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꿈을 설계했을까

누군가의 꿈, 나의 꿈, 그리고 그 사이에서

by 빛영

외부에서 주어진 직업은 확실한 내면화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과정에서 자주 흔들리고 뜻하지 않는 좌절 앞에서 쉽게 지치고 포기하게 된다. 반면 내 안에서 스스로 생긴 꿈은 과정이 마무리 고되고 멀어도 포기되지 않는다. 좌절과 시행착오 속에서도 그 꿈은 마음 한켠에 고스란히 남아있어 계속 품고 있게 된다.




나 역시 그런 흔들림과 다짐 사이에서 여전히 헷갈리고 있다.

"상담사가 되세요."

"상담사가 되면 나 자신에게 좋아요. 나부터 바로 서야 상담사가 될 수 있으니까요."

스승님의 권유에서 시작된 상담사의 길. 처음엔 스승님의 말씀에 마음이 움직였고, 그다음엔 다른 분야 스승님의 '나에게 좋다'는 말 때문에 심리상담사라는 꿈을 점점 조금씩 내면화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생각과 가치를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었다. 한 국가대표 운동선수의 책에서 본 이야기처럼, 그렇게 직업을 내면화해 나만의 꿈으로 삼으려 애썼다. 한국상담심리학회 60주년 학술대회 때 원로와의 대담을 보고, 또 그날 상담사 1,2급 자격증 수여를 위해 모이신 선배 상담사 선생님들을 뵈면서 '나도 저분들처럼 멋지게 나이 들고 싶다'는 마음도 생겼다.


명상심리상담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전공서적과 친해졌다. 심리학적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심리학자들의 이론이 개개인의 삶에서 나온 것이란 걸 알게 되었고 공부하는 게 사람을 알고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 재미있었다. 전공서적과 친해지니 서점에 가서 관심 가는 책들도 찾아 읽게 되었다. 카페에서 몇 시간이고 책에 파묻혀 지내는 걸 수년을 했다. 필사도 해가면서 책 속에서 나를 울리는 문장들을 만났다. 그러다 '나도 글을 쓰고 싶다' '나도 책을 내고 싶다'라는 생각이 올라왔다. 꾸준히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글쓰기 챌린지에 참여를 했다. 책출간 강의를 찾아가 듣고 공동저서를 써서 대형 서점에 내 책이 놓인, 꿈을 이루는 경험도 해봤다.


상담사는 외부에서 직업을 나에게 전해준 느낌이 들었고, 작가는 내 안에서 떠올라 스스로 선택한 직업이라 여겨졌다. 두 가지 직업 모두 내가 치유의 현장을 내 발로 찾아가서, 서점에 직접 가서 인연이 닿은 것들이다. 상담사라는 직업은 그 길을 가고는 있지만 나에겐 너무나 먼 길이다. 닿을 듯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실현 가능성이 희미한 미래다. 작가는 공동저서를 냈지만 개인저서를 내는 것이 꿈인 나에게 '어떤 책을 나올까?'라는 생각으로 궁금한 미래다. 상담 수련을 받고, 내담자를 만났다. 글을 쓰고 책출간 기획서도 직접 써보며 컨설팅도 여러 번 받았다. 분명 나는 꿈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현실을 살고 있다.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내가 하는 것들은 모두 진짜다. 분명한 나의 노력이고 작은 성취들이 쌓이고 있다.


