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움은 없앨 수 있는가?

by Aarushi

부엌에서 사부작사부작하면서 혼잣말을 했다. "너는 어쩜 이런다니? 요녀석 어쩜 이렇게 끊임없이 일어나니? 어쩜 쉬지도 않고 생각들이 마구잡이로 일어나니? 참 쉬지도 않는 네가 너무 신기하단다. 어느 날엔 딱 하나에 꽂혀서 말이지. 그거를 곱씹고 반추하고 정말이지 이토록 나를 흔들어대는구나. 내가 그것이 나라고 착각할까? 아니, 확실한 건 이제 더는 너희들이 나라고 착각하지 않아. 단지 자동적으로 내게 일어나는 일련의 일이라는 걸, 분명 일어났다 흘러가는 것이란 걸." 그것도 속으로가 아니로 말로 되뇌었으니, 오늘 아침 나의 머릿속이 얼마나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들로 휘몰아쳤는지 짐작할 수 있다.


고타마 싯다르타의 말씀처럼, 나는 두번째 화살을 맞지 말자고 그렇게 또 그렇게 알아차린다. 요즘 부쩍 게을러졌는데 나는 그것이 무엇일지 안다. 내게 게으름이란, 방향의 상실이다. 잘 가다가도 이렇게 나는 또 다시 무너지고 일어서고를 반복한다. 문제는 그 무너짐의 시간이 꽤나 길어졌다는 것인데ㅡ 이 또한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나 자신을 비난하기엔, 자책하기엔, 혐오하기엔, 그건 아니된다는 것도 안다. 내게 게으름이란, 모든 것의 정지. 중지같은데, 방향을 완전하게 잃어버린 상태, 그것은 회피와 두려움보단 말 그대로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는, 결정.의 중지다.


몇 달째 꼼짝않고 있는 것. 걷고 또 걸어도 나는 이제 정말이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르겠는. 제3자 처럼 저 멀리서 내 양 어깨를 들어올려 전혀 다른 공간으로 훅 데려다놓고 싶은 심정이다. 모든 것은 정말이지 내가 만들어낸 것이다. 내 의식이 만들어낸 세상을 나는 경험하고 있는 것일뿐. 진짜 나는 그 무엇으로도 인식되어질 수 없다는 것, 대상이 아니라는 것. 방황할 수록, 방향을 잃어갈수록 역설적이게도 내 안으로, 내 안으로 들어간다. 그래야지만이 일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은 생존 문제인 것이다. 벌써 5월이 되었다니 제주에 다녀온지 엊그제 같은데 지금도 이렇게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나.는 무엇인가? 무엇에 나는 이토록 괴로워하고 있는가?


분명한 사실은, 내 괴로움과 번뇌와, 불안과 두려움, 우울 모두 내 안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점이다. 내게 일어난 사건은, 외부적 환경은 실은 내 안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내게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내가 괴로운 것은 그 외부적 사건을 내 안에서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의미부여하고 편집해 그것이 나.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아집 때문이라는 것도 안다. 즐겁게만 살 수 없을까? 왜 자꾸 지금 여기.가 아닌 과거 아님 미래.를 바라보고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가?


Here and now. 정말이지 지금 여기. 이 순간밖에 없는데 인간은 왜 이토록, 나는 왜 이토록 금세 망각하며 살아가는가? 과거 현재 미래란 어떤 흐름도 그 무엇도 아니라는 것. 그런데 왜 이토록 스스로가 만들어낸 쇠창살에 가두고 삶을 즐기지 못하고 있는가?... 늘 그런 생각을 해왔다. 나는 분명 하나가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진짜 누구인가? 진짜.라고 할만한 것은 무엇인가? 의식이란 뇌의 기능이라는 것도. 광활한 대 자연 앞에서는 형언할 수 없는 경외감에 감동하고 감탄하고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워보이고 감사함에 눈물을 글썽이게 되는데 삶으로 돌아와선 별 거 아닌 것에도 스스로 두번째 화살을 후두둑 맞고 있는 것을 보면 헛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


내려놓는다는 건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괴로움을 없앨 수 있는가? 모든 것은 다 내 안에서 일어난다는 걸 감안하면 괴로움은 내가 괴롭지 않겠다는 결정을 통해 조금이나마 덜 괴로울 수 있다. 나의 괴로움과 번뇌와 고통은 결국 내가 그걸 받아들이기로 결정함으로써 그런 것이었구나.를 조금씩 알아차리게 되면서 완화되고 잦아든다.


나의 모든 면을 분별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다면 타인의 모든 면을 분별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다면 괴로움도 저만치 사라져 더는 나를 이토록 힘들게 하지 않을 것이다.


살면 얼마나 살까?싶다. 그것은 어떤 허무주의가 아니라,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것도 얼마나 큰 행운인가.싶은 것과 나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 나는 분명 죽는다. 나는 죽어가고 있다.는 그럼으로써 삶이 더욱 아름다워보이는 마법을 시시로 느끼기 위해서다. 그래야지만이 살아지는 것도 있다.


나이들어감에 따라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훅. 밀려올 때가 있는데, 그것에 침착하다보면 어김없다. 부정적 감정이 밀려오게 되어있다. "지금 이런 감정이 올라오고 있구나. 역시나." 이렇게 알아차리고 그 알아차림을 알아차림으로써 이런 방식으로 순간순간을 지금 이 순간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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