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보면 한없이 충만함을 느끼게 된다.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즐비한 빌딩 숲 도심을 걸어도 수풀과 벚꽃이 만발한 자연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다행히도 걷는 걸 좋아하니, 걷기를 통한 알아차림은 내겐 이토록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부쩍 수시로 걷는 요즘, 내 사색은 농밀해지고 내 질문은 더욱 영글어간다.
나는 어떨 때 행복감을 느끼는가? 행복해지는가? 즐거운가?를 생각해보면 내가 베풀때다. 내가 타인에게 도움을 주었을 때, 사랑과 친절을 베풀때 큰 행복감과 충만함, 온전함, 평온함을 느낀다. 그제 택배가 왔다. 엄마가 보내주신 게 분명한데, 아이스박스 속엔 분명 먹을거리가 한 가득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에 택배가 도착한다는 오후 3시까지 점심을 늦췄다. 엄마의 택배는 마치 도라에몽의 요술 주머니와 같은데 그 자체가 엄마가 내게 보내는 무한한 사랑이다.
택배를 여는 순간, 나는 어린아이처럼 신나한다. 사진을 족족 찍어서 엄마에게 전송한다. 감사함을 있는 그대로 잘 표현할 줄 아는 것 역시 내겐 엄마의 사랑에 대한 보답이다. 그렇게 타파통에 차곡차곡 김치며 깍두기며 파김치며 반찬들을 야물게 담는다. 고기며 전복도 칼집을 내서 바로 구워먹을 수 있게 보내주셨다. 냉동실 냉장실이 꽉 차서 더는 들어갈 자리가 없어졌다. 이날 엄마의 택배 하나로 내 마음은 정말이지 부자된 기분에 용기가 솟아났다. 결국 사랑이다.
TV를 보지 않는 편이라 켜놓더라도 인간극장이나, 다큐온, 동네 한바퀴, 나의 문어 선생님 등 이런 류의 프로그램을 틀어놓거나 신도라에몽을 즐겨본다. 도라에몽을 무척이나 귀여워 한다. 얼마 전 도라에몽 도시락을 발견하곤 고민없이 냉큼 사왔다. 그 옆에 도라에몽 미니 물통이 딱 2개가 남은 거 아닌가. 본래 엄마와 커플로 나 하나, 엄마 하나 하려고 했으나 나와 같이 도라에몽을 좋아하는 조카에게 한 개를 선물하고 하나는 엄마에게 보내드렸다. 도라에몽 물통 선물에 엄마는 귀엽다고 깔깔깔.웃으셨다. 도라에몽 물통을 선물받은 조카는 좋아 어쩔 줄 몰라하고 책가방 옆 주머니에 매일 들고 다닌단다.
별 거 아닌 것 같으면서도 별 거 아닌, 내겐 기쁨이자 즐거움이자 평온이자 행복감을 주는 것들이다. 마흔이 코앞이니 이제서야 철이 아주 조금씩 들고 있는 것인지. 부쩍 내 부모님이 생각난다. 그동안 나는 정말 좋은 딸이었을까? 살뜰한 딸이었을까? 싶은 것이. 실은 좋은 딸이 아니었구나.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딸이었구나.를 진심으로 깨닫게 되면서 지금부터라도 내 부모에게, 엄마 아빠에게 내 부모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무한한 사랑과 친절을 베풀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레 절로 들고 있다.
지난 주엔 아빠댁에 들러 냉장고에 반찬들을 넣어놓고 왔다. 삼을 넣어 푹 곤 삼계탕에 두부무침에, 삼겹살 콩나물 볶음, 어묵탕, 닭안심 병아리콩 샐러드를 정성껏 해서 반찬통에 담아 뚜껑 위에 하나씩 메모까지 남겼다. 아빠가 며칠은 맛있게 드실 생각에 이토록 마음이 따뜻해지고 평온해지고 즐거운지. 집에 오셨을 때 냉장고에 있는 음식들을 보면 얼마나 좋으실까.싶고 아빠도 자식이 아빠를 이토록 사랑하고 있다는 걸 느끼셨으면 좋겠는 바람.도 있다. 너무 맛있게 드셨다는 전화 한통이 내게 이토록 행복감을 준다. 아빠는 다음주에 올 수 있냐고 물으시곤 토요일에 외곽으로 드라이브겸 벚꽃 구경을 갔다가 점심을 먹고 오자고 하셨다. 서로 주고 받는 마음이 결국 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어젯밤, 장 봐온 신선한 식재료를 다듬고 몰입하며 요리를 했다. 침착하면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요리를 했다. 잘 내린 육수에 간밤에 고춧가루 갖은 양념에 재워놓은 닭고기와 구운 파로 육개장을 끓였다. 토마토도 쪄서 올리브 오일 듬뿍 넣은 소스를 만들어 재웠다. 들깨가루 넣은 닭안심 볶음도 했고 깻잎도 쪄서 깻잎양념장아찌도 만들었다. 감자채도 깨끗하게 볶아서 반찬통에 담았다. 오늘 아침 짐을 싸보니 무게가 상당하다. 지금 내가 아빠에게 할 수 있는 일이란 이렇게 마음을 담아 음식을 해드리는 것이 아닐까.싶은 것이 내겐 사랑의 표현이자 감사함의 표현이다.
내가 하는 음식엔 설탕이 들어가지 않는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편이고 레몬이나 향신료를 사용해 이국적인 맛을 내는 편이다. 그래서 날 위한 요리나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요리할 때 건강한 음식이라는 것에도 안심이 된다. 아빠가 저녁을 사주신다고 한다. 집에 먼저 도착한 나는 그 자리에서 반찬통 뚜껑 위에 하나하나 메모를 써서 붙인다. 차곡차곡 아빠의 냉장고를 채우고 나니 나는 어쩜 이토록 행복감을 느끼는지.
그러곤 집 근처 카페에 왔다.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이 주변을 좀 걸으려 했는데 기어코 노트북을 가지고 왔다. 오늘은 왠지 글이 쓰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아빠가 늦은 오후쯤 도착하신다고 하니 나는 나대로 걷고 마시고하면서 밖에서 토요일 오후를 만끽하고 들어가면 되겠다.
부모님은 통화끝에 항상 먹는 것에 아끼지 말고 잘 챙겨먹으라고 하시는데 부모님이 자식에게 바라는 건 정말이지 실은 그게 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자식이 건강하게 평안하게 잘 사는 것. 정말이지 딱 그것.
아주 조금씩 철이 들어가고 있는 것인지. 마흔이 코 앞이니 내가 중학생이던 때 엄마 아빠는 마흔 한 두 살이셨는데 그때의 기억이 선명한데, 내 부모의 삶도 얼마나 고되었을지. 얼마나 힘겨웠을지. 이제서야 아주 조금씩 지나간 내 부모의 삶이, 한 여자, 한 남자로서의 삶이, 삶이라는 찰나가 보인다. 부쩍이나 희게 쇤 부모님의 머리카락을 볼 때면, 손의 주름을 볼 때면, 부모님의 뒷 모습에서 눈물을 삼키게 될 때면, 나와 부모의 인연이란 무엇이었을지.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해 준 내 부모에게 정말이지 감사해야 한다. 친절해야 한다.고 알아차리게 된다.
사랑.
그것이 전부다.
사랑은 사람을, 삶을 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