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했을 땐 클렌져를 사용하지만, 보통은 맨물 세수를 한다. 선크림을 꼭 발라야 한다지만, 내게 잘 맞는 선크림을 찾지 못했거니와 선크림을 발랐을 때의 끈적함이 불편함을 가져와 얼굴엔 잘 바르지 않고 목에 바른다. 서른 후반인 지금 결국 돌고돌아 자연적인 것이, 자극적이지 않은 것이 제일 낫다는 생각을 한다. 메이크업한 날 저녁은 클렌저로 꼼꼼히 지우고 그 외엔 아침 저녁 맨물 세수가 전부다. 청량한 토너 하나만 바른다. 겨울엔 보습크림 하나를 추가하지만 그 나머지 계절은 토너 하나면 충분하다. 그래서일까. 피부결은 나이든 지금이 더 나은 것 같다.
기초화장품이 이토록 없을 수 있을까, 어쩜 토너 하나만 바를까.싶지만 이것이 내게 가장 알맞는 걸 어떡하나.한다. 자연적인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는 생각이 있다. 토너가 똑 떨어질 때면 주문하는데, 거의 한 통을 다 비운뒤 주문하는 재미도 있다. 메이크업 파우치도 이전에 비하면 참 간소해졌다. 파운데이션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컨실러 하나만 사용한다. 군데 군데 살짝 찍어 톡톡 두드려주는 정도로 마무리 한다. 아이브로우와 마스카라면 나의 메이크업 완성이다. 언제부터인가 립스틱도 바르지 않게 되었는데, 본디 까무잡잡한 피부라 웬만한 립스틱이 어울리기가 쉽지 않은 것도 있고 이젠 화장을 진하게 하지 않으니 포인트 줄 일이 없어서다. 맥 립스틱들도 다 정리했다.
피부결이 깨끗하면, 톤이 정돈되면 얼굴이 매끄러워 보이고 예뻐 보이는 효과가 있다. 메이크업을 진하게 하는 것보다 피부결을 관리해 은은한 분위기를 내는 걸 선호하게 됐다. 언제부터인가 확연히 늘어난 기미가 군데군데 보이긴 하지만, 이마저도 자연스런 흐름 아니겠는가. 그러려니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애써 컨실러로 가리려 하지도 않고 톤이 정리될 정도로 아주 살짝 그 부위를 스친다.
내가 진짜 신경써야할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화려한 외관이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이겠다. 내면이 아름답지 않은데 외면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외면이 아름답다고 내면이 아름다울까? 외면과 내면은 하나다. 내면의 맑음과 순수와 고요함과 아름다움이 외면으로 확장돼 드러나는 것, 그것은 상대가 절로 느끼게 하는 것이다. 피부의 맑음과 눈동자, 눈빛의 맑음, 설명할 수 없는 고운 낯빛... 나이들어갈수록 신경써야 할 것은 이런 것들이란 생각이 있다.
몸이 관리되면 어느 옷을 입어도 괜찮아 보이는, 예뻐 보이는 마법, 피부가 관리되면 예뻐 보이는 마법, 내면을 관리하면 눈빛이 빛나는, 좋은 기운을 뿜어내는 마법, 실은 돈 하나 들이지 않고도 나 자신이 행복해지고 편안해지고 아름다워지는 일이다. 이런 관리란 실은 언제 어디서나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순간순간 가꿔나갈 수 있는 것들이다. 아침마다 절로 확인하게 되는 일은, 거울 속 내 눈동자를, 내 눈을 바라보는 일이다. 안녕한지. 오늘 너의 기분은 어떤지... 눈빛의 맑음과 순수 만큼은 지키고 싶은 게 있다. 눈동자의 생기란 내겐 살아있음이다.
오늘 아침, 잠을 푹 잘잔 덕분인지 유난히도 매끄러운 피부결을 보고선 일으켜진 한 생각이었다. 피부란 장 건강과도 직결되는데, 장을 관리하면 감정이 관리되고 기분이 관리된다. Gut feeling, instinct... 이 용이해진다. 장이 건강하면 피부가 절로 좋아지고 몸도 관리된다. 모든 것은 어쩜 이토록 하나인지. 어느 것 하나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는지. 경이로울 뿐이다.
