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을 꿨다. 일요일 아침 일어나서도 생생한 꿈에, 장면에 기억에 찝찝한 기분이었다. 여느 때처럼 대수롭지 않았으나 내 감정과 기분은 갑작스레 불안, 두려움, 스멀스멀 올라오는 우울감, 외로움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분명 꿈때문이 아니었으나, 악몽과 더불어 일요일 우연히 내게 일어난 일련의 사건이라는 감정에 나는 그렇게 스러져가고 있었다.
감정이 몸의 문제란 걸 알아차리면서도 이토록 몰아칠 땐 어쩔 방도가 없는, 온 몸으로 이 감정을 두들겨 맞고나서야 잠잠해지는 건 나도 어쩔 수가 없다. 분명 이 불안, 두려움, 우울이란 부정적인 감정과 몸의 반응. 아, 내가 지금 저항하고 있구나.를 알아차리게 된다.
이럴 땐 보통은 몸을 즉각적으로 움직이는데, 집 밖을 나서 산책하거나, 드라이브를 나가거나, 카페에 가거나 어떻게서든 내 주의와 의도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 하는데 어젠 춥고 거센 비바람이 날 얼마가지 못해 돌아서게 했다. 일요일 오전부터 오후내내 해가 져 사방이 어두컴컴해지고나서야 감정들이 사르르 물러갔다.
정신없이 부엌 청소를 했다. 수세미로 빡빡 밀고 닦고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만큼 감정들에 내가 무참히 스러져가지 않게, 무너져 내리지 않게 몸을 움직여야만 한다.
변덕스런 날씨를 보며 이내 든 생각은, 저렇게 변덕스런 날씨조차 우연히 일어난 것이거늘, 예측할 수 없거늘 나는 어쩌자고 내 삶을, 내 인생을 예측하고 통제하려 하는가? 내 삶이 실은 수많은 우연으로 이어져 왔음을 나는 왜 잊고 있는가?
밤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금 안정을 되찾았다. 이럴 때일수록 날 위해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자.싶어 부엌으로 갔다. 흑미밥도 짓고 그 사이 오징어국도 끓이고 고기도 구웠다. 내 취향의 볼 하나에 준비한 음식을 마치 비빔밥처럼 잘 담았다. 혼자라고 대충은 없게 됐다. 그럴수록 더욱 정성스럽게 예쁘게 담아 먹는다. 이 또한 나에 대한 존중이자 친절이자 사랑이라는 생각에서다.
일요일 밤, 조금은 안정된 차체에 침대 맡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니, 결국 지나갔구나. 나의 저항이었구나. 폭풍이 한바탕 지나간 자리는 이토록 차분하다. 고요하다.
내가 불안함을 느끼는 건, 두려움을 느끼는 건 실은 내가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불안과 두려움, 삶에 대한 고뇌와 번뇌란 분명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애쓰지 말자, 저항하지 말자. 받아들이자. 수용하자. 흘러가게 두자. 그리고 정말이지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자. 이렇게 끝을 맺는다.
나는 분명 죽어가고 있다. 나는 언젠가 분명 죽는다.는 생각만큼 내 생의 의지를 즉각적으로 끓어올리는 것이 없다. 불안과 두려움과 우울과 걱정에 격하게 몸서리치다가도 그래, 난 죽어가고 있어. 분명 죽게 될거야. 그런데 왜 이 순간을 이토록 힘겨워하고 쓸쓸해하고 결국 스러지고 마는거야? 왜 이것들에 무너져 내리는 거야? 너무 억울하지 않아? 너무 속상하지 않아? 너무 아니지 않아?... 이런 방식으로 내 안의 질문이 끊임없이 나온다.
분명 나만 힘든 게 아니다. 이 생을 살아가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저마다 자기 만의 삶의 고뇌와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걷고 또 걷는 것이다.
마음이 참 약한 나 자신에 대한 자기 비난은 지난 어두컴컴했던 시절을 더욱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마음이 약한 것도 어쩌겠는가? 그런 나를 받아들이고 자기 비난이나 자기 혐오 대신, 나에 대한 존중과 사랑, 친절의 마음으로 변환하면 되었던 것이다.
집착하지 말자. 집착, 내 안의 불안과 두려움은 모두 집착에서 나온다.
그러니 just let it go. 우연을 받아들이고 내 삶을 예측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