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서야 비로소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기로 했다

by Aarushi

흐릿한 날씨가 꼭 흐릿한 내 마음같다. 흐릿하다기보다 뭐랄까. 슬픔이 훅 밀려왔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그러다 지난 나를 반성하게 되는, 삶이란 무엇인지. 인생이란 무엇인지. 이 몸이 나인가? 나는 진짜 누구인가? 삶이란 게 이런 거였나... 싶은 갖은 고뇌와 번뇌가 폭풍우처럼 왔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일하러 가기 전, 글 한 편이 쓰고 싶어졌다. 늘 그렇듯 나 자신과의 내면소통인데, 이토록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가보다. 운전하면서도 쉴 새 없이 이런저런 말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나를 알아차린다. 그 알아차림을 알아차리고 나아가자. 나아가자.그렇게 말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살다보니, 인생이란 게 삶이란 게 어디 내 의지로 된 적이 있었나? 돌이켜보면 내 의지 밖의, 내 의지 밖 영역의 일들이 실은 더 많았다. 더 많이 일어났다. 우연히 일어나 사라지기를 반복했던 것들, 경험들, 그 경험을 바라보고 있을, 알아차리는 나. 이제서야 아주 조금씩 알 것 같은, 실은 어쩌면 전혀 모른다.가 적확할지도 모르겠다. 이 또한 묻고 따지지 말고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일.


너무도 몰라보게 확연히 모든 것이 달라져버린 내 할아버지의 모습이 자꾸만 아른거린다. 며칠 전에 할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을, 할아버지의 단독사진을 여전히 꺼내보지 못하고 있다. 그 슬픔이 더 깊어질까봐, 나의 그 아련함을 마주하는게 힘들어서, 고통스러워서다. 진작에 자주 찾아뵙고 잘해드릴걸. 철없던 손녀는 이제서야 할아버지의 곧 다가올 마지막 앞에 이토록 사무치게 가슴 미어지게 후회하고 죄송해하고 있다.


우리집 손녀 셋, 작은집 손주 둘, 미국 고모 손녀 넷.중 내 할아버지에게 나는 실은 제일 정이 많이 든 손녀일 거라 생각한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도 자주 방문하셨던 기억이 있는데다 명절이면 할아버지가 과자 사먹으라고 우리에게 용돈을 주시면 밖에 나가 손녀 손자들이 슈퍼에서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고르던 그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게다가 대학시절 4년을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주전부리를 잘 하지 않던 할머니와 나에 비해, 할아버지는 빠다코코넛이라든지, 크라운 산도 같은 과자, 주전부리를 좋아하셨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동안 어느 한 구석 불편한 게 없었고 그 모든 걸 당연하게 생각했던 내가 그저 두분께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이다. 그 감사함을 표현하기에 이젠 너무 늦어버렸다는 사실과 그 시간이 정말이지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이 지금의 날 더 힘들게 한다.


생밤을 까고 계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여전히 생생한데, 배 두둑하셨던 내 할아버지가 여전히 생생한데 지금은 앙상하게 뼈만 남아 말라가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나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릴 뿐이다. 그 와중에도 매일 한 번씩은 꼭 내게 전화하시는 할아버지. 언니에게, "언니 오늘 할아버지가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고 하셨어..." 하니, "초아야, 그래도 할아버지가 너에게 다른 손녀 손자들보다 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으셔. 그건 사실이야."한다.


나 사는 게 힘들다고, 내 마음이 너무 우울하다고 힘이 든다고, 찾아뵙지 못했던 시절, 그 후회와 회환이 이토록 미어지는 일일 줄 정말이지 깊이 깨닫지 못했다. 그 어리석음에 통탄스러움에 후회가 밀려온다. 내 할아버지, 할머니가 천년만년 사실 거라 생각했는지. 나의 후회도 회환도 정말이지 이젠 다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도. 내 부모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언젠가 찾아올 할아버지의 부재가 내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될 것 같다. 이토록 사무치는 마음으로 벌써부터 정신이 번쩍이게 된다. 사랑이란, 삶이란 게, 인생이란 게, 가족에 대하여ㅡ 나는 아주 뼈저리게 깨닫고 느끼고 후회하고 반성하고 있다. 계실 때 잘하라는 말.이 무엇인지. 나는 내 할아버지에게서 이토록 가슴 아프도록 느끼게 되었다. 손 꼭 잡고 눈물을 글썽이는 손녀에게 할아버지는 "이제 그만 울어."라고 하신다.

이 슬픔에 침착해선 일상을 온전히 지내기 어렵다는 것도 안다. 지난 나를 반성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도. 사랑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이토록 듬뿍 받고 자랐구나.싶고 그 사랑에 제대로 보답하지 않은 채 할아버지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이 내겐 이토록 괴롭고 마음이 힘이 든다. 다 내 탓이거늘. 알면서도 그로 인해 내가 겪어야 할 감당해야 할 슬픔인 것을 알면서도.


아직은 그렇게 씩씩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한 것 같은데, 그것도 속이 상하다. 할아버지를 뵙고 난 뒤 나는 살아갈 용기가 생긴다. 살아갈 힘이 생긴다.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았고 나도 언젠가 할아버지처럼 나이가 들어 그렇게 스러져 갈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할아버지를 떠나보낸 뒤에도 할아버지가 사랑하는 손녀가 자기 삶을 씩씩하게 살아가기를, 잘 살아가기를 바라실 거란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를 곧 뵈러 갈텐데, 그땐 이젠 밝고 환하게 웃으면서, 웃는 모습만 보여드리고 싶다. 그리고 할아버지 손을 꼭 잡고 할아버지의 뺨에 내 볼을 기대, "할아버지, 할아버지 덕분에 대학시절도 편안하게 잘 보낼 수 있었어요. 정말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할아버지 정말 감사해요!!"


"나는 이제서야 비로소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기로 했다."

직관적으로 나온 내 안의 소리다.

이게 다 내 사랑하는 할아버지 덕분이란 것도.


나는 정말이지 꼭 그렇게 살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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