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다 벤치에 앉아 있는데 앉은지 얼마 되지 않아 벌 한마리가 내 가까이에 맴돈다. 피할 것 없이 그냥 있었더니 어느 순간 어디론가 가버렸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곤 가는 길에 카페에 들러 의자에 앉아 있는데 느닷없이 아주 작은 무당벌레 한 마리가 내 테이블 앞에 멈춰 있다. "오늘따라 연달아 벌과 무당벌레가 찾아오네." 나는 우리 할아버지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할아버지!"나지막히 말했다. 무당벌레가 이토록 미동이 없었던가. 한 번은 어느 봄날 천변을 따라 책을 읽으며 걸어가고 있는데 오늘 것과 똑같은 생김새의 무당벌레 한 마리가 책 한가운데 앉았다. "오늘 너를 만나려고 했구나. 널 만나게 된 건 우연은 아니겠지. 내게 찾아와줘서 고마워."그러곤 무당벌레를 내 손바닥으로 조심스레 옮기곤 수풀 한 가운데 살포시 내려주었다.
무당벌레 한 마리를 보면서도 든 생각은 너와 나의 경계.였다. 너가 나를 찾아와줬구나.하는 것은 사실 나의 관점일 뿐, 인간의 관점일 뿐, 실은 무당벌레 그들도 그들만의 경계, 세계가 있다. 무당벌레는 유유히 자기 삶을, 자기 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고 우연히 나와 마주한 것이고 내가 무당벌레를 생각하는 것처럼 실은 그는 아무 생각이 없었을 것이라는 것도.칠레의 생물학자이자 신경과학자인 프란시스코 바렐라의 <Embodied Body>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살아있음이란, 자기생성이라는 나와 환경과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의 과정 그리고 결과라는 걸 알게 된다. 내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가능한 것이란 걸. 관점과 시선에 대한 열린 마음이 이토록 중요하다는 걸 이런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알게 되고 깨닫게 된다.
삶의 의미가 꼭 있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는데 이십대, 서른 초반만 하더라도 잘 가는 것 같으면서도 고꾸라지고 무너지고 넘어지고 방황하고를 반복했던 것도 실은 삶의 의미가 있을 거라는, 삶을 짊어져야 할 무언가.로 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몰아 세운 것이 아니었을까.하는 부분이 있다. 돌아보니 삶이란 건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삶이란 건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삶이란 건 있어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삶이란 건 무게가 아니었다.
삶이란 건, 가볍고 사뿐한 것이었다. 삶이란 건 절로 펼쳐지는 것이었다. 삶은 서핑타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삶은 파도를 타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삶이란 건 꼭 무언가를 해내야 하는 숙제가 아니었다. 무엇이 되지 않아도 무엇을 갖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삶이란 건 무엇으로 꽉 채우지 않아도 되는, 삶이란 건 비워야 하는 것이란 걸 마흔 가까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비우면 비울수록 내 안은 가득채워지는 마법. 그것이 삶이었다. 집착없는 마음이 삶을 한결 부드럽고 친절하게 한다는 걸, 내려놓는 마음이 삶을 깃털처럼 가볍게 한다는 걸, 그렇게 지리멸렬한 시간을 통해 알게 되었다.
삶에 대한 배움이란, 어쩜 이토록 무한할까. 그 확장성은 무한함이다. 깨닫게 된 건, 삶에 대한 배움엔 스승이 따로 없다는 것, 그 스승은 나 자신이라는 걸. 그 누구도 삶에 대해, 인생에 대해, 인간에 대해, 사랑에 대해, 자기 자신에 대해 가르쳐줄 수 없다. 오직 나 자신만이 경험하고 그 경험을 통해 직관적으로 알게 되는 삶의 지혜와 직관적인 앎, 통찰. 인간은 자기 자신의 스승이다.
그러니 누군가가 타인의 삶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일이란 경계해야 되는 일이다. 자기 삶의 주인이 된다는 건, 자족할 수 있으며 그 어떤 것도 다 받아들이겠다는 수용과 감사, 사는 동안 자신의 가치를 외부가 아닌 내 안으로 돌려 그 빛을 유지하는 일, 그 자신이 그토록 찾던 행복 그 자체였음을 알아차리는 삶이다.
20s를 돌아보면, 그땐 참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득찼었다. 그 시절 내겐 우울과 두려움이란 없었고 오직 나아감이 있었던 시절이기도 했다. 요즘 부쩍 그 시절을 상기하다 서른 초반에 찾아온 방황을 떠올리면, "그땐 왜 나 자신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을까?, 왜 내 삶이 마치 영원할 것 처럼 이렇게 되지 않으면 안돼.이런 방식으로 내 자신을 채찍질하고 괴롭혔을까? 인생을 왜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했을까? 이토록 가벼웠던 것을. 힘빼고 살면 되는 것을..."혼잣말을 하곤 한다.
그 앎이란, 책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닌 직관적인 앎에 가깝다. 나 그리고 의식, 세상이라는 그 경계, 그경계 너머에 대한 신비로움과 경외감...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얼마나 행운인지. 아름다운 것인지. 그저 내게 일어나는 모든 것들에 대해 타는 경외감과 감사함이 밀려오는 삶이 되었다. 그 어느 것하나 연결되지 얺은 것이 없다는 것. 순간순간 감사하고 감탄하고 감동하는 것들이 넘쳐나는 삶이다.
오늘 아침, 바삭바삭하게 바짝 말려진 타올들을 하나씩 개면서 타올 하나를 내 뺨에 살포시 갖다 대었다. 섬유유연제 향이 내 코끝을 스친다. 절로 눈이 감기곤 몇 초새 그렇게 그 포근함에 멈춰있었다. 그 순간조차 나는 감사함을 느끼고 내 삶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편안함, 평온함, 고요란 아름다움과도 같다.
다가올 마흔이 기대되는 이유,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일상의 모든 순간들이 감사하고 아름다워보이는 마법. 그 삶이란 분명 이전과는 다른 삶일 것이다.
삶이 힘들수록, 삶이 고통스러울 수록, 우울하고 불안할수록, 두려움에 몸서리 칠수록 나의 시선을 외부가 아닌 내 안으로 돌려야 한다. 내 안에서 나의 영혼을 발견하고 만나야 한다. 그것은 변하지 않고 늘 그 자리에 있다. 변하지 않는 건 무엇인가? 내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내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