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앉은 카페 안, 직원분들의 표정과 말이 참 다정하고 따뜻하다. 카페든 어디든 먼저 반갑게 인사하려고 한다. 그 상냥함이 실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사랑인데다, 모르는 사람이라면 더욱이, 마치 "무해해요."라고 말해주는 듯해서 상대방이 평온하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상냥한 인사와 "안녕하세요", 라는 말한마디와 음료를 받으러 가면서도, "감사합니다."라는 말 한마디. 실은 다 날 위한 일이다. 날 기분좋게 하고 날 행복하게 하기 때문이다.
나이 들어갈수록 부쩍 눈물이 많아지는지, 사소한 것에도 아주 잘 감동하거나 아주 잔잔한 슬픔을 느낀다. 어느 날은 지하철을 탈 때면, 나와 지금 이 순간에 있는 모든 사람들,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내 눈 앞에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나와 같은 모습을 보며, "저이들도 얼마나 힘이 들까? 사느라고 얼마나 수고할까?"싶은 것이 가슴이 뭉클해지거나 내 안에 솟아나는 사랑, 친절, 연민, 존중...의 마음에 눈물이 절로 글썽이다 감동스럽고 벅찬 마음에 다시금 내가 사는 이 세상이, 내가 지금 이렇게 살아 숨쉬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낀다.
마음이 그토록 어지럽고 시끄럽고 방황하고 어둠의 끝으로 들어가 그대로 고꾸라져 침잠한 채 지냈던, 살았던 지난 10년을 돌이켜보면 새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지나온, 나 자신에게도 고마움과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내가 자주 언급하는 그 지난 10년, 다 사람사는 일이었겠지만 우리는 모두 다 각자 자기 만의, 자신만의 고뇌와 번뇌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지 않나. 그것이 또 그 삶 자체라는 것도.
혼잣말로 불쑥 튀어나오는 말이 있다. "그땐 뭐 그리도 여유가 없었을까? 여유가 없었던 걸까? 내 마음이 그토록 여유롭지 못했던 걸까? 나는 왜 그리도 불안해하고 조급해하고 나 자신을 괴롭혔는가? 이토록 찰나인 것을. 결국 나는 죽어가는 존재인 것을."
불혹.이라는 나이가 이런 것인가. 이렇게 지난 삶을 바라보게 되는 것인가. 이렇게 나의 지나온 삶을 관조하게 되는 것인가? 실은 지금의 나의 회광반조.의 삶이 나는 반갑고 감사하다. 이젠 많은 것이 내려놓아지고 본래부터 내 것이란 있었나.싶고 아무 것도 얻을 없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공이요, 자성이 없다.는 걸 알아차리는 것이 날 이토록 자유롭게 한다.
여전히 에고가 불쑥 침범해 날 괴롭게 하지만, 이 또한 받아들인다. 지금에서야, 이제서야 알게 되는 많은 것들이 어린 내가, 스무살, 서른 살 내가 알았더라면 어땠을까.싶지만 나의 모습 또한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안다. 스무살, 서른 살의 생기.는 이전만 못하지만 눈동자의 맑음과 눈의 순수, 나만의 분위기는 잃지 않으려고 한다. 억지로 되는 것도 아님을 알고, 절로 드러나는 것임을. 그러려면 수신해야하고 내 안을 아름답게 평온하게 가꾸어 나가야 한다. 절로 드러남.이라는 것에 대한 애정이 있다.
매력도 마찬가지겠다. "나 매력적이에요."라고 하는 직접적인 방식보다 절로 드러나는 것임을. 젋고 화려하고 이목구비 뚜렷하고 백옥같은 피부도 매력적이겠지만 그보단 수수해도 나이 들어가도 피부색이 본래 좀 까무잡잡해도 피부도 다소 매끄럽지 못해도 나만의 아우라와 내게서 뿜어져나오는 빛과 에너지, 공기, 기운, 눈에서 쏟아져나오는 우수와 순수.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실은 사람들의 시선을 곧잘 받곤 하는데 그것이 과연 나의 외모때문일 거라 생각지 않는다. 그보단 다소 이국적인 분위기에, 까무잡잡한 피부, 눈, 눈빛, 전체적인 분위기.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은 있다. 전형적인 한국 미인이라든지, 동양적인 미인도 아닌데다 하얗고 백옥같은 피부도 아니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든, 카페 안에서든, 서점이든, 발길이 들어선 곳에서 남녀노소 잠깐이라도 날 향한 시선에서 느껴지는 공기랄까. 그런 바이브가 나 자신에게도 확연히 느껴질 때면, 새삼 반갑고 좋은 마음이 든다. 어쩌면 나의 의식과 마음작용이, 내가 생각하는 세상에 대한 감사와 경외감, 이런 것들이 실은 내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마음에서다.
살아보니, 나는 이곳에 정말이지 우연히 태어났고, 우연히 이곳에 왔고 살게 되었구나.깨닫게 된다. 정말 소풍온 게 아닐까? 즐기기 위해 온 것이 아닐까? 좋고 싫음, 좋고 나쁨, 예쁨 못생김, 이 모든 분별이 날 괴롭게 하는 것이구나. 분별하지 않으면 자유로워진다는 것도. 모든 것은 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그 거센 폭풍우도 실은 내 안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어쩌다 보니 결혼을 하지 않았다. 서른 여덟, 서른 아홉이 되면 한국에서는 결혼을 못한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는 부분이 있는데ㅡ 이 또한 분별이겠다. 어쩌다 보니.라는 말이 적확할만큼 정말이지 어쩌다 보니. 혼자사는 1인 가구가 됐다. 이십대 중반만 하더라도 지금의 내 나이를 그렸을 때, 난 한 남자의 아내, 아이 엄마의 모습이었다. 지나간 연인들 역시 분명 인연이었겠고 아직 결혼하지 않은 것에도 이젠 그러려니. 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됐다. 모든 것은 인연이라는 말도 실은 모든 것은 우연이라는 것과 같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내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도 우연이었고 지금 내 삶도 그러하고 내가 지금 결혼하지 않은 1인 가구로 살고 있는 것 역시 우연이지 않을까.
지금의 나는, 남녀의 사랑을 정말이지 깨질까, 부러질까 두려운 그런류의 아주 로맨틱한 러브로 보지 않는다. 정말이지 무조건적인 사랑, 내어주는 것. 상대가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 나를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는 꼭 그 마음.그 자체로 본다. 너 없으면 안돼.라는 사랑이 아닌, 너와 함께라면 더욱 좋겠고.의 사랑이다.
살아보니, 사람사는데 실은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과 실은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됐다. Here and Now. 지금을 살면 무엇이 두려울까. 나의 지난 불안과 두려움은 처절한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오지도 않을 것에 대한 나의 자의적인, 작위적인 스토리텔링, 편집, 망상의 결과였다. 삶은 그 어떤 것도 예측할 수 없다는 걸 알면 비로소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매일이, 순간순간이 회광반조의 삶이다.
회광본조의 삶엔 늘 사랑과 존중, 친절, 감사, 용서, 수용이 있다.
나의 이 알아차림이, 이 알아차림에 대한 알아차림이 내겐 고요요, 평온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