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유자적한 일요일 오전 침대방 창문을 열어 젖히고 앉아 있으니 왼쪽 가에서 새들의 지저귐이 들려온다. 마치 숲속을 거닐고 있는 기분,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일만큼 새들의 지저귐이 나의 주의를 이곳에 지금 여기.에 집중하게 한다. 나의 주의를 외부로만 돌리게 되는 것에서 절로 내 안으로 돌려 나의 내면을 향하게 하는 것. 알아차림이겠다.
일찍이 아침 산책을 1시간여 하고 돌아왔다. 아침마다 커피를 내리는데 그것 자체가 내겐 명상이 된다. 아주 천천히 뜨거운 커피 포트를 동그라미를 그리며 천천히 내리는 것. 나는 지금 여기에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렇게 내린 커피 한 잔을 들고 한참을 걷고 나서야 돌아왔다. 열어젖힌 창문을 완전하게 모두 다 열어젖혔다. 집에 있는 창문이라곤 모두 열어 젖히고선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시고 길게 내쉰다. 들숨과 날숨의 그 사이 간격 속에 텅빔이 있음을 알아차린다.
세탁기를 돌린다. 섬유유연제 향에 잠시나마 흠뻑 취한다. 바람과 섬유유연제의 자연스러운 섞임이 내가 살아있음을, 이 세상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순간순간을 산다면 무엇이 두려울까. 실은 나 자신에게 이토록 하고 싶은 말이다.
사계절 옷을 다 합해도 한 눈에 들어올 만큼 가짓수가 많지 않다. 언제부터인가 절로 그리 되었다는 설명이 맞는데, 맨날 똑같은 옷만 입었던 때가 더 많으니, "왜 맨날 똑같은 옷만 입어요?"라는 질문도 들었다. 대신 내 취향의 원단과 스타일로 아주 비슷한 스타일의 옷들만 남았다. 맨날 똑같은 옷만 입는 것이 뭐 어떤가.싶은 것과 내가 편하면 되었다. 내가 선호하기 때문이다. 무얼 입지?하는 고민도 없을 뿐더러 새 옷을 사기 보단 내 몸을 관리하는 것이 내겐 유익하다, 이롭다는 생각이 있어서기도 하다.
몸이 관리되면 정신이 관리되고 결국 몸과 정신은 하나다. 체형이 관리되면 어떤 옷을 입어도 나름 괜찮은 마법이 있다. 내 살림살이를 보면 물론 1인 가구여서도 있겠지만 순전히 내 취향의 물건들만 남았고 여기서조차 혹시 내가 지금 안쓰고 있는 물건이 있나? 필요하지 않은데 갖고 있는 것이 없는지를 살핀다. 예쁜 쓰레기는 이제 내겐 없는 일이 됐다.
아침 저녁 스킨 토너 하나만 바르는데 그것이 내겐 가볍고 피부에 잘 맞는 거 같아서다. 언제부터인가 기미가 눈가에 늘었는데 컨실러 하나로 토닥토닥 하는 정도다. 파운데이션을 바르지 않게 됐다. 스킨 토너를 바르고 컨실러로 군데군데 찍어 펴 바르는 정도에 눈썹을 그리고 브라운 마스카라면 메이크업 완성이다. 살림살이가 간소화되면서 내 몸과 마음도 정신도 삶도 마찬가지로 간소해지고 단순해지고 간결해졌다. 살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사람사는데 생각보다 그리 큰 공간이, 그리 많은 물건이 필요하지 않구나.하는 것이다.
나의 삶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자. 우연을 받아들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자.고 생각하면 삶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부분이 있다. 여름 옷을 꺼내면서 실은 정리할 것도 없는 것이 상의 하의해서 열가지 될까. 고이 접어 차고차곡 개어 놓으면 된다. 물건을 잘 사지도 않지만 물건을 버리는데도 크게 아쉬움이 없는 편이다. 내게 필요하지 않는 물건이라면 더는 소유하지 않는다. 내 속마음은 실은, 언제라도 떠나더라도 어디론가 떠나더라도 28인치 캐리어 2개면 충분하도록 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사하는데 온갖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다.
사는데 정답이 어디 있을까?
언제부터 우리는 이렇게 돈돈돈하며 살게 되었을까? 언제부터 우리는 돈이 전부인 세상에 살게 됐을까? 사물에 갇혀 진짜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물질이 나라고 착각하며 사는데서 괴로움이 온다. 나 또한 내가 가진 것이 나라고 착각하며 살던 시절이 있었다. 나의 모든 괴로움은 실은 그 집착과 착각, 아집에서, 나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여전히 방황하고 길을 잃는다. 방향을 잃는다. 그러다 다시금 방향을 잡아 나갈 것이란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지만 방향을 잃을 때마다 그 처음은 꼭 이렇게 흔들리고 아파하고 스러지고 만다. 그 스러짐의 시간을 겪고 나서야 다시 올라온다. 이 또한 나 자신이 나약하다고 비난하거나 혐오하지 않고 내가 지금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구나. 지금 이런 감정이 내게 올라오고 있구나.를 그대로 알아차리면서 나 자신을 더는 이전처럼 괴롭히지 않는다. 실은 그게 다 인 것이다.
어떤 불편한 감정이 올라온다 싶으면 그것이 두려움이든 불안이든 우울이든 이젠 주의를 딴 곳으로 돌리기보단 오히려 마주함을 택한다. 하던 걸 모두 멈추고 앉아선 가만히 있는다. 그 불편함을 마주하곤 있는 그대로 바라봐준다. 도대체 이 감정이 무엇때문일지. 나는 왜 불안해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네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너의 이 괴로움은 어디에서 오는지. 그렇게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하려고 한다.
내가 두려워하고 있음을, 불안해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내겐 명상 그 자체다.
키보드를 두들기다 넌지시 창밖을 바라보니 밝은 연두색의 나무 한 그루가 날 반긴다. 저 청명한 하늘과 나무 한 그루가 서있는 공간, 내 방이라는 공간 실은 모두 다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차리면서 한가로운 일요일 오후를 어떻게 하면 즐겁게 보낼지를 생각한다.
살면서, 살아지면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이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보단 우연의 연속이겠다. 그렇담 받아들임이, 수용이 가장 효과적인 삶의 태도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