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소녀같은 구석이 있다. 외모는 치타나 새끼 호랑이 닮았다고 하는데 어릴적부터 대학시절에도 직장인 시절에도 소녀같은 구석이 있다, 좋게 말하면 순수하다, 순수한 면이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곤 했다.
부모님은 분명 날 사랑.으로 정성껏 키우셨을텐데 나의 우울이 깊어질 때면, 내 안의 두려움과 불안이 깊어질 때면 나는 그걸 망각하곤 이 세상엔 나뿐이다.는 생각으로 더욱 그 어둠으로 침잠해 들어가 있었다. 이 아침 문득 소녀같다.는 말이 나온 건, 마흔 가까이 됐음에도 여전히 아기자기한 면이 있는 날 보고서다. 할머니께 보내드릴 모슈 미니 텀블러를 사이즈가 딱 맞는 작은 주황색 박스에 넣어 우체국이 열자마자 냉큼 부치고 돌아오면서다. 유성매직으로 상자에다 "할머니 사랑해요(하트) 소금례(하트)"현란하게 쓰고선 "이제 곧 마흔인데, 초등학생 나로 돌아간 거 같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만큼은, 그 앞에 만 서면, 그 옆에만 있으면 꼭 어린이로 돌아간 듯한 기시감이 든다.
노인정에서 춤을 배우신다는데 330ml 미니 텀블러가 유용할 것 같았다. 시골집에서 걸어서 노인정까지 달랑달랑 오며 가실 때, 버스타고 읍내 나갈 때 물이나 사이다를 넣고 다니시면 좋겠다.싶어서다. 할머니가 항상 메고 다니시는 검정 미니 크로스백에도 쏙 하니 들어갈 거 같고.
"서울 할머니" 어릴적엔 명절이나 제사 때 서울 할머니 할아버지댁에 가는 것이 그리도 좋았었는데, 늦은 밤 88올림픽 대로를 시원하게 달리는 자동차 뒷좌석에서 휘황찬란한 서울의 밤, 도시의 네온사인과 반짝이는 가로등 사이 풍경을 바라보며, 서울로 대학을 와야지, 서울에서 살아야겠다.하는 어린 시절, 꼬마가 있었다. 내가 직장인이 되었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는 할아버지 형제분들이 먼저 내려가 계시고 터를 잡아놓은 시골로 내려가셨다. 그러곤 지금까지 살고 계신거다.
대학시절, 서울 할머니 할아버지 덕분에 나는 대학시절 큰 어려움없이 그곳에서 함께 살며 대학을 다녔다. 당연한 것인 줄 알았던 것이 실은 당연하지 않았던거구나.새삼 깨닫고 있는 요즘,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셨기 때문에 함께 살았기 때문에 내가 대학시절을 큰 어려움없이, 외롭지 않게 잘 보낼 수 있었구나.를 정말이지 진심으로 그 감사함과 사랑을 느끼고 있다. 학기마다 시간표를 짤 때 아침 9시 수업을 쫙 짜놨던 터라 아침 일찍 할머니는 꼭 내가 좋아하는 삼겹살과 미나리 초고추장 비빔밥과 돼지고기 듬뿍 넣은 김치찌개로 아침밥을 차려주셨다. 밥도 꼭 내가 좋아하는 서리태를 넣은 갓 한 새밥이었다.
분명 할머니 할아버지도 손녀이기에, 사랑이었겠지만 그 시절 나를 책임감으로 돌보셨던 것 같다. 그런 조부모님이 계셨어서 나는 정말이지 외롭지 않게, 우울하지 않게 그렇게 그 시간을 견디고 지냈구나.를 알게 되었다.
