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늘 난 결국 올라오는 감정에 흔들리고 말았다. 정확히 말하면 스러지고 넉다운 됐다. 도무지 일어나기 어려울만큼 침대에 딱 달라붙어 꼼짝도 하지 않고 잠만 잤다. 일어나보니 오후 1시였다. 바깥은 곧 비가 내릴듯 공기는 차가웠고 풍경은 스산했다. 마음이 허약해진 때엔 실은 비오는 날씨가, 먹구름 잔뜩 낀 흐린 날씨가 내게 위로가 되는 부분이 있다. 희한하리만치 나는 어릴적부터 비오는 날, 비오기 직전, 올랑말랑한 그 흐린 날씨를 반겼다.
연휴내내 먹는 것도 무너지고야 말았는데 분명 내 안의 문제임을, 스트레스, 갖은 감정들 때문이었음을 안다. 잘 안먹는 간식이 당긴다든가, 배가 고픈건 아닌데 자꾸만 입이 심심하고 무언가를 먹어야만 기분이 나아질 것 같은 가짜배고픔에, 그렇게 며칠 새 살이 찌는ㅡ 그러니 점점 부정적 감정은 깊어지고 몸도 무거워 총체적 난국이 되는 수밖에.
겨우내 입었던 패딩을 언제쯤 넣어놓는가.싶다. 어제 저녁부터 감쪽같다. 식욕이 확 줄었다. 끝나가는 연휴와 함께 다시 회복하려는 건가. 소파에 가만히 앉아있으니 또 다시 감정이 밀려오는게 아닌가. 스멀스멀 부정적 생각이 몸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로인해 몸에서 올라오는 감정들을 알아차렸고 이 순간 또 다시 이 소중한 순간들을 그것에, 너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있었다.
안되겠다!.그렇게 푹신한 소파를 박차고 나왔다. 삶은 달걀 3개를 부엌에 서서 먹고선 텀블러에 작은 얼음 10개를 넣어 뚜껑을 닫았다. 패딩을 주섬주섬 입고 노트북과 노트를 챙겨 나왔다. 도서관이 영업중.이라고 되어있었는데 와보니 오늘은 열람실만 오픈이었다.
열람실에 들어선 순간, 사람들로 꽉차 자리가 없었다. 지나가는 자리에 딱 하나 남은 자리를 운좋게 차지하곤 앉았다. 오는 길에 마트에서 산 커피를 부었다. 한모금에 좀 살 것 같았다. 도서관 열람실 그 특유의 바이브를 좋아하는데 조용하고 적막한 것 같으면서도 불현듯 사람들이 제각기 내는 소음이 전혀 신경쓰이지 않는, 저마다 모두 자기 것에 집중하고 있는 그 열기, 온도, 온기랄까. 그런 것들이 조금은 나에게도 의지.를 북돋아주는 효과가 있다. 마치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는 듯한.꼭 그런 기분이 들기도 한다.
글이 쓰고 싶어졌다. 절로 키보드로 손이 간다.
그렇게 글쓰기를 할 포맷을 열고 나니 훅. 일어난 생각, "집 밖으로 뛰쳐 나온 건 정말이지 잘한 일이었어!"
이렇게 일단 밖으로 나오면 날 괴롭히던 온갖 생각과 그 생각이 만들어낸 감정들이 걷힌다. 언제 그랬냐는 듯 새소리, 바람결, 내 눈 앞에 펼쳐진 초록 세계, 흐릿한 하늘... 그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되고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고 살아있음이 이토록 행복하고 생의 의지가 돋아나게 되는 아이러니. 그래서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도.
요즘 서울에 있는 전시가 뭐가 있지.검색해보면서 문득 매일같이 파리 미술관과 박물관을 드나들었던 그 때가 생각났다. 파리에 살던 시절, 3년 동안 프랑스 전역 지정된 미술관과 박물관을 무료로 드나들 수 있는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미술관 박물관 어디든 줄서도 되지 않는 이점도 있었다. 3구에 살았는데 피카소 박물관과 조르주 퐁피두, 루부르 박물관 모두 걸어서 15-20분이면 닿았다. 시끄럽고 우당탕탕 불안하고 멍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주말마다 나는 어디론가 떠나곤 했는데 자주 찾던 곳이 베르사유 궁전이었다. 실은 베르사유 궁전은 목적지라기보다 그곳으로 가는 그 한적함, 여유로움, 고요함이 주는 풍경을 보러 가는 것이었다.
지난 10년 참 많이도 방황하고 갈피를 못잡았던 시절 여전하지만, 그래도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행복한 사람이었구나. 실은 불행하지 않았구나. 나 자신이 만들어낸 세계에서 나 자신이 불행함을 만들어냈구나.를 알게 되었다.
얼마 전, 언니와 이야기를 하다ㅡ 조금은 심각하고 진지한 대화들이었는데. 언니 왈, "나는 네가 절대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나는 네가 정말 복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나는 네가 운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라고 했다. 순간 무릎을 탁 칠만큼 내 안에 와닿았다. 그래, 내가 나 자신을 불행하다고 자꾸 이야기했구나. 내 자신이 만들어낸 감옥에서 이토록 괴로워했구나.
38. 이 현실세계의 나이. 지금 생각해보면 서른이 되던 해 나는 어쩌자고 마치 무언가 다시 시작하지 못할 사람처럼, 무언가 다 끝인 것처럼 불안하고 두려워했는지.싶다. 안타까울만치 나는 나약했고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고 단단하지 못했다. 그것은 나 자신조차 지킬 수 없을 만큼의 것이었다. 무기력감으로 한동안 힘겨워했던 나는, 내가 겪었던 우울감이란 실은 무기력감이었단 걸, 몸의 문제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여전히 무얼 해도, 다시 시작해도 충분한 나이이거늘, 나는 여전히 넘어졌다 일어서기를 반복한다. 내 부모님만 보아도 여전히 열심히 자기 생.을 살아가고 있는데, 부모님보다는 젊은 나.는 언제까지 잦은 무기력감으로 현재.를 놓치며 살아갈 것인가?
오늘 오후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긴건, 집밖으로 뛰쳐 나온 건 정말이지 잘한 일이었다. 나오니 인간과 자연모두에게서 진한 생명력과 비비드함을 느끼고 있지 않은가?
도서관은 초록숲 안에 있다. 우연히 까치 두마리를 마주했는데 나는 내 갈길을 가는 거였고 까치 두마리도 그 길에서 자기 세계를 경험하고 있었던 것 뿐이었을 것이다. 까치 두마리가 동시에 내 인기척을 느꼈는지 휘리릭 저 멀리 달아나는 것이 아닌가. 순간이었지만 "너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같을거란 건 큰 착각이구나. 내 눈앞에 펼쳐진 이 초록숲길과 까치 네 눈에 보이는 세계는 분명 다를텐데 말이야."
한바탕 글쓰기를 하고 나니 좀 살 것 같다. 절로 알아차림 그 자체였고 그것이 명상 그 자체였고 나는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 쓰면서도 정말 편안했고 하고나서도 정말 편안하다. 늘 그렇다. 내가 사는 세상이, 세계는 의식이 만들어 낸 세계인데 나는 도대체 왜 이토록 괴로워하는가? 불안해하는가? 놓지 못하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알아차림, 알아차림에 대한 알아차림 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