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과 필연

by Aarushi

어쩌다보니 밤을 꼬박 새게 생겼다. 한 가지 일에 몰입한 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가 넘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노트북을 켰다. 그렇담 내겐 글이지. 절로 명상이 되어주는 것이니 내겐 글쓰기란 언제 어디서건 이롭다. 문득 머릿속엔 이 밤 듣고 싶은 노래로 <오늘도 빛나는 너에게>가 떠올랐으니 음악을 재생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새벽, 어쩌다가라도 새벽에 정신이 말똥 깨어있는 날이면, 그러다 창밖을 내다보면 마치 이 세상에 나 혼자만 덩그러니 남은 듯한,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건 나 한 사람뿐인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고요와 평온이 이 대지 아래를 감싸고 있는 듯한, 마치 보호받고 있는 듯한 안정감과 신비로움, 경이로움에 취하곤 한다.


문득 이 새벽, 글쓰기가 하고 싶어진 것도 우연은 아니겠지.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거니? 내 안의 나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본다. 언제부터인가 나에 대해 설명하지 않게 됐다. 아마 정확히는 2018년 이후부터가 아닐까.싶은데 서른 초반, 나 자신과의 지리멸렬하고 지난한 과정을 거친 뒤 아주 조금씩 나 자신을 알아가게 되면서, 진짜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알아가면서, 더는 설명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정확히는 나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자각에 가깝다. 나는 누구고, 나는 어디를 나왔고, 나는 어디를 다니고, 나는 어디에 살고... 돌이켜보니 서른 초반까지만해도 나.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건, 사람들과 만나 서로에 대해 설명할 때, 실은 그것은 우리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나.라고 착각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나는 괴로워했다는 것도, 쉽게 무너지기를 반복했다는 것도.


남과의 비교도 실은 공.한 것이, 비교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서로가 가진 것을 가지고 누가 더 가졌고 누가 더 잘났고 누가 더 나아보이고 누가 더 행복해보이고.를 판단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실은 그 분별도 다 우리 인간이 만들어냈음을, 좋고 싫음도 좋고 나쁨도 없다는 걸 알아차리면 더는 남과의 비교를 하지 않게 된다. 나 자신만의 길을 그저 뚜벅뚜벅 걷게 된다. 이제 더는 남과의 비교로 나 자신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대신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이 되어 살아갈지, 어떻게 하면 나도 행복하고 타인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진짜 나 자신이 내 안에서 만족할 줄 알면, 감사할 줄 알면 그 어떤 것에도, 나의 그 어떤 결정에도, 나의 그 어떤 선택에도, 나의 그 어떤 행동에도 설명할, 변명할 게 없다. 그럴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 나의 선택에 그 누구에게도 설명하거나 변명하지 않는다는 건, 남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도 된다. 남이 뭐라하든,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이 내게 어떤 영향도 주지 않는 상태.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삶을 살게 된다. 가령, 새로운 도전을 한다거나, 이직을 한다거나, 직업을 바꾼다거나, 이사를 한다거나, 심지어는 점심 메뉴를 결정할 때도... 더는 그 선택에 이런저런 말을 달지 않는 것이다. 내 결정에 말이 많아진다는 건 이미 나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살아보니, 마흔 가까이 되어서야 정말이지 아주 조금씩 알게 되는 것이었을까. 이토록 크고 작은 깨달음으로, 알아차림으로, 알게되는 것들로 나의 일상은 매 순간이 수행인 듯하고 어느 날은 무릎을 탁 칠만큼 삶이라는 선물에, 삶이라는 펼쳐짐에 감동과 감탄, 경이로움과 황홀경으로 가슴이 벅차 오른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좋았던 시절, 화려했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고, 중요한 건 그 시절이든 아니든 나.는 오롯이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나.라는 점이다. 그 시절은 오롯이 내 기억 속에만 남았다. 그것도 아주 아름답고 생각만해도 환하게 미소 지을만큼 그렇게 행복했던 시절로 편집돼 하나의 스토리가 되었고 내가 되었다.


