었든 지금이든 무엇이 늦었니? 뭐든 도전해보고 엎어지면 또 다시 시작하고...!


에그 먹머핀을 한 입 베어 물었다가 창밖 한 번 바라봤다가 이토록 무작위할 수 없는 흐름 속에서도 노트북 키보드에서 손을 떼지 않는다.


며칠 전 저녁 6시쯤이었을까. 저 멀리 보이는 제주 바다가 날 불렀다. 주섬주섬 나갈 채비를 하고선 곧장 마음이 시키는 대로 바다로 향했다. 이럴 땐 몸의 움직임이 먼저 앞서게 된다. 천천히 늦은 걸음으로 30분 정도 걸으면 황홀한 풍경이 내 눈 앞에 나타날거란 걸 알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몸을 일으켜 집을 나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이, 이 바다가 날 기다리고있었다. 지금의 나는, 자연, 풍경, 사람, 사물, 모든 것들에 대하여ㅡ 어느 것 하나 허투루 그냥 지나쳐지지가 않는다. 절로 말을 걸기도 실은 절로 말이 걸어지는 것이 맞다. 그렇게 함께 호흡하고 숨쉬고 하나가 된다. 내 안에 너가 있고 너 안에 내가 있다. 내 안에 전체가 있다는 것. 그것은 마치 본래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절로 알아차려지는 것이 되었다.


사진과는 다르게 빗방울도 떨어지고 바람도 거세게 부는 날씨였다. 차들도 한 두 대 정도 간간히 지나가는 정도에 인적도 드물었다. 나는 그곳에서 어디에 앉지도 않은 채 서서 그렇게 자연의 온 기운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함께 호흡하고 있었다. 그 경험은 마치 자연과 소꿉장난하듯 온 우주가, 자연이 내게 후.하고 입바람을 부는 것 같기도 마치 온 기운을 내게 선사하는 듯한 결코 요란스럽지 않은 이토록 고요한 평온한 awe의 순간이다. 너와 나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함께 호흡하고 숨쉬는 기분이다.

15분 가까이 그렇게 서서 눈을 감은채로 있었다.

“바다가 날 불렀구나. 내게 이토록 아름다운 선물을 주기 위해서였구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나는 사랑을 경험하기 위해 이 지구별에 온 것이겠지?

정말이지 이토록 아름다운 모든 것들을 사방에 두고 나는 그리고 우리는왜 그토록 잡히지 않는 것에, 저 멀리의 것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걸까?


정말 모든 것은 다 내 안에 있는데 말이지.


바다가 부르면,

자연이 부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머뭇거리지도 말고 곧장 달려와야 한다.

그것은 분명 고요라는 우주의, 이 자연이 내게 주는 틀림없는 선물이니까.

그렇게해서 받은 사랑을 나는 또 다시 이 세상에 나눠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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