그러다 한 생각 일으켜진 것은 의연함이었다. 불안과 두려움 가득했던 시절을 지나니, 그 터널을 지나고 나니, 뛰어넘고 나니, 지금의 내게 남겨진 것은 의연함이라는 선물이 있다. 의연함과 초연함이 날 더 여유롭게 한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어떤 일이 닥쳐도 나는 괜찮다, 괜찮아.라는 생각이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럴 수 있지 뭐.", "이미 벌어진 일, 어떡할거야. 그냥 받아들이는 수밖에."한다. 설령 어떤 일이 일어난다해도 그것은 내게 일어난 일련의 사건일 뿐, 진짜 나.가 무너질 일은 아니라는 걸, 그것이 내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란 걸 알아차릴 수 있어서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는 받아들일 수 있다.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극복할, 용기와 지혜를 주세요."한다.
서른 초반의 지리멸렬한 때론 지독하다고 생각했던 내 안의 방황과 우울, 그 시절의 내가 보면 놀랄 일이다. 어떨 땐 나의 의연함에 나 스스로도 놀랄 때가 있다. 그 의연함을 통해 알게 된다. 나는 아주 조금씩 나아가고 있단 걸. 의연함이란 포기나 좌절이 아닌 실패는 당연한 것이다, 실패해도 괜찮아.라는 마음. 내게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마음. 무슨 일이 일어나도 괜찮아.의 마음.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이다. 의연함을 유지하면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날 감싸던 불안과 두려움은 의연함에 맞서지 못한다. 비집고 들어올 새가 없다. 내게 의연함이란 수용이고 감사다.
나이듦도 그렇다. 나이들어간다는 건 무언가를 채우고 더하는 것이 아닌 비우고 덜어내는 일 같다. 그 비움이란, 그 덜어냄이란 자신에게 진짜 중요한 가치들을 세우고 그것에 집중하는 것이 될 수도 있고 나이들어가고 있다는 걸, 죽어가고 있다는 걸 명징하게 알아차리는 일, 그 과정 속에서 진짜 나.를 알아차리는 일, 내면의 고독을 초연하게 만끽하는 일, 자기만의 낭만으로 일상의 순간들을 채워나가는 일, 감사하며 살아가는 일, 사람을 사랑하는 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 친절함과 존중 가득한 삶을 살아가는 일,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 같다. 이전과는 다른 손과 목, 얼굴의 주름을 보며, 예전같지 않은 온 몸 관절 사이사이의 쑤심이랄까. 달라진 체력이랄까. 그것들에 낙담하는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일이야. 아름답게 나이들어가자. 내게 일어나는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자.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정말이지 익어가고 있구나. 깊어가고 있구나..."를 상기하는 일이다.
누구에게나 젊음은 있었다. 누구에게나 젊음은 공평하다. 그러니 아쉬워할 것도 안타까워할 것도 슬퍼할 것도 우울해질 것도 없다. 생사일여, 삶과 죽음이 하나란 걸 알면, 노화도 죽음도 두려울 게 없다.
부쩍 나는 상기한다.
하고싶은 게 있으면 그냥 하자.
지금 어디를 가고 싶으면 가자.
내일, 다음주, 다다음주, 다음달... 미루지 말고 그냥 하자.
그러다 영영 놓치는 수가 있다는 걸, 경험적으로도 직감적으로도 알게 되었다.
마흔이 코 앞인 내게 이십대 서른의 젊음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럴 수도 없거니와 그 시절의 젊음은 이미 가고 없다. 그러나 서른 후반, 곧 마흔의 젊음이란, 아름다움이란 이십대 서른 초반의 젊은이들 못지 않게 매력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익어감, 깊어감에 대한 내면의 확장이 외면으로 드러났을 때 오는 섹시함과 분위기, 아우라가 있다. 생기를 유지하는 일, 눈빛의 맑음과 내면의 순수를 유지하면 그것이 내겐 젊음이고 아름다움이고 나만의 향기다.
나는 이렇게 익어간다. 깊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