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엔 엄마가 보내 준 김치와 아빠가 보내 준 김치가 있다. 여러통에 담아놓았는데, 거의 다 먹고 지금은 각 1통씩만 남았다. 냉장고에서 가지런히 놓인 왼쪽 오른쪽 통 하나씩을 보면서, "엄마 김치, 아빠 김치 이렇게 나란히 있네."했다. 나이 들어가는 것인지. 아주 조금씩 철들어가고 있는 것인지. 부쩍 엄마 아빠 생각이 나고 태어나서 갓난 아기였을때부터 얼마나 나를 지극정성으로, 사랑.으로 키워내셨을까.하는 마음이 든다. 나는 결코 착한 딸은, 좋은 딸은, 살가운 딸은 아니었다는 반성도 후회도 회한도 아쉬움도 게다가 이기적인 딸이었구나.를 실감하게 된다. 자식은 부모를 원망해도 부모는 자식을 원망하지 않는다.는 말이 무엇인지 이젠 정말이지 절실하게 깨닫고 알게되고 알아차리게 된 것 같다. 이른 아침 엄마 김치 한 통을 꺼내 한포기를 쓱싹 도마위에 썰어내 통에 담으면서,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이 세상에서 날 조건없이 사랑해줄 단 한 사람, 내 부모님을 떠올리게 된다.
나의 엄마는 성격도 굉장히 시원시원하고 인정도 많고 주변에 많이 베풀고 사람을 사랑하는 참 좋은 사람이다. 엄마이기 이전에, 한 여자, 한 사람으로서 엄마는 정말이지 멋지고 따뜻하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분이다. 엄마가 내게 보내주는 메시지를 볼 때면, 내 엄마는 정말이지 시인이었다. 같은 표현이라도 나와는 정말이지 다른 표현으로 내 마음을 감동시키고 웃게하고 울게 했다.
어릴 적부터 엄마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정말 원하는게 있다면, 배우고 싶은게 있다고 하면 이야기를 나눈뒤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셨다. 고등학교땐 지방에서 선릉역까지 한 달 동안 학원을 보내주셨다. 그러면 할머니는 수업이 끝난 토요일 저녁이면 당산역으로 꼭 마중나오셨다. 고등학교 땐 나와 관련한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금목걸이 금반지를 선물해주셨다. 기억에, 생일 때와 수능 봤을 때, 이런 식으로 여러차례 소중한 의미를 담아 선물해주셨다. 그 중에서도 하트가 크게 박힌 두꺼운 오닉스 반지가 있었다. 대학시절 작은 집에서 어린 사촌동생과 놀아주다 어디론가 휙 날아가버린, 결국 찾지 못한 그것만큼은 아쉬워했던 내가 가장 아끼던 반지였다.
씨티에 합격했을 땐, 합격 전화를 받은 날 밤, 엄마는 한걸음에 서울로 달려와 신입연수때 입으라고 회사 다닐때 입으라고 스커트며 블라우스며 족히 10벌은 사주시고 내려가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결코 혼자 알아서 스스로 잘 자란 것이 아니었다. 엄마의 이토록 깊은 사랑으로 무럭무럭 자라났던 것이다. 신입연수를 마치고 곧장 반포지점으로 발령이 났다. 엄마는 내가 첫 출근하던 날 반포지점으로 떡을 보내셨는데, 직원들 드시라고 내 이름앞으로 보낸 것이었다. 아침 9시 첫 출근의 긴장감으로 바짝 쫄아 은행 창구에 앉아 있던 때, 갑자기 내 이름으로 떡이 배달된 것이다.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엄마가 보낸 거란 걸 알곤 환히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내 딸 잘 부탁드린다는, 내 딸 기죽지 말라.는 사랑하는 내 엄마의 응원이었다. 사랑 그 자체였다.
어느 날은 내 생일날 떡 케이크를 지점으로 보내셨다. 직원들은, "초아 어머니가 보내주신거야? 잘 먹을게. 잘 먹었다고 전해드려. 초아 사랑받는 딸이구나."하시곤 했다. 신입 행원이던 때, 엄마는 궁서체로 내 이름을 각인한 펜을 선물해주셨다. 이제 더는 잉크가 남아 있지 않아 사용할 수 없게 되었지만 지금껏 내 보물상자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것 중 하나다.
즉흥적으로 인 my late 30s... 서른 후반, 곧 마흔이니 정말이지 지난 시절들이, 그것도 좋았던 기억들만이 남는다. 냉장고에서 김치통을 보다 내 부모님을 생각하다 내 부모님의 사랑.가득한 기억의 조각들이 쉼없이 쏟아져나온다. 엄마는 늘 내게 "내가 조금씩 손해본다고 생각하고 사는 것도 괜찮아. 반드시 내게 돌아와.", "자기 자신을 가장 먼저 사랑해야 돼.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하고 아껴줘야해. 먹는 것도 아끼지말고 네 입에 들어가는 건 아끼지 말기", "남에게 줄 음식은 항상 제일 좋은 거, 가장 깨끗하고 가장 예쁜 것만 골라 줘야해.", "초아 넌 잘 될거야. 씩씩하게 살아. 사랑해."...
