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것에 매료되었다

by Aarushi

지금의 단출한 내 살림살이를 소파에 앉아 저만치 바라보고 있으면 괜시리 마음이 편안해지고 고요해지고 평온해지는 게 있다. 그릇도 다 정리하고 지금은 매일 쓰는, 자주 손이 가는, 내 취향의 그릇들만 남았다. 머그 컵도 실은 여러 개가 필요하지 않다. 엄마가 식재료를 신선하게 보관하라고 보내주신 통들을 제외하면 내 부엌 살림 역시 지금의 내 삶의 태도처럼 단출하고 소박하다. 그 단출함과 소박함에 나는 매료되었다.


무언가를 더하지 않는 삶, 무언가를 채워넣지 않아도 만족할 수 있는 삶, 나는 그것에 매료되었다. 어쩌다가라도 내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발견할 때면 물론 사곤 한다. 그러나 단박이 아니고 후에라도 예쁜 쓰레기가 되지 않도록 거듭 고민해 산다. 그래서인지 지금 내 살림살이에 대한 애정이 있다. 집착이 아닌 지극히 고마움이겠는데 내 취향의 것이라 볼 때마다, 사용할 때마다 기분좋아지는 마법이다.


일 끝나고 저녁 8시나 9시쯤 돼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곤 하는데 같은 재료인데다 그 시간대면 떨이로 반값에 알뜰하게 구매할 수 있다. 그 알뜰함과 쌈빡함이 취향이도 하고 재래시장도 종종 일부러 가곤한다. 재래시장이라면야 특히나 새벽시장사람들의 그 특유의 생명력과 비비드함이 좋아서다. 노지에서 자란 청양고추, 마늘, 양배추, 상추, 단호박, 호박, 브로콜리... 천변을 따라 쭉 이어진 노상의 새벽시장이 나는 이토록 정겹다. 그 정겨움을 만끽하고 싶어 가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름 커리어 우먼이던 시절 입던 옷이나 신발, 세미 정장 느낌의 가방들도 정리한지 꽤 되었고 지금은 가벼우면서도 부드러운 가죽 가방이나 에코백 몇 개만 남았다. 힐을 신지 않은지도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운동화, 여름 샌들 몇 컬레가 전부다. 그럼에도 부족하지 않다고 느끼니, 충분하다고 느낀다. 부족함이 없다고 느낀다. 입는 옷들도 좀 지난 옷이라도 지극히 내 취향의 옷들만 남았는데, 유행타지 않는 그것들이, 그저 내가 입으면 예쁘다고 느끼는, 빈티지스러움이 내게 알맞다.


새 물건을 쉽게 들이지 않는 편이라 살림이 좀처럼 늘어날 일도 없거니와 외려 줄일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줄이곤 한다. 물건도 기의 감응이란 생각이 있는데, 내 마음에 걸림이 있거나 싶은 것들은 비운다. 나이 들어가서만은 아닌 것 같고 나는 본래 이런 사람이었던 것도 맞고 모든 것은 변하는 것처럼 나도, 내 삶도, 내 삶의 태도도, 변해 왔음을 그리고 그 어떤 것도 잘못된 것이 없음을, 그저 흘러가는 것일뿐, 그저 절로 펼쳐진 것일 뿐이라는 직관적인 앎이 인다.


사람들을 만날 땐 카페 가는 것을 좋아하는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때도 카페에 가곤 한다. 특히나 광화문역 일대는 내게는 낭만 그 자체, 그리고 지난 20s, 30s 갖은 추억들이 즐비한 곳인데, 그곳을 거닐 때면 지난 연인들과의 추억들도 아련히 스치기도 하고 밝고 명랑하고 당차고 시원시원하기도 했던 지난 나, 젊은 시절의 내.가 나타난다. 그곳 일대에서 느꼈던 갖은 행복감과 때로는 황홀경, 때로는 슬픔과 방황의 것들은 사라지고 지금은 내게 그저 아름답고 그립고 아련한 추억들로 자리잡았다.


