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바람에도 흔들리는 나
마음이 여리고 섬세하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의 에너지 수준에 따라 내 상태가 많이 좌지우지된다. 생각도 많은 편이라 후회와 반추가 일상이다. 불안도도 높아서 작은 자극에도 쉽게 흔들린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결코 녹록지 않다. 이런 나의 특성을 알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컨디션과 일, 대인관계를 조율한다. 딱 9년이다. 나를 다루게 될 수 있었던 시간이. 2017년도부터 현재 2025년까지 배우고 경험하기를 반복했다. 마인들 힐링 지도사과정 6개월, 원예 치료사과정 6개월, 명상심리상담 대학원 3년, 심리상담사 인턴 수련 1년 4개월, 교육분석(상담자가 받는 심리상담), 독서, 글쓰기, 힙합댄스, 대학로 연기 수업, 평생학습관과 사찰 강의, 사주명리학, 애니어그램, 휴먼디자인, MBTI, TCI(기질 및 성격검사), 명상, 간화선 등을 통해 나 자신을 배우게 되었다. 이 모든 것들은 전부 내가 원해서 했던 것들이다. 나를 도구삼아 배움과 실천을 해왔다.
과거 의상학과를 졸업하고 의류업체에 인턴으로 입사를 했을 때의 일이다. 같이 일했던 아르바이트 생이 나에게 월급 얼마를 받고 다니냐고 물어보길래 얘기를 했더니, 자기는 그것보다 더 받는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날더러 자기보다 적게 받는데 왜 다니냐고 했고 그 뒤로 난 출근하지 않았다. 입사 며칠 만에 퇴사를 한 것이다. 타인의 말이 내 안에 전부로 박혀서 자기 판단을 할 수 없었다. 그 회사를 들어가기 위해 내가 실제로 한 노력은 스스로 직업을 유지하기 위한 견딤안에 존재하지 않았다. 내 선택과 내 삶을 타인의 말 한마디에 놓아버린 거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동대문에서 디자이너 겸 생산공장 관리자로 10년 이상 근무를 했다. 그 시기는 마음이 너무 힘든 때였다. 왜 힘든지도 모른 채로 힘들어했다. 힘든 마음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몰랐고, 보살피는 법을 몰랐다. 내가 어떨 때 스트레스를 받고, 무얼 하면 좋아하고 충전이 되는지, 어떤 일의 방식이 나에게 맞는지 몰랐다. (그나마 일주일에 한 번씩 일요일에 사진 찍는 사람들과 만나 새로운 장소를 주기적으로 여행하며 수동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당시에 출사라도 다녔던 것이 미세하게라도 내가 원했던 걸 놓지 않고 실행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쩜 그렇게 나 자신에 대해 모르고 살았는지. 다시 돌아간다면 '나 사용설명서'나 '마음 다루는 법'을 만들어서 선물해 주고 싶다. 자기를 너무 몰라서 마음이 힘든 시기를 그냥 힘들어만 하면서 보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실바람은 풍력 계급으로 치면 1단계의 바람이다(보퍼트 풍력 계급은 0에서 12까지 총 13 단계가 있다. 0단계는 '고요'다. 숫자가 높을수록 바람이 세다). 풍향계가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가는 바람줄기가 솔솔 부는 바람이다. 나는 이런 바람에도 흔들린다. 더 심하게 말하면 실바람이 안 불어도 흔들린다. 혼자 생각 속에서도 흔들리니까.
사람은 약한 곳을 통해 성장한다는 글을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어느 부분이 아파서 보살펴 줘야 되면 그 부분 중심으로 삶이 돌아간다는 뜻이다. 나 역시 마음(자아)이 많이 취약했고 약한 부분을 어떻게든 데리고 살려다 보니 이런저런 방법들을 찾아 나서는 노력을 하게 된 것 같다. 살짝만 건드려도 상처가 날 것 같아서 어떻게든 덜 아프고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살길을 찾아 나선 거란 생각이 든다. 이것저것 해보니 입체적인 자기 앎이 생겼다. 9년 전과 지금 받아들이는 자극은 같지만, 이젠 자극과 만난 내 반응을 조절하거나 사전에 차단하는 방법들을 터득했고, 다른 것들도 계속 터득해 나가고 있다. 나 사용설명서를 점점 채워가는 중이다. 배우고 경험하고 알게 된 만큼 오늘은 살아가는 기술이 쌓인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유난히 취약한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을 중심으로 성장해 나갈 거라는 것을 믿으면 좋겠다. 너무 아파서 치료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처 난 곳에 자연스럽게 연고를 발라 밴드를 붙여주는 것처럼 말이다.
여전히 난 다른 사람의 의견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대신 그 의견이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며칠이 지나길 기다린다. 타인의 영향력이 내 안에서 사라지는 데 걸리는 시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지켜보다가 원치 않는 타인의 생각이 빠져나가는 데 일정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반대로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목표가 있으면 관련 책을 사 읽으며 동기부여를 받는다. 저자의 에너지가 내 안에 가득할 때 바로 실행한다(이건 내가 목표에 한 발짝 다가가는 방법이다. 실제로 도움을 많이 받았다. 효과가 바로 나온다). 필요한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같은 특성을 가지고 어느 때에는 영향받지 않도록 하고 또 다른 때에는 잘 발현되도록 나를 다루면 된다는 걸 터득했다. 나는 그대로이지만 상황을 조율하는 힘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