학교 갔다와서 늦은 오후나 저녁즈음 스터디가 있어서 나갈 때도 할머니는 꼭 저녁밥을 차려주셨다. 설거지도 하려고하면, "놔둬~ 할머니가 할게. 나중에 시집가서 하고 살텐데 놔둬 잘 갔다와~" 늘 그러셨다. 나도 나이가 드어가니 정말이지 이제서야 내 부모, 내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알아차리고 지난 나의 철없음에 후회하고 가슴아파하고 있다. 나는 정말이지 좋은 손녀였을까? 해드리지 못한 것에만 꽂혀 죄송한 마음만 들때면 어떨 땐 주체 없을 만큼의 슬픔과 미어짐이 올라온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동갑이시다. 89세. 나의 할아버지는 많이 편찮으시다. 병원에 입원해계시고 나의 할머니는 그래도 아직은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신다. 주말 새 금요일밤엔 아빠가 퇴근 후 할머니를 작은집으로 모셔다 드리면서 할아버지를 뵙고 왔고 그렇게 할머니는 작은아빠댁에 머무시면서 할아버지를 뵈었다. 두 분이 손을 꼭 잡으셨다는데 우리 가족은 그 모습에 활짝 웃었다. 나는 토요일 밤 자정이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고 할머니께 문자만 남겨놓았다.
밖에 있는데 할머니께 전화가 왔다. 작은아빠가 데려다줘서 시골집에 방금 잘 도착했다고. 할머니가 어젯밤 자다 깨서 눈떠보니 12시가 넘었는데 핸드폰을 들여다보니 문자가 와 있었다고. 내새끼 집에 잘 도착했냐고 전화하신거였다. 항상 하시는 말씀, "내새끼 건강하게 잘 사소." 내게 할머니는 늘 씩씩하다. 도란도란 얘기 나누다, "할머니, 씩씩한 걸 내가 우리 할머니를 닮았어야 했는데... 나는 마음이 좀 약해요." 할머니는 곧바로 아주 진지한 어조로, "씩씩해야혀. 인생이 본래 그런 것이여. 씩씩하지 않으면 살기 힘들어. 그래도 힘을 내서 마음 단단하게 씩씩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야. 할머니는 씩씩하지! 하 그냥 사는 것이여!"
며칠 전에 카스테라를 20개를 사서 냉동고에 넣어두고 드실 때 하나씩 꺼내 드시라고 보냈더니, 이미 보냈으니 맛있게 잘 드신다고 하시면서, 앞으로는 사서 절대 보내지 말라고 하신다. 할머니한테 보낸다고 돈쓰지 말라고 돈을 차곡차곡 모아서 내새끼 잘 살으라고.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말씀하신지 왜 모를까.
오늘 아침 보낸 텀블러를 받고 좋아하셨으면 좋겠다. 달랑달랑 가방에 쏙 넣어 다니셨으면. 사랑은 정말이지 그런 것이었다. 내 부모와 내 조부모가 꼭 그랬던 것처럼. 정말이지 옳고 그름이라든지 이것저것 따지는 거 없이 그저 내어주는 것이다. 그저 주기만 하는 것이었다.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그저 무조건적으로 주기만 하는 것이었다.
그 사랑을 깨닫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버렸다. 타는 후회와 죄송함, 어리석음에 스스로 자책하고 괴로워하지만 그 또한 내 자신이 오롯이 감내하고 반성하고 나아가야 하는 몫이란 것도 잘 알고 있다.
남은 생, 나도 진짜 사랑이라는 것. 그저 내어주기만 하는 사랑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것이 내가 행복해지는 것이란 걸, 나 자신을 위한 것이란 걸 이렇게 마흔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나의 사랑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내가 내 조부모님에게 할 수 있는 일이란,
"씩씩하게 내 삶을 잘 살아나가는 것. 행복한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다."
오늘 아침 할머니에게는 텀블러를 보내면서,
병상에 계신 할아버지에게는 안부전화를 하고선,
"할아버지 사랑해요. 곧 만나요."
"할머니 사랑해요."
사랑을 전하는 일이 실은 다구나. 날 살게하는구나.를 깨닫게 된다.
내가 사랑하는 할아버지가 건강하기를
내가 사랑하는 할아버지가 평안하기를
내가 사랑하는 할아버지가 행복하기를
내가 사랑하는 할머니가 건강하기를
내가 사랑하는 할머니가 평안하기를
내가 사랑하는 할머니가 행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