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들어감을 느낀다. 꼭 나이를 가늠해서만도 아니고 거울 속 나의 얼굴, 손등, 목의 주름을 보고 있자면, 확실히 달라진 몸의 상태... 그저 느껴진다. 피부과에서 피부시술이나 피부관리를 받아본 적이 없는데, 본래 까무잡잡한 피부로 어두운 피부색인지라 얼굴의 잡티나 기미가 조금은 커버되는 부분이 있었다. 어느 해부터 기미가 조금씩 올라오더니 지금은 기미나 잡티가 잘 보이게 됐다. 외출할 땐 컨실러로 양 눈가 아랫부분만 컨실러로 커버한다.
이렇게 찰나구나. 인생이란 게 정말 눈깜짝할새라는 말. 정말이지 맞다.싶다. 그래서 순간순간을 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지나보니 순간순간을 살지 못했던 때가 더 많았음을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싶은 게 있고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싶은 것도 있고 아쉬움과 안타까움도 있다.
언니네에 갔다 어릴적 앨범을 봤다. 연년생이라 어린 시절 함께 찍은 사진이 많은데ㅡ 앞으로 펼쳐질 자신의 인생이 어떨지 전혀 예상할 수도 또 예상하지 못한채 환하게 웃고 있는 어린 시절의 나.를 보고 있자니 절로 미소가 나왔다. 식탁에 마주 앉아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겨 보고 있던 언니에게ㅡ (내가 본 사진은 우리가 어릴적 살던 동네 골목길을 나란히 걷고 있는 우리 둘의 모습이었는데 유치원 가는 길이었다) "이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다시 살아보고 싶어..."(무언가 짠한, 아쉬움 가득한 그러면서도 굉장히 차분한 음성이었다) 가능한 일이겠는가? 알면서 이렇게 볼멘소리를 해보는 것이다.
지나온 내 모든 순간에 만족했다면야 싶지만, 실은 나는 늘 무엇인가를 갈구했던 것 같다. 무엇이 되려 했고 무엇이 될 줄 알았고 무엇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욕심도 있었겠고 집착도 있었겠고 실은 그것들이 나의 서른을, 그리고 지난 시간동안 나 자신을 그토록 괴롭혔다는 것도. 지금은 너무 잘 알겠는, 무엇이 되지 않아도 되고 무엇이 된다는 것이 나의 삶의 의미가 될 수 없다는 것과 나는 지금 이대로, 있는 그대로 온전하다는 걸 말이다. 지금은 정말이지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싶은 마음이 없다. 오직 내 안에서 만족할 줄 안다. 남과의 끊임없는 비교란 결국 나 자신을 괴로움과 고통과 번뇌로 몰고 가는 가장 효과적인 길이다. 그러니 나는 나의 속도대로 나만의 길을 뚜벅뚜벅 씩씩하게 가면 될 일이다.
내가 가진 것과 진짜 나.를 알아차리게 되면서 그동안 당연시했던 고정관념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되었고 나의 사색과 사유는 절로 자연스레 자동적으로 알아차림과 나 자신과의 내면소통으로 점철되어갔다. 내 삶의 행복은 편안함과 평온함과 고요함에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괜찮아야 하고 괜찮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고요함 그 자체일 것이다.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된다. 불안함과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오히려 더욱 산만하게 혹은 급하게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습관에서 벗어나 무엇을 하지 않아도,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편안할 수 있는지 지금 내게 일어난 생각과 감정을 알아차리려고 한다. 일상이 수행.이라는 것도 실은 일상이, 순간순간이 실은 모두 알아차림 그 자체라는 것이다. 명상하는 이유, 편안하려고 하는 것이다. 편안해지려고 하는 것이다. 지금 여기.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함으로써 나를 힘들게 하던 괴로움과 번뇌 갖은 부정적 생각과 감정들을 알아차리고 하면서도 하고 나서도 평온한 지복, 편안하기 위해서다.
세수를 하고 토너를 바르면서 얼굴을 거울에 더욱 가까이 댔다. 기미가 확실히 더 생겼다. 거울을 보며 기미가 더 생겼다고 다소 아쉬워하는 나, 못 미더워하는 나, 그리고 그걸 알아차리는 나. 알아차리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나. 그 끝에 이런다. "자연스러운 거지 뭐. 맑고 깨끗하게 광나지 않으면 뭐 어때. 내가 불편하지 않으니 되었고 잘 보이지 않아도 괜찮아. 더욱 자연스러운 삶이길. 홀연히 그러나 씩씩하게 자기 길을 걷는 방랑자이길."
알아차리는 삶. 알아차림으로써 마음이 편안하고 기분좋은 상태. 그렇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실은 그게 다 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