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잠할 때가 있다. 애써 몸을 움직여보려 언니네서 저녁도 먹고 조카들도 집에 놀러오고 그땐 정말이지 아무렇지도 않다. 언제 그랬냐는듯 즐겁고 그 시간에만 집중하게 되는 게 있다. 모두와 헤어진 뒤 오는 얕은 공허함이랄까 일순간 올때도 있지만 외로움 고독 그것과는 다른 결이다. 무튼 주말 내내 나는 알겠으면서도 분명 알겠는 것 같으면서도 훅 하고 툭 던져진 우울에 그대로 침잠해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것은 어떤 패배도 아니오, 어쩌할 도리 없이 실은 감정을 전환하지 못한 탓이다. 감정은 생각이 되고 생각은 내가 아니나, 휘몰아치는 지난 시간들에 대한 반추, 후회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마치 열병처럼 고꾸라지곤 한다.
보통은 몇 분 혹은 몇 시간 정도면 지나가는 편인데 정신을 차리고 나니 글이 쓰고 싶어졌다. 우울 역시 내게 일어난 사건임을 알아차리면 되는 것을, 어찌할 도리 없이 그렇게 되고야 말았다. 이렇게 우당탕탕 한바탕 폭풍우가 지나가면 이렇게 고요가 찾아온다. 폭풍우가 지나간 자리가 마냥 황폐하지만은 않은 것이 그 황폐함을 알아차림으로써 다시금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 게 있고 모든 것을 다 내려놓게 되는 집착하지 않게 되는 수용의 자리가 생긴다.
실은 "그때 이랬으면 어땠을까? 그때 만약 내가 이런 선택을 했었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이미 지나간, 허무맹랑한 것들을 붙잡고 나 스스로를 괴롭힐 때가 있다. 이전보단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이따금씩 훅 하고 불어오는 반추란 실은 내게 독이다. 잘 나아가는 것 같다가도 고꾸라지기를 반복하는 나, 또 그걸 극복해나가는 나, 그것이 삶이라면 아마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것이겠지...싶다.
우연히 프랑스 시골 브이로그 유튜브 영상을 봤다. 파리를 마지막으로 여행을 가지 않은지 벌써 꽤 오래되었는데, 정말이지 오랜만에 여행을 떠나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 여행을 떠날 시간도 또 나 자신에게 그럴 기회조차 주지 않을만큼 혹독하게 일에 집중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렇게 한 해 한 해가 지나고 눈떠보니 마흔이 되었다. 그러면서 방황과 우울과 고독의 연속이었던 파리 생활이었지만 그 시절 나름 행복했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갔다.
혼자 낭트를 여행한 적이 있는데, 시골 마을 풍경을 지나 아름다운 성당이 있고 곳곳에 아름다운 자흐당들이 있었던, 특히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공원들과 기구들이 있었던, 그때 알게 되었다. 프랑스가 선진국인 이유, 프랑스가 아름다운 이유, 프랑스는 어느 도시건 어느 시골이건 이토록 아름답구나. 어느 곳을 가도 아름답게 가꾸어져 있구나. 외려 파리는 진짜 프랑스 같지 않은 느낌이 있다. 시골을 선호하는 내게 프랑스의 시골은 내게 큰 위안이 되어주었다. 주말마다 시끌벅적한 파리 3구 중심을 떠나 RER과 버스를 번갈아 타며 파리 외곽 베르사유를 찾았고 베르사유궁전보단 그 주변 한적하고 아름다운 시골 마을, 시골 풍경을 벗삼아 산책하는 것이 내게 큰 낭만이자 일상이었다.
반추를 하더라도 이런 반추를 하면 이토록 참 행복해지는 것을. 내게 하등 도움되지 않은 지난 일들에 대한 후회, 아쉬움들로 가득한 것들을 반추하니 며칠간 이토록 호되게 우울을 겪은 것이 아닌가.하는 자각도 금세 인다.
우울이라는 폭풍우가 한바탕 지나가니 행복했던 시절들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그러면서 재정비가 된다. 노트북을 켜고 다시 키보드를 두드릴 생각도 나고 잠봉이 듬뿍 들어간 샌드위치가 먹고 싶고 커피도 마시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고 책도 읽고 싶고 옷도 새로 사고 싶고... 이렇듯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깨닫게 된 것, 삶에 거창한 의미는 없다. 그저 사는 것이다. 살아지는 것이다.
삶에 의미를 두면 둘수록 괴로움과 번뇌는 커진다.
그러니 세상사 인간사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거 없다는 것도 안다.
일하러 가기 전 도서관에 들러 고전 2권을 빌렸다.
책을 읽어내려가는 것만으로도 내겐 글쓰기와 같이 명상이 된다.
알아차림이 된다.
우울이 지나간 자리, 우당탕탕 한바탕 거센 폭풍우가 지나간 뒤,
침대밖을 나오면서 든 생각은, "음... 조금 괜찮아진 기분이네. 우선 잘 먹자.!"였다.
가장 먼저 생각난 게 잠봉과 치즈가 듬뿍 들어간 샌드위치였다.
후다닥 샌드위치 하나를 만들어 도라에몽 도시락통에 넣었다.
도라에몽이 마침 샌드위치를 앙하고 먹고 있는 모습인데,
므흣.나도 모르게 미소지으며, "그래 이렇게 사는 거지 뭐... 나는 어차피 죽는다. 즐겁게 살자!"
그렇게 집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