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포근하다. 따뜻하다. 이러다 곧 여름이겠구나.하는 생각. 주차를 하고 천천히 걸어올라갔다. 걸어올라가는 길에도 알아차림을 알아차림한다. 걷고 있구나. 호흡하고 있구나. 숨쉬고 있구나. 숨이 들어오고 있구나. 숨이 나가고 있구나. 그렇게 하늘도 보고 양 옆 산책로도 봐가며 한 손엔 텀블러를 들고 다른 어깨엔 숄더백을 야물게 멨다.
대웅전엔 사람들로 붐벼 다른 곳으로 들어와 방석을 들고와 앉았다. 문쪽 가까이에 앉았는데 살랑이는 바람이 내 명상을 더욱 수월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저 멀리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도, 인간의 소리도 그 모든 것이 둘이 아니다. 전혀 시끄러운 것이 아닌, 그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소리일 뿐이다. 눈을 감았다. 내 앞을 지나가는 인기척도 내 옆에 누군가 자리잡아 앉는 듯한 인기척도 어느 순간 고요해진다. 오늘 이곳을 온 건 참 잘한 일이었다. 왠지 절을 찾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유는 심플하다. 고요함과 평온함을 되찾기 위해서. 자연을 거닐고 싶어서. 사색하고 싶어서. 걷고 싶어서. 도시의 것과는 다른듯한 무척이나 살갑고 다정한 바람결을 맞고 싶어서.
요 며칠 이래도 되는 건가? 나 왜 이러나? 똑똑똑 거기 계세요? 괜찮은 거죠?라며 내 안에 말을 걸었다. 시시로 날 옥죄는,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불안과 두려움이 어디론가 완전히 사라진 것 같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래. 지난주까지만해도 시시로 불안이 밀려왔는데 두려움이 밀려왔는데 우울감이 밀려왔는데 무슨 이유에서일까. 정말이지 오늘까지 지난 삼일동안 나는 하나도 불안하지 않았다. 두렵지 않았다. 우울하지 않았다. 몸을 평소보다 즉각즉각 분주하게 한 것도 있겠지만 움직이는 건 늘상 있는 일이고. 묻고 따지고 해석할 것도 없이 무튼 나에겐 이로움이다. 평온함과 고요함이 내 안에 머무니, 내 곁에 있으니.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되겠다.
눈을 떠보니 눈깜짝할새 12분이 가 있었다. 편안함이었고 고요함이었고 평온함이었다. 명상은 내게 다름아니다. 알아차림이다. 편안했고 하고나서도 편안하면 되었다. 기분이 나아지면 되는 것이다. 눈을 딱 떴을 때 언제 10여분이 흘렀는지 모르게 정말이지 그 순간만큼은 시공간을 초월한 듯한 혹은 시공간이 공.이 되어버린듯한, 멈춘듯한 멍.때림을 몇초간 느끼게 된다. 그 멍함 뒤엔 늘 명료함이 있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는 순간 강아지 한마리가 훅 문턱을 넘었다 다시금 내려갔다. 그러곤 바라본 저 너머 바깥 풍경은 산수화 그 자체였다.
아름답다. 이토록 아름답구나. 자연은 말이 없네. 자연이 날 보호하고 있구나. 내가 사는 세상 이토록 화창하구나. 눈부시구나.하는 awe의 순간들. 이러려고, 알아차리려고 나는 자연을 이토록 찾는다. 나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서. 많은 것을 놓치고 사는 일상에서, 도시의 삶에서 나는 무엇을 기대하나? 이토록 평안과 고요와 행복이 이렇게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 역시 다 내 안에 있는 것이구나. 누구를 탓하리. 내 안에 전체가 있는데. 다시금 생의 의지를 다진다.
용기가 파릇파릇 돋았다 꺼지기 일쑤다. 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다시금 미래에 대한 불안이 밀려오면 싹 수그러든다. 이 마음을 달래기 보단 묵묵히 차분하게 침착하게 내 안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한다. 나의 두려움이 어디에서 오는 것 같은지. 왜 불안한지. 실은 간단하다. 지금 여기.에 있지 않아서. 지금 현재.에 머무르지 못하고 있어서다.
꼬불꼬불 시골길을 운전하면서 나는 소리내어 말하고 있었다. 내가 나에게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 내가 나에게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들, 알게 된 것들, 깨닫게 된 것들...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 사이 내 안은 더욱 안정되었고 이야기하는 내내 미소가 절로 나왔다는 사실. 이토록 강력한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는 집안 대청소를 시작했다. 버릴 건 비워내고 쓸고 닦고 빨래하고 다름 아닌 일상에서의 알아차림, 소위 집안청소 명상이 된다. 일상에서의 알아차림에 대한 알아차림이 습관화되면 실은 앉아서 하는 명상 다름 아닌게 된다. 일상에서의 알아차림이 말 그대로 일상이라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효율적이면서 가장 안정적인 것이지 않을까.
어제 마트에서 알배기를 묶음으로 세일해서 팔길래 사왔다. 생각난김에 알배기를 총총 썰어 삶았다. 배춧국용으로 프렙해놓자 했는데 메뉴를 변경했다. 이틀 전 만들어놓은 된장소스에 묻히면 맛잇겠다.싶었다. 참기름도 넣지 않고 깔끔하게 묻혔다. 신선한 재료로 날 위한 음식을 만들 때, 재료준비할 때, 반찬통에 차곡차곡 예쁘게 정성스레 담아 냉장고에 넣을 때 나는 넉넉한 마음이 든다. 부자된 기분이다.
사소한 것 같으면서도 소소한 것 같으면서도 지극히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실은 나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방법 중 하나라는 점에서 결코 사소하고 소소하고 평범하지 않은, 지극히 특별한 일이 된다. 평범과 특별함은 다름 아니다. 실은 하나다. 작은 사이즈의 카페트와 쿠션도 빨아 널었다. 걸레로 이곳저곳 쓱쓱 닦고 나니 내 마음도 덩달아 쓱싹 닦이는 기분이다. 기분이 나아지면 그것이 개운이다.
삶이란 건 이토록 평범한 거란 걸, 이토록 평범해서 그래서 더욱 소중한 것이란 것도, 실은 사는데 의미를 둘 필요도 없다는 것도. 지리멸렬한 자기 만의 고독을 마주하고서야 만나게 되었구나.
내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 실은 내게 얼마나 남았을까?에 큰 관심은 없다. 늘 생각하는 건, 나는 죽기로 되어있다. 나는 언젠가 분명 죽는다.는 것인데, 삶과 죽음이 무어가 다를까. 내게 자기 자신.이 된다는 건, 자기 자신이 되어 살아간다는 건, 내가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산다는 건, 어떤 미지의 것을 탐구하거나 하는 것이 아닌,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 지금 여기.에 있음. 알아차림.이다.
며칠 째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내 안을 두드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희한할 노릇이다 싶지만 어쩌면 매일을, 순간순간 불안하고 두려운 감정을 느끼고 사는 것이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나의 이 평온함과 안정과 고요가 무척이나 감사하고 반갑다. 분명 또 언제그랬냐는듯 빼꼼, 똑똑똑 하고 불쑥 찾아올 것이지만 이제는 그 감정이라는 녀석들이 귀엽게 보인다. "너희들도 참 애쓴다^^."
감사하며 사는 삶 .
받아들이는 삶. 수용의 삶.을 살면 마음이 이리도 쉬이 풍족해진다.
어떨땐 이토록 단순한 것이었구나.무릎을 탁 칠만큼 놀랄만큼 별 거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