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일요일. 어제 아침 아빠와 만나 할머니댁에 다녀왔다. 도착 후 점심을 먹고 출발하니 오후 5시가 다 되었다. 아빠는 중간에 날 픽업하기 전 문자 하나를 보내셨다. "커피 사다놨어." 차에 타니 내가 좋아하는 스모키 라떼를 사놓으셨다. 2시간 40분 정도 걸리는 여정인데 그래도 이렇게 함께 가면 어느 새 곧 도착하는 게 있다. 아빠집에 들러 지난 번 놓고 간 짐도 챙기고 오이무침도 한 통 가득 싸주셨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니 저녁이 됐다. 소파에 등을 기대곤 어느 한 곳을 응시하다 그렇게 멍.하니 있다 몇 분새 몸을 일으켰다.
늦은 밤, 나름 바빴던 오늘, 몇 시간 전만 하더라도 고속도로를 달려 할머니댁에 있었다는 사실이 갑작스레 생경하게 느껴지고 하는 것들... 열어놓은 창문 사이 들려오는 잘은 빗방울 소리, 나의 알아차림 그 모든 것이 이토록 소중하게 느껴졌다. 요즘 밤날씨, 온도 참 선선해졌다. 곧 가을이구나.싶은게 가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 가을, 그 계절의 냄새가 짙게 풍겼다. 그렇게 스르르 잠이 들었겠지. 눈떠보니 아침이다. "오늘은 점심을 나가서 먹자. 시장 국밥을 먹을까? 노트북도 가져가고 오후에 밖에서 시간을 보내다 오자." 그렇게 마음 먹었다.
시장까지 가려면 버스를 타야하는데 버스 안 창밖 너머 여전한 초록의 풍경들, 버스 안에선 중학생들로 보이는 여학생들의 수다 소리와 시끌벅적함이 전혀 이질적이지 않았다. 외려 그 생기가 내게 안정감과 평안함과 평화를 주었다. "참 예쁘다, 어쩜 저렇게 예쁘고 맑을까? 그 나이대, 그 시절 참 그 자체만으로도 이토록 아름다운 거구나.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구 말구. 그 밝음과 생기... 이토록 아름다운 것이었어...^^" 절로 엄마 미소가 나왔다. 곧 마흔이라, 이젠 웬만해선 이모 미소도 아니고 엄마 미소가 되는 건 무엇.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있다.는 생각을 하면 나이, 성별, 연령, 세대 불문 모든 것이 사랑스럽고 연민하게 된다.
버스 안에서도 역시나 나의 생각은 폭풍우처럼 몰아친다. 어디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튀어나오는 건지 모르겠는, 내겐 미지의 세계인 의식... 무튼 불현듯 떠오른 문장, "나의 고독, 80년대생의 고독... 고독은 나의 숙명인건가...",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이 편안해서야 더할 것이 없어서야, 더 바랄 것이 없어서야... Are you alright? ..." 실은 정말이지 막 무언갈 더 얻고자 하는 마음이 사라졌다. 돈 물론 있으면 정말 좋겠다, 부자면 좋겠지만 아니어도 괜찮아.라는 마음이 있고 더 바랄 것이 없으니, 이것이야말로 나의 큰 자산이 아닌가. 결국 모든 걸 가진 것이 아닌가.하는 알아차림도 인다. 현실은 먹고 사는데 일희일비하게 되는 것도 있지만, 이러면 어떠하리 저러면 어떠하리. 결국 나의 일상의 수행이란 것도, 알아차림이란 것도 결국은 내 삶을 좀 더 잘 살아나가기 위함 아니던가.
얼마 전 우연히 본 짤막한 영상이 있다. 제목이 100세 할아버지가 해주는 인생조언이었는데,
"첫번째 어제는 히스토리일 뿐이고 두 번째 내일은 미스테리일 뿐이에요.
선물이죠. 즐기세요.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얼마든지 하세요."
할아버지의 마지막 말씀과 함께 인터뷰어인 한 여성이 나눈 악수에서 눈물이 났다. 내 안에서 뜨거운 무엇이 순간 올라와 눈물을 글썽였는데, 그것이 무엇이었을지 나는 알 것 같았다.
저장해 둔 그 영상을 시시로 들여다본다. 연로하신 할아버지의 눈망울에서 나는 빛을 본듯한 기분이 들었다. 영롱하고 또렷하고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눈망울,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말들... 그 자체가 사랑이다.
나도 모르게 부쩍 스스로를 "옛날 사람"이라고 하게 되는데, 그것은 어떤 뒤쳐짐이나 그런 것이 아니라, 80년대 생으로서 그 세대만이 갖고 있는, 그 시절의 추억과 낭만,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짙은 향수, 그리움.의 표현이라는 것이 맞겠다. 내가 초등학생때 들었을 90년대 발라드를 들으면 어쩜 이토록 가사가 서정적인지, 시적인지. 대학생이던 2000년대를 떠올리면 그 시절만의 그리움이 밀려온다. 시청역 덕수궁 옆 당시만 하더라도 던킨이 작게 있었는데 싶고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서 그 시절이 생각나곤 한다. 잠시 눈을 감았는데 눈떠보니 곧 마흔이야...라는 말이 절로 나올만큼... 삶이란, 인생이란 이토록 찰나였던 것이다.
미스테리한 인생. 정말이지 필연인 것 같으면서도 우연으로 가득찬 세상. 한편으론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경이로운 것이겠지.하는 것들... 실은 체력도 확실히 전보단 쉽게 떨어지는 것 같고 소화력도 이전만 못하게 되었구나.싶은 것이 많은 요즘이다. 먹는 양도 확실히 줄었달까.
다가올 나의 40s이 기대되는 이유는, 지금의 나는 그래도 이전보단 덜 유약하고 취약하고 나약하단 걸 느끼기 때문이다. 나는 분명 죽는다.는 걸 매 순간 인식하며 살아가고 있고 내려놓을 줄 알게 되었고 집착하지 않게 되었고 무언가를 막 원하는 것보다 더이상 얻을 것이 없다.라고 생각하게 있다. "Do not fear." 두려울 것이 없는 자가 진짜 자유로운 사람이란 걸 안다.
내일이면 또 다시 일로의 복귀, 어떤 일을 하는 평범한 소시민의 나.이겠지만,
그 평범한 소시민의 삶이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갈 비빌 언덕이 되어주지 않는가.
먹고 사는 문제아니던가. 일이 주어졌음에 돈을 벌 수 있음에 무척이나 감사한 일이다.
감사할 줄 알면 만족할 줄 알면 내 삶이 더욱 평화로워지는 마법.
이렇게 마흔이 다 되어서야 알게 되는 것이었을까.
아무렴 그 모든 것이 아름다워보이는 것도 결국 다 내게 달렸다.
내 안에 세상이 있으니 "이얍~ 요술방망이를 쥔 자 나 아니던가?"
요로코롬 제 멋대로 어느 80년대생의 여느 일요일의 고독은 우당탕탕 요란스럽진 않아도 자기 안에선 무척이나 즐겁고 고요하고 재미로 가득하다.
80년대생이라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 행복했구나.하는 것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