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공간과 하늘의 공간은 하나다

by Aarushi

자주 하는 것 중 하나는, 파스텔톤의 하늘이라는 도화지에 하얀 구름이 흩어지거나 솜사탕처럼 뭉쳐 있는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을 누워서 바라보는 일이다. 자연스레 그리 된다. 햇살은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공간과 공간 사이, 공간감을 그대로 온전하게 느껴본다. 내 눈 앞에 펼쳐진 공간을 지그시 바라보다 이내 눈을 감는다.


어느 날은 이토록 평온하고 평안하고 온전하다 어느 날은 이토록 내 안이 시끄럽고 혼란하다. 그 사이를 알아차린다. 이러나 저러나 결국 다 내 안에 있었음을. 상황 앞에 괴로워하기 보단 그럴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 내려놓으면 이토록 편안해지는 것을. 그렇게 알아차리다 다시 일어선다.


산책가 가운데 있는 작은 연못에 따스한 햇살이 비추면서 에머랄드 금빛 물결에 나는 한없이 빠져들었다. awe의 순간이다. 경이로움. 내가 사는 세상,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내 생의 의지와 살아있다는 것의 소중함, 아름다움을 일깨운다.


요즘은 이런다. "살아진다. 어떻게서든 살아진다. 다 길이 있을거야. 와우 이번엔 정말 뭐가 안풀리는 것 같네. 분명 다른 문이 열린다. 아직 열리지 않은 문이 있어. 지금 내 상황은 내게 어떤 삶의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함일까? 나는 이 끝에서 무엇을 배우게 될까? 내게 지금이야말로 진짜 네가 원하는 것을 해볼 때란다.라고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이 시련 쯤이야. 일이 잘 풀릴 때가 있는가하면 어떻게 해도 잘 안풀리는 때가 있구나. 정말 이런거구나. 흐름이란 게 이런거겠지. 그렇다면 네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것. 지금 하루 아니 순간 순간에 집중하고 어떻게 하면 지금 내 기분이, 오늘 하루가 즐거울지. 행복할지를 생각하자. 그게 다야. 분명 지나갈 거야. 늘 그랬던 것처럼." 이런 방식으로 나와의 내면소통을 한다.


언제 이렇게 마흔이 되었나.싶은 것이. 지난 시절이 한낮 꿈같지만, 정말이지 일장춘몽같지만 그것이 인생이로구나. 지금 알고 있는 걸 인간이 어린 시절, 중고등 시절, 청년시절 알게 된다면 생각보다 삶이란 시시한 것일지도 몰라.싶다. 인생 반쯤 지나서야 알게 되는 것이 어쩌면 이토록 직관적인 앎, 지혜를 가져다 주는 것이겠다.싶은 것이 지금 이렇게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은 것들을 마주하면서 알아차리는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이 무척이나 감사하다.


이토록 오랜 시간이 돼서야 마흔이 다 되어서야 진짜 나와 가짜 나.를 알아차리게 되었다니. 돌이켜보면 가짜.나를 진짜 나.라고 착각하며 살았구나. 그래서 내가 그토록 괴로웠구나. 두려웠구나. 불안했구나. 집착과 아집이 가득했구나. 한 번 무너진 마음이 일어서기까지 그토록 방황하고 아파했구나.를 알게 된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절로 미소짓는 나를 알아차린다. 그것은 자조가 아니라 가벼움이랄까. 집착과 내려놓음의 경계가 이토록 가벼웠나. 이토록 쉬운 일이었나.싶은 것이다. 그것은 삶과 존재에 대한 겸손함, 겸허함과도 같다.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면 이내 알게 된다. 내 눈 앞에 펼쳐진 무한한 하늘의 공간과 내 안의 공간이 하나임을,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두려움과 불안이 밀려오곤 하는 불과 몇 시간 전의 나.를 소환하기도 하면서 본래 내 것이란 게 있었나. 본래 내 것이란 것은 없다. 나는 분명 죽는다. 그러니 지금 나의 불안이나 두려움 걱정 우울이 다 무슨 소용일까.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을 살자고. 지금 이 순간을 즐겁게 살자고. 정말이지 지금 여기.에만 집중하자고 내면의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다.


세상사에 크게 일희일비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기쁜일에도 그렇게 슬픈일에도 나의 태도와 흥분상태는 이토록 잔잔하고 고요하다. 마치 망망대해의 잔잔한 바다처럼 꼭 그렇다. 내가 보는 세상이 진짜 다일까? 진짜라고 할만한 것이 있을까? 내가 그동안 나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이토록 부정적으로 했었구나. 해왔구나.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결국 내가 나.란 사람은 나 자신이 만들어낸 이야기였고 내 현실은 나 자신이 만들어낸 이미지였구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내 안에서 솟아나는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했다."는 문장을 나는 시시로 상기한다. 나는 정말이지 내 안에서 솟아나는 그것을 살아보려하는가? 시도한 적 있는가? 시도했는가?


어느 새 내가 나이들어가니 나의 부모님도 그마만큼 나이가 드셨다. 노쇠해진 나의 부모님의 얼굴, 손, 뒷모습을 볼때면 자식과 부모는 도대체 어떤 인연일까? 어떤 만남일까?싶은 것이,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끌썽거리게 됐다. 부모님에 대한 사랑을 좀 더 일찍 깨닫지 못한 것이 안타깝고 속상할만큼, 좀 더 일찍 철이 들었더라면 나 자신이 그러지 못했음에 대한 안타까움과 회한이 있다. 나는 정말이지 친절한 딸이었을까? 상냥한 딸이었을까?


나의 글쓰기는 실은 철저하리만치 나와의 내면소통인데, 언제부터인가 나의 글은 이런 방식이 되어버렸다. 그 어떤 것도 의도한 것은 아니었고 절로 그리 되니 이 또한 받아들인다. 신비스러우리만치 내 안의 뇌와 마음과 의식작용으로 절로 휘리릭 씌여지는 것이란, 이렇게 한바탕 몰입 뒤 내 안의 것을 쏟아내고 나면 훨훨 날아갈 것 같은 가벼움을 느낀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다.


어김없이 오늘도 산책하면서 알아차렸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절로 되뇌어졌다. 나 자신을 사랑하자. 무슨 일이 있어도 나 자신을 사랑해야지. 존중해야지. 친절해야지. 놓지 말아야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나는 얼마든지 달라진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에 괴로워하기 보단 그 흐름을 받아들이고 수용하고 인정하고 다른 문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자. 반드시 문이 열릴거라는 걸. 그러니 그 기간동안 몸을 다시 건강하게 관리하고 기분을 관리하고 순간순간을 살아내보자는 것. 그러다 이런 생각도 한다. 지금과는 완전하게 다른 습관과 스토리텔링으로 한 번 살아보고 싶어! 어떻게 될지 궁금해!!!.


본래 내 것일랑 없었다. 그러니 가볍게 살자. 즐겁게 살자. 저 푸른 하늘처럼 투명함 속에 텅빔이 있고 텅빔으로써 가득차 있음을 알아차리는 삶,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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