타인에 의해서든 스스로에 의해서든 되고 싶은 무언가가 생겼다. 그리고 그 무언가를 확실히 내 것으로 만들지는 못했다. 그런데 중요한 건 과정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실력 있는, 자격을 갖춘 전문상담사가 되는 것과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가 되는 것은 꿈의 종착역이다. 그곳까지 가는 길에 만나게 되는 것들이 본질이고 가치 있는 것들이다. 종착역은 목표로 세워놓은 목적지일 뿐이고 실제 마음을 기울여 누려야 할 것들은 그때그때의 경험에 있다. 스위스를 여행하는 것이 계획이라고 하면 우린 스위스라는 단어를 외는 게 목적이 아니다. 스위스라는 나라, 즉 땅을 밟고 생활하는 사람들, 그곳의 문화, 집, 음식 등등을 경험하면 스위스를 여행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처럼 꿈의 직업을 갖겠다고 말을 할 때는 이루는 과정에서 내가 얻게 되는 가치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본질은 거기에 있다. 내담자의 고민을 듣고, 같은 마음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한다.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 올바른 훈련을 받는다. 이런 태도는 삶의 대하고 일상을 대하는 자세와 다르지 않다. 책을 내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주제로 천착하는 연습을 매번 하게 되는데 이런 반복적인 패턴이 일상으로 옮겨지면 매 순간 집중하며 소중히 보내는 연습이 된다.

글을 쓰면서 배운 것 중 하나는, 저자가 자기 세계관에 확신을 가질 때 글의 힘이 생긴다는 점이었다. 훈련을 통해 저자로서 힘이 생기니 상담자의 자리에 앉았을 때 두려움이 사라지고 내담자를 대하는 올바른 태도를 갖출 수 있었다. 상담을 하면서 상담사가 되어 가기 위한 훈련을 받았고 내담자의 입장을 자꾸만 이해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었다. 이것은 글을 쓸 때 사람에 대한 이해와 자기 성찰적인 면이 풍부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모든 건 이어져 있다. 이걸 한다고 해서 저것과 멀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에 마음을 다하면 다른 하나에도 마음이 닿는다. 글쓰기와 상담, 상담과 글쓰기가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마음은 그 자체로 답을 알고 있고 힘이 있다고 한다. 생각이 끼어들지 않고 현재에 집중하고 있으면 마음은 지금에 가장 적절한 답을 알려준다. 지금 하는 일에 나를 온전히 맡기면 그다음은 저절로 펼쳐진다.)


나는 여전히 길을 찾는 중이다. 목적지를 향해 갈 때 지금 들어선 길에서 방향을 매번 다시 찾아야 하는 게 현실이다. 한 번에 잘 가겠지 하는 건 생각이고 상상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어디를 정해 놓았고 그곳으로 가는 길에 계속 다양한 스킬들이 쌓인다는 것이다. 지금 여기서 다른 상황을 맞닥뜨리고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게 당연하다. 나는 여전히 헷갈리고 여러 목적지 중 어느 곳은 잘 못 선택한 것일까? 하는 의문도 든다. 내 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가는 여정에서 얻게 되는 배움들은 헷갈리지 않는 진짜다. 그래서 그것만 보고 가려고 한다. 목적지는 중간에 수정하면 되니까. 누군가에게 주입당한 꿈일지라도 꿈을 이루어 가면서 경험하는 것들은 내가 하는 것이니까. 또 스스로 선택한 꿈도 있으니까. 여러 개가 뒤섞인 채로 걷다가 어느 것은 분명해지고 어느 것은 더 흐려질지라도 일단은 계속 시도를 해보기로, 계속 걸어가 보기로 했다.


한 분야에서 오랜 기간 실력을 쌓아 업적을 이룬 사람들이 책이 끌려서 구입하게 된다. 그들의 깊이가 좋고 저절로 마음이 간다. 배우, 운동선수, 감독, 음악가, 심리학자, 아마도 내가 갖지 못한 면이라 끌리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오랜 기간 터득한 애씀과 실력을 갈망한다. 거의 도를 닦는 수준으로 임하는 것도 알고 있다. 가장 가까이에는 부모님도 한 우물을 오래 파셨고 좋은 결과를 내는 것도 바로 옆에서 지켜봐 왔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와! 나는 사업은 정말 못하겠다'였다. 어떤 태도로 임해야 하는지 너무나 잘 알아서 그렇게는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겼다. 나는 그렇게 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 책은 깊이 있는 사람들이 쓴 책을 사서 보게 된다. 한 자리에서 오랜 기간 애쓰며 빛을 낸 이들처럼, 그런 모습들을 동경하면서 나는 또 다르게 나만의 길을 찾으려 한다. 모순 같지만, 어쩌면 그 모순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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