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가까운 죽음은 오래 전 외할머니의 죽음이었다. 전화를 받고 달려간 새벽 엄마와 나는 다행히도 외할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볼 수 있었다. 엄마가 엄마의 엄마를 보내는 그 순간이 여전히 생각나곤 한다. 그 후 엄마는 한동안 꽤 오랜 시간 엄마.라고 부를 존재가 이젠 없다.는 사실에 많이 힘들어하시고 우울해하셨던 기억이 있다.
외할머니께 정말 모든 면에서 잘했던 엄마도 그렇게 아파하고 못해드린 것만 생각나고 가슴이 미어질듯하다고 하시는데 필멸이라는 사실앞에 나는 문득 그 순간에 대하여 생각을 해보곤 한다. 나도 엄마도 언젠가는 필멸하는 존재인데 그 마지막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란, 실은 내가 그렇게 좋은, 착한, 속깊은 딸이 아니라는 걸 방증하는 거라고 시인할 수밖에 없다. 거기다 마흔이 다 되도록 나는 정말 잘 살아온 걸까? 잘 살아온 삶이었을까? 따뜻하고 친절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았나?싶은 것이 불현듯 그러다 거센 푹풍우처럼 나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할 기회를 갖게 한다.
어제 작은 할아버지 장지인 선산에 다녀왔다. 8남매의 장남이신 할아버지 형제분들과 친척들이 모였다. 중학생 이후로 정말 십수년 만에 간 곳인데 모든 것이 그대로였고 기억 그대로였다. 요즘은 제사도 뭐도 불과 십수년 전까지만해도 전통이 남아있어 온가족이 모여 만나는 일이 잦았는데 감회가 새로우면서도 전통이 사라지는 것이 마냥 시원한 일은 아니구나. 한켠 무언가 아쉽고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고조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로 해서 쭉 가지런히 정렬된 묘 그리고 큰 비석 앞에 있자니, 내가 결코 혼자서 이곳에 온 게 아니었구나. 내 조상이 이렇게 있었고 내가 이렇게 여기로 우연히 온 것이구나.싶은 것이, 우리는 반드시 필멸한다. 한 번 왔으면 반드시 간다. 그렇게 되어있다.라는 사실이 이토록 명징하게 와닿다니.
작은 할아버지 장례식 먼저 갔다 식구들이 할아버지댁으로 갔다. 8남매의 장남이신 할아버지는 89세. 늘 정정하시다고만 생각했던 할아버지께서 기력이 정말이지 다 쇠셨다. 몇 주 전까지만해도 거동도 하셨고 드시는 것도 괜찮았는데 지금은 드시는 것도 거동도 힘들어지셨다. 누워계신 할아버지를 저 먼치서 보고 나는 눈물을 펑펑 쏟고야 말았다. 할아버지가 혹여 들으실까 재빨리 몸을 움직여 떨어진 곳에서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내 이름을 계속 부르시는 할아버지한테 가 손을 잡았다. 찾아뵙지 못한 죄송함에 그리고 왠지 자꾸만 곧.일 것 같은 느낌에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눈 뒤 쉬시라고 방을 나왔는데, 나는 방 밖 한켠에 앉아 슬쩍 내 할아버지를 바라봤다. 할아버지의 눈이 향한 벽 한 곳을 응시하고 계신듯한 할아버지의 눈동자에서 나는 왠지 모를 삶이라는 것, 인생이라는 것, 사람이라는 것, 인간이라는 것, 이 몸뚱아리라는 것 그리고 삶이라는 찰나, 죽음, 필멸, 사랑, 삶에 대한 회한 이런 것들이 지금 할아버지에게 스쳐지나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모두가 잠든 새벽, 불이 다 꺼진 할아버지댁에서 나는 닫혀진 할아버지 방 밖에 앉아 두 손을 모으고 앉아 있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편안한 것 같았고 할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새벽 3시쯤 사촌동생이 장례식장으로 오는 길에 나를 픽업해 간다고 해서 전화를 받고 나갔다. 할아버지가 주무실거라 생각해서 인사도 제대로 못드리고 우선 나왔는데 전화가 오셨다. 왜 간다고 얘기 안하고 얼굴도 못보고 그냥 갔는지. 불이 잠깐 켜져서 보니 새벽 3시였는데 그때 나갔냐고 하시면서.
선산에 앉아 언젠가는 다가올, 그리고 할아버지의 그곳.앞에서 멍하니 잠시동안 앉아있었다. 작은 엄마께서 설명해주신다. 비묘문을 쫙 보니 증조할아버지의 자손들의 이름이 쫙 있었고 내 이름도 찾았다. 삶이란 뭘까. 인생이란 뭘까. 우린 이곳에 왜 왔을까. 애초에 죽음이라는 결과를 알고 태어난, 사는 삶인데 우리는 어쩌자고 잊고 사는가? 어쩌자고 영원히 살 것 처럼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하고 혐오하고 비난하고 용서하지 못하는가? 사랑하지 못하는가? 죽음 앞에선 실은 그 무엇도 소용없는 것이다. 소용 없는 것이었다.
저녁쯤 집에 도착하고선 좀 쉬고 있었던 찰나 할아버지(하트)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3번이나 와있다. 곧장 전화를 드렸다. 늘 그렇듯 잘 살으라는 말씀이지만 이제는 할아버지의 모든 말씀 하나하나가 남다르게 들린다. 꾹꾹 새기고 싶을 만큼 간직하고 싶은 것들이다.
나는 분명 죽는다. 나는 죽어가고 있다. 나는 반드시 죽는다. 한 번 왔으니 한 번 반드시 간다. 그러니 어쩌면 내가 지금껏 살아온 시간보다 더 짧은 시간이 내게 남았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진짜 즐기면서 살면 안될까? 정말 찰나.라는 것. 어릴 적 내게 그토록 정정하고 힘차게만 보였던 할아버지도 할아버지 형제분들이 한 분씩 돌아가시고 완연히 노쇠해진 모습을 보면서 이번에 나는 무언가 망치로 세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 내지 나 그리고 내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할아버지댁에서 나오기전 장식장에서 앨범을 꺼내왔다. 우리와 사촌동생들 어릴적 사진과 아빠와 엄마, 작은 아빠와 작은 엄마의 옛 결혼식 사진들까지 할아버지 할머니의 젊었을 적 사진들을 추억하며 또 할머니의 기억을 더듬어 가며 그렇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할머니~ 할머니는 죽음이 두렵지 않아요?"
"안두려워~ 한 번 왔으면 한 번 가는 것이여. 죽음이 뭐가 두려워? 누가나 다 살다 가는 것인데. 나는 하나도 안 두려워." 할머니의 아기같은 눈망울을 보니 할머니의 말씀은 진심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계속해서 내 안에서 솟아나는 말이었다.
"할아버지 감사해요. 사랑해요 그리고 죄송해요."
"무조건 감사하고 무조건 친절해야 한다."
"무조건 사랑하라!"
"사람을 사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