지금은 누굴 만나도, 나 자신에 대해 이리저리 설명하지 않는다. 나.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사는데, 누구를 만나는데 필수적인 것도 아니거니와 그보단 지금의 나.란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할 때 즐거워하고 행복해하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말하는 것이 좋은게 아닌가.하는 생각이다. 내가 가졌던 것 혹은 내가 가진 것은 내가 아니란 걸 명확하게 알아차린 뒤라서 이제 더는 내가 가졌던 것 혹은 가진 것, 가지지 못한 것에 설명할 것도 변명할 것도 없다.는 게 적확할지도 모르겠다.


남의 눈.이 남의 시선.이 뭐 그리 중요했던가.하는 것들이 있다. 조금이라도 조금 더 일찍 왜 그렇게 살지 못했을까.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과 회한도 있지만 나약하고 취약하고 뭣 몰랐던 나도 나였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알아차렸다면 그 순간부터라도 자기 자신으로 살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지금 이 순간, 찰나.만을 사는 것이기에. 이를 것도 늦을 것도 없다. 나의 서른은, 그랬던 내게 늦은 깨달음, 삶에 대한 지혜와 통찰을 선물하기 위한 계획이 아니었을까.할만큼 나는 꽤 오랜 시간 나.를 궁금해했고 질문했고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거듭하며 극복해 온 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어쩌면 나는 내 자신에게 너무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고 있지 않았는지. 그런 시간을 지나고나서야 진짜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시간들이 있었어서 방황과 우울의 시간은 내게 선물이었고 행운이었다.


나 자신이 그렇게 힘들다고 느꼈던 그 시간들은 실은 어둠을 통해 빛을 만나기 위한 완벽한 계획이었음을, 어둠이 있으면 빛이 있고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다는 진리를 내게 가르쳐주었다. 더는 나를 주저리 주저리 설명하지 않게 되었을 때, 내 결정에 변명하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나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었고 진실될 수 있었다. 누구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도 사라졌다. 못나고 잘남도 실은 인간의 분별이며 오직 만족할 줄 안다.는 것과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괜찮아.의 마음을 얻었다.


지금의 내 삶을 안정적이게 하는 건, 평온하게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건, <이무소득고> 아무 것도 얻을 게 없다.는 마음이다. 본래부터 내 것이 있었나. 내 것이라고 할만한 것은 무엇인가? 아무 것도 얻을 게 없다는 마음, 알아차림은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게 한다. 그러니 남에게 잘보이기 위한 것에 관심이 없다. 보이는 것 너머 직관적인 앎, 내면에 집중하는 삶, 고독을 즐기는 삶이 날 더 여유롭게 하고 빛나게 한다.


내면과의 다정하고 친절한 대화와 수시로 절로 펼쳐지는 사색과 사유가 나의 눈빛을 더욱 빛나게 해준다는 생각이 있다. 대학생 땐 앵커 준비를 했었고 한창 준비하던 대학 4학년 땐 방송사, 신문사 가리지 않고 실무면접, 합숙훈련, 최종면접을 치르느라 바빴다. 최종면접까지 간 곳들에선 진짜 앵커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마지막엔 동시 다발적으로 겹치는 언론사들의 시험 과정들을 치르곤 결국 연달아 낙방하자 나는 미련없이 그 길로 우연히 보게 된 외국계 은행 채용 공고에 지원했고 정말 운좋게 합격을 했던 것이다. 지금 껏 지나온 시절을 돌이켜보면, 인생은 우연의 연속이라는 것, 그 어떤 것도 예측할 수 없다는 앎이 인다. 우연이라는 것, 실은 우연이란 필연과 같다. 완전히 닫혔다고 생각해 좌절했던 그 순간, 기가막히게 다른 문이 열렸다는 것, 살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실패와 좌절 속 더는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 아직 열리지 않은 단 하나의 문이 있다는 걸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한다.


내가 잘 됐을 땐, 내게 좋은 일이 일어나면 그것은 운이 좋았던 것이다. 정말이지 그렇게 생각한다. 운이 정말 좋았던 것이라고. 그래서 더욱 겸손하고 감사해야 한다고. 무언가 일이 막히고 잘 풀리지 않을 땐, 운이 좋았던 시절을 생각하며 감사해하며 내게 꼭 좋은 일만 일어나라는 법이 없다.고 그 어떤 것도 잘못된 건 없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준다.


