곯아 떨어졌다. 어젯밤 집에 돌아오자마자 누웠는데 눈떠보니 아침이다. 발도 무척이나 피곤했나보다. 아침부터 서촌에서 약속이 있었다. 친구와 아침 9시에 만나 모닝 커피를 마신뒤 브런치를 먹으러 갔다. 이왕이면 아침 모닝 커피 시간에 만나는 걸 선호한다.
예약한 식당에 들어서니 예전 생각이 났다. 키친에 들어서면 짙게 배어있던 라구 냄새, 오븐 냄새... 친구와 사는 이야기며, 요리 이야기며 도란도란 맛있는 브런치를 했다. 친구네서 차도 마시고 인왕산 산새와 서울 종로 마천루 일대가 한 눈에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며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왔다.
오후엔 교보에 들렀다 그곳을 빠져나와 이어폰을 꽂은채, 그 일대를 한참을 걸었다. 찌는 듯한 더위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걷는 내내 헥헥 스러움도 있었지만, 외려 온몸에 퍼지는 듯한 뜨거운 온기가 걷기 명상에 도움이 되었다. 이마며 뺨이며 송글송글 맺어 흐르는 땀방울도 알아차릴 수 있었고 등이며 사방군데 땀이 흐르는 것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머리카락은 이마와 뺨에 달라붙고 등의 총체적 난국의 상황이 나는 그저 당연한 것이었을 뿐. 그렇게 걷다 카페에 들어서니 이토록 시원할 수가. 에어컨 바람과 바깥의 온도가 대비되면서 외려 느껴지는, 걷히는 청량감이 좋았다.
내가 가장 편안하게 생각하는 일대를 걷는 일이란, 나를 기분좋게 하는 일이자 나의 일상에 다시금 활기를, 생기를 불어넣는 일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이, 가장 많이 드나들던 곳도 광화문 일대라 지금도 서울에서의 나의 반경은 이곳을 벗어나지 않는다. 걷는 내내 나와 스치듯 마주치는 사람들, 물장구를 치며 뛰어놀고 있는 아이들, 함께 양산을 쓰고 걷는 연인들... 많은 무리들 속에 나는 덩그러니 혼자였다. 그 덩그러니 혼자임이 외려 지금 이 순간을 제3자처럼 바라보도록 했다. 지금 내 앞에 펼쳐진 풍경들 뭘까? 뭐지? 마치 영화관 스크린 속 생생하게 살아움직이는 듯한 영상, 영화같달까? 찜통같은 무더위 속 종로를 걷고 있는 나는 어김없이 사색했다.
걷는 내내, "Go right through it." 이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그래, 고 롸잇 뚜루잇!!!"나는 이렇게 광화문 한복판에서 마음 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그래, 널 갈팡질팡하게 하는, 결정하지 못하게 하는, 선택하지 못하게 하는 그 두려움... 뚫고 지나가보자! 까짓 거 마주해!" 일순간 별의별 용기가 샘솟았다.
예전 생각이 어쩜 이토록 부쩍 나는지. 그리움이 더 큰 것이겠지.싶다. 문득 이러다 곧 가을이겠지.싶었다. 이 무더위가 지나면 잠깐의 가을 그리고 또 겨울이겠지... 무작위한 사유의 흐름과 의식의 작용이 한데 뒤섞여 나의 걷기가 지루하지 않게 했다.
오늘 아침 눈떠보니 아침 9시. 이렇게 눈떠보니 아침인 이 모먼트를 사랑하는데 숙면이었다. 숙면을 하고 난뒤 아침은 늘 이렇게 가뿐하다. 정신이 맑다. 다시 태어난 듯한 기분이 있다. 채비를 하고 노트북만 챙겨 나왔다. 아침부터 국밥이 당기는 건 무엇. 국밥 한 그릇 먹고 커피 한 잔 마셔야지.하는 생각에서다. 꿀잠은 늘 이렇게 내게 생의 의지를 불러 일으킨다. 잘 자고 나니, 집밖을 나와 움직일 생각을 한다. 기운이 펄펄 나니 내 안의 걱정과 불안, 두려움이 걷는다.
파도가 일면 이는 대로 파도를 타면 되지... 피한다고 피해지는가? 그렇담 마주해야지. 올라타면 되지 뭐... 도저히 멈출 것 같지 않은 거센 파도도 어느 순간 어느 시점엔 분명 잠잠해질 것임을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한 바다가 된다는 걸 알지 않은가? 파도와 바다는 하나다.
울고 싶으면 마음껏 울고 불안하면 마음껏 불안하고 두려움이 일면 마음껏 두려워하고 그저 내게 일어나는 파도에 마음껏 내맡겨 풍덩해도 괜찮다. 그 마주함과 직면함과 관찰 뒤엔 그것이 그저 일련의 사건임을 분명 지나갈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것이 무엇이든 흠뻑 젖어볼테야.
사색 뒤엔 늘 이런다.
결국 나의 사색도 나의 일상을 나의 순간을 나의 현재를 씩씩하게 충실히 살아가기 위함이겠지...
내게 남은 여름은 앞으로 얼마나 될까? 알 수 없지만 눈깜짝할 새 마흔이 코 앞으로 다가온 것처럼 어느 순간 눈떠보니 할머니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때쯤의 나는 어떤 사색을 하고 있을까?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떤 모습일까?
올해 이 여름 분명 반짝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