몇년 전, 여의도에서 중요한 최종면접이 있었다. 그 인터뷰에서 CEO들은 내게 물었다. 나와는 분명 4-5살 정도 차이 밖에 되지 않았을 것 같은데 내 자소서를 보자마자 다들 만나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실제로 보니 예사롭지 않다고 했다. 대뜸, "초아씨 굉장히 톡톡 튀고 밝고 독특하신 거 같은데 어린 시절 어떻게 자랐는지가 궁금합니다."하는 것이다. 저 자신은 사실 평범하다고 생각하는데...라고 말을 떼자마자, "결코 평범하지 않으세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딜 가도 튀는 외모와 바이브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부분이 있다. 있는 그대로 떠오르는대로 여유있게 답했는데, 어릴적부터도 부모님으로부터 단 한번도 공부해라, 공부 열심히하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단 항상 무얼하든 성실하고 정직하고 건강하기만 하라고 하셨다. 많은 면에서 자유분방했고 어린 나를 존중해셨다. 초등학교땐 낚시를 좋아하시던 아빠를 따라 이곳저곳 밤낚시도 자주 따라 다녔다. 무얼하든 밝고 적극적이고 시원시원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편이었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왔을 때, 동기라든지 또래 친구들이나 어른들로부터도 실은 긍정적인 말들을 많이 들었을 땐, 엄마의 칭찬 덕분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스물 넷, 최종합격 전화를 인사부로부터 받았을 때도, 인사부 과장님 왈, "도대체 면접을 어떻게 보신 거에요? 부행장님들이 다들 오셔서 한마디씩 하셨어요. 인사부행장님이 잘 지켜보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을 표현한 것인데, 그 자체가 곧 나의 언어였을진대, 부행장님들이 보시기엔 꽤나 호기롭고 신입답지 않게 여유로워보이고 재밌고 웃기셨나보다. 다들 내 대답엔 빵빵 웃으셨으니 말이다. 되면 좋겠고 아니어도 좋다.는 그 마음이 이렇게 내게 합격이라는 행운을 가져주었다. 면접에서 돌아와 복기해보니 내가 받은 질문이 족히 18개나 됐었다. "굉장히 카리스마 있어 보이는데 외려 고객들을 압도하면 어떻게 하나요?라는 질문부터 호기롭게 특기를 요리.로 써놨던 터라 "어떤 요리를 잘하나?"라는 질문에, "감자탕"이라고 했다가 "감자탕의 감자가 무슨 뜻인지 아는가?"애서부터... 지금도 당시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헤어스타일이며 복장이며 다른 지원자들과 달랐던 나를 보고 동기들은 내가 다 떨어질거라 생각했단다. 나만 합격할 거라 생각했던 것인데, 실은 나는 정말이지 합격할 줄 알았다. 이렇게 지난 일에 할말이 많은 걸 보면 이마저도 난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글쓰며 그 시절을 떠올리니 절로 미소짓게 되는 마법.
그렇게 호기롭고 당당하고 자신감 넘쳤던 나는 어디로 갔는지.소스라치게 놀랄 때가 있다. 대학교1학년 땐 방학이면 아빠집에서 몇 주 지내곤 했는데, 내가 서울로 올라가려 집을 나서면 아파트 베란다 창 아래로 내려다보곤 내가 갈 때까지 손을 흔들고 서계셨다. 내가 가는 듯하고 고개들 휙 돌려보면, 아빠는 눈물을 훔치고 계셨다.
부모님을 생각하면 이런 사랑의 기억들이 봇물처럼 쉼없이 쏟아지는데, 이십대 후반, 서른 초반, 서른 중반을 넘는 시간동안 나는 꽤 오랜시간 나 자신을 자책하며 비난하고 후회하고 아파하며 무기력하고 우울한, 힘든 시간을 보내야했다. 그 시절동안 이런 사랑의 기억은 사라졌으니 그 기간동안 그걸 지켜보는 내 부모님의 마음은 어땠을지. 심정은 어땠을지.감히 헤아릴 수 없다. 이렇게 돌고돌아 아주 조금씩 다시금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지금에서야 다시금 부모의 사랑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그것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내가 가린 것이었다. 그것은 늘 그 자리에 있었고 변함없었다. 내 마음이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가린 것이지. 외면한 것이었다. 늘 그렇듯 내 마음이 평온하면, 내 마음이 편안하면, 내 마음이 고요하면 모든 것은 절로 드러나게 되어있다.
My late 30s... 나의 고독은 필연이었을까. 그 타는 고독으로 나는 분명 알게 되었다. 사랑.이란 것에. 나에 대해. 삶이란 것에. 인생이란 것에. 사랑하는 내 부모님에 대해. 가족에 대해. 연민에 대해. 감사에 대해. 친절에 대해. 존중에 대해. 진짜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
나의 고독은 앞으로도 변함없을, 그 어떤 것에도, 그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는 씩씩함과 의연함과 지혜와 삶에 대한 통찰을 주었다. 그 누구에게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 어떤 것에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나를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고 내가 사는 이 세상을 무한한 경외감으로 바라보고 감사해하며 나 자신의 길을 걷는다.
정말이지 느끼는 건, 사랑이 전부다.
사랑이 모든 걸 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