언론사 시험에 연달아 떨어진 후, 생각지 못했던 은행에 한 번에 합격했던 것도 실은 운이었다는 것도. 우연인듯하면서도 필연이었다는 것도. 그리고 모든 것은 연결되어있다는 것도. 스티브잡스가 이야기한 connecting the dots.의 의미도 이런게 아니었을까.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동안 치열하게 노력했다. 언론 스터디를 하면서 언니 오빠들과 주말마다 모여 토론하며 듣고 말하는 연습을 했고 상식공부는 물론 매일 아침 여러 신문을 정독하고 매일 하루 2-3편씩의 논술과 작문을 써내려갔다. 카테를 위한 헤어와 메이크업, 의상은 언제든 준비되어 있었고 이런 것들이 내가 다른 하나의 문을 열었을 때, 곧바로 운.과 함께 마치 보상처럼 합격.이라는 선물을 준게 아니었을까.란 생각을 했다.


나는 흔히 SNS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한국형 미인이 아니다. 어릴적부터 서구적이다, 이국적이다.라는 말을 들어왔는데 그래서인지 흔하지 않은 얼굴.이란 이야기를 들어온 것도 있다. 특히 눈이 매력적이다, 눈빛이 빛난다는 이야를 들어왔다. 길가다가도 사람들의 시선을 곧잘 받는데 언젠가는 카페에서 사장님으로부터 연예인인 줄 알았다고 사인 요청을 받은 적도 있다. 심지어 그때 방송을 갓 하고 온 아나운서 언니와 함께였다. 아무리 봐도 객관적으로 봐도 아나운서 언니가 예쁜데 외려 내가 이런 일을 겪는 일이 있곤 했다. 동기들 결혼식에서 부캐를 몇 번 받았는데 한 번은 동기가 인천공항가는 길에 전화를 걸어왔다. 사람들이 부캐받은 친구 뭐하는 사람인지. 혹시 연예인 아닌지...하고 물어봤다고 했다. 언니가 그 얘기를 한다고 전화를 하고선 우리 둘이 깔깔깔.웃었던 기억이 있다. 이런 작은 에피소들이 많은 편인데 나의 실상은 연예인도 아니고 지금은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일 뿐이다.


나이 들어갈수록 내면의 성숙과 더불어 내 눈빛도 전보다 더 깊어가고 있는 것인지. 부쩍 더 느끼곤 한다. 지난번 광화문에서 약속이 있어 갔는데 길을 걸어도, 카페를 들어가도, 서점을 들어가도, 내게 시선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보통은 어쩌다 나와 눈을 마주치기라기라도 하면 곧장 피하는데 이번엔 그러지 않고 마치 더 마주쳤다가는 말을 걸 것 같은 기분이 이어졌다. 핵심은, 내가 예뻐서였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고 혹시 내 눈빛일까. 내게서 어떤 분위기가 느껴졌던 것일까?를 생각했다. 진짜 나의 내면이 외연으로 확장돼 괜찮은 분위기를 내뿜고 있는게 아닐까?하는 안도감과 기대감이었다.


서른 후반, 마흔 앞에 다가온 지금, 돌이켜보니 이십대때 지금쯤이면 이렇게 이렇게 되어있지 않을까.했던 것들 중 어느 것 하나 들어맞은 것이 없다. 이것이 정상이었던 것. 인생이란 결코 예측할 수 없다는 것, 우연의 연속이라는 것, 우연을 받아들여야 행복해진다는 걸, 편안해진다는 것도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그 우연이 필연이고 필연이 우연이었다.


서른 초반에 찾아온 지리한 방황은 당시엔 혹독했지만 그 혹독함은 나에게 고독.을 알게 했고 혼자서도 외롭지 않을 수 있게 했다. 그 모든 것은, 지금 껏 펼쳐진 내게 일어난 모든 일들과 경험들은 정말이지 내게 빛이었고 경이로운 선물이었음을, 그런 나는 행운이 가득한 사람이란 걸, 행복한 사람이란 걸. 그렇게 나는 Rupert Spira의 말처럼, "You are the happiness you seek." 이란 말을 경험적으로 그리고 직관적으로 깨달으며 여전히 삶을 배우고 있다. 내 안에 세상이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 서로 친절하고 사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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