지금도 여전히 약속 대부분을 광화문역에서 하는 편인데, 약속 시간 전에 좀 일찍 도착해 통창이 있는 곳이나 테라스에 앉아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을 갖곤 한다. 내게로 향하는 침잠의 시간이, 내면으로 향해 들어가는 그 시간이 내겐 더할나위 없는 시간이 된다. 카페에 가는 걸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커피를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내겐 더 큰 것이 시끌벅적한 카페 안에서 아주 좁은 나의 자리 하나가, 모르는 타인들과의 경계가 되어주고 나만의 방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사람들의 오고가는 대화 속 시끌벅적함도 들리지 않고 내게만 집중하게 되는, 마치 이 공간에 나 혼자만 덩그러니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데, 그 고요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나만의 방. 자기만의 방은 꼭 카페에서 뿐만아니라 어디서든 가능하다. 일하는 공간에서도,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언제 어디서건 나만의 방을 만끽하는 것. 그 시간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의 작은 낭만 그리고 쉼이 아닐까. 자기 만의 방속에선 감정적인 동요도, 그 어떤 사특한 생각들도 걷히게 된다.


살아보니, 나이들어간다는 건 참 많은 면에서 알게 하는 것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자기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일 같다. 지난 삶, 현재의 삶 그 어떤 것도 잘못된 것이 없었단 걸, 운이라는 게 있고 그저 내게 펼쳐진 삶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와 지혜로 이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사랑을 경험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있다. 지난 삶을 돌이켜보면 운이 좋게 흘러갈 땐 크게 노력한 것 같지 않은데도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게 있고 운이 좋지 않을 땐 어떤 노력을 해도, 어떤 일을 해도 되지 않는 때가 있었다. 그런 삶의 흐름을, 운.이라는 것에 대해 받아들이는 과정, 자기 안에서 만족할 줄 아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이 어른이 되는 과정이 아닐까.싶다.


조촐하고 단출하기 그지없는 내 살림살이도 분명 내 기운의 반영이겠다. 무언갈 계속해서 갈망하거나 채우거나 더하는 것보단 지금 이대로도 나는 괜찮아.의 마음과 비우는 삶, 수용하는 삶이 내 살림살이에도 여실히 반영되는 것이다. 옷도 손이 매일 가는 옷이 있는 것처럼, 입는 옷만 입게 되는 부분이 있다. 그런 걸 감안하면 경험적으로 이제 더는 새 옷을 사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 산지 조금 됐으나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인데다 이제 더는 잘 보이지 않는 디자인이라면 더욱이 그 고유성에 만족하며 있는 옷을 잘 입게 된다.


옷을 사는 일보단, 내 몸을 관리해 어떤 옷을 입어도 몇 천원짜리 몇 만원짜리 옷을 입어도 예뻐 보이는 걸 선호한다. 그러려면 내면의 아름다움이 외연으로 확장되는 그것, 분위기 아우라가 필요하다는 것도.


나만의 방도 실은 자기 자신으로 향하는 길목들이다. 내면으로 침잠하는 길, 내게로 가는 길, 그 길엔 어떤 분별도 경계도 없다. 그저 가면 된다.


내가 생각하는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것, 자기 자신이 되는 길, 수행... 이런 것들은 특별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다. 깨달음이란 것도 마찬가지다. 깨달았다고 하는 자가 과연 깨달은 자일까?하는 생각이 있다. 결국 아무 것도 모른다.가 더 적확한 것일지도. 모든 것은 내 안에 있다.


흔히 말하는 수행이란 것도 실은 늘 우리 삶 속에 있다. 늘 우리 일상의 순간순간에 깃들어 있다. 자기 만의 방에서 고요를 만나고 평온해진다면, 알아차릴 수 있다면 이 또한 수행일 것이다. 그런 나를 알아차리는 것, 그 알아차림을 알아차리는 것... 그저 모든 순간 속에 삶의 지혜와 통찰과 앎이 있다.


내게 자기만의 방이란, 시끌벅적하고 화려한 도심의 삶 속에서 누릴 수 있는, 만끽할 수 있는, 나 자신과 아주 잠시 동안만이라도 만나 대화할 수 있는 도량인 것이다.


나만의 방은 항상 내게 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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