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멀스멀 올라왔다. 익히 아는 그것이었다. 갑작스레 물밀듯이 밀려오는 불안과 우울감, 두려움... 올라오는 감정을 고스란히 느꼈다. 두들겨 맞았다는 게 적확할지도. 그렇게 잠깐 새 혹은 몇 시간 온전하게 흡수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듯 생기를 되찾는다. 지금 내게 일어나는 생각은 내가 아니다, 지금 내게 올라오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서 몸을 움직였다. 가끔은 나의 이 고독이 너무 깊어져 외려 날 더 외롭게 하지 않도록, 날 더 아프게 하지 않도록 그 아슬아슬한 경계, 균형을 잘 유지하도록 하는 편이다.
그 고독이 너무 내 안에서 침잠하지 않도록, 언제든지 금세 튀어오를 수 있도록, 날아오를 수 있을 만큼의 적당한 고독이 중요하다. 마흔 가까이 되니 살면서 느낀점들이 이토록 많은지. 많아지는지. 그런 앎에서 나오는 삶에 대한 통찰과 지혜가 나는 이토록 사랑스럽다. 고독은 나의 필연이었겠지. 우리 모두는 고독한 자다. 외로운 사람들이다. 어떻게서든 그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하는, 자기 세계를 창조해나가는 전사들이다. 내가 꼭 그런 것처럼, 타인들도 얼마나 자기 만의 번뇌, 고통, 괴로움, 상처, 슬픔, 우울, 불안이 있을까? 얼마나 힘이 들까?.하는 연민의 마음이 든다. 발길 닫는 곳마다 나와 스치듯 지나가는 사람들, 혹은 마주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그들의 얼굴과 낯빛과 눈...에서 느껴지는 타는 사랑스러움, 감사함, 고귀함, 진정성, 순수...이런 것들을 보게 되는 나이가 됐다. 그러니 절로 친절하게 되는 마법이다. 친절은 사랑 그 자체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가족을 생각하다, 나는 내 사랑하는 가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는 진짜 서로를 이해하고 있을까?
서로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을까?
지난 시절들이 오버랩되면서 나는 내 가족에게 따뜻한 사람이었을까? 사랑가득한 사람이었을까? 상냥했을까? 친절했을까? 좋은 가족이었을까?...라는 질문이 쉼없이 이어졌다. 그러면서 나란 사람... 무심했구나.하는 자기 반성과 아쉬움, 안타까움, 회한이 밀려왔다.
묻고 따지지 말고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 친절해야 한다. 옳고 그름이 무엇인가? 옮고 그름이 무엇이 중요할까? 사랑엔 분별이 없다. 사랑엔 옳고 그름이 없는 것이다. 소용없는 것이다.
유난히 체력이 떨어진 기분이랄까. 기운이 좀처럼 차려 지지 않는 저녁, 늘 그렇듯 조금이라도 걸으면 분명 걷힐 것 같았다. 가는 길에 그린티 싱귤러 아이스크림 하나를 주문해 한 입 베어 물었다. 한 스쿱에 "반짝"하고 이 맛이지.했다. 그곳을 나와 걷는데 주변은 황금색 오라처럼 빛나고 있는 달을 바라봤다.
"달은 빛나고 있다. 나도 너와 같이 빛나고 있어." 그러다 어느 순간 지금 이 순간의 나.가 산책로를 걷고 있는 나가 제3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때면 더욱 나와의 대화가, 직관적인 앎과 알아차림이 용이해진다.
나는 수시로 생각한다.
"내가 데리고 살 것은 나 자신.이다."
"내 눈물은 내 손등으로 닦아야 한다."
"아무 것도, 누구에게도 기대하지 말라."
"나는 왜 나를 아프게 하는가?"
무슨 일이 일어나도,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나는 행복할 수 있다.
나는 나를 사랑하니까. 나는 나를 믿으니까.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사랑해줄까.
내가 나를 보호하지 않으면 누가 날 보호해줄까.
두려움이 있다면, 그것을 직면하라.
직면하면 알게 된다. 허상임을.
과거에 있었던 적이 있는가?
과거가 있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과거 현재 미래라 불리는 그것... 시간... 실재하는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월화수목금토일... 실은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이 아닌가?
설명하기 다소 어려운 그저 느껴지는 것이랄까.
직관적인 것이랄까.
시간, 요일, 달... 그 모든 것들이 실은 하나다, 모든 것은 다 연결되어있다. 마치 하나의 점들이 같은 곳에 그저 놓여져있는 듯한.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봄이다.
내게서 솟아나고 피어나는 작은 것들에 대한 질문이, 그로인한 사색이, 한 곳을 응시하며 어느 순간 내 안에 몰입하게 되는 순간들이 날 이토록 즐겁게 한다.
고독이 나의 필연이라면 이 또한 기꺼이 감사히 받아들여야지.
쓸쓸함이 나의 필연이라면, 외로움이 나의 필연이라면 이 또한 모두 다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이 있다.
고독과 외로움, 쓸쓸함에 대하여ㅡ
익숙하고,
그것들로 인해 나는 점점 말이 적어지고,
목소리는 이토록 차분해지고,
웬만해선 화나지 않고,
그러려니.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그럴 수 있지 뭐.하게 되고,
많은 말보다 나의 침묵 하나로,
나의 눈빛 하나로,
나의 미소 하나로,
나를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이 붙잡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처럼 사색엔 끝이 없다. 경계없다. 무한하다.
그 무한함이 인간을 인간답게 성장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