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에서 깨어남으로, 나로 피어나기
류시화 작가님의 책들(<시로 납치하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 보지 않는다> 등)을 읽고 나도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다.
명성을 얻고 있는 심리학자나 인문학자의 강의를 듣고 저절로 그들의 가르침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나는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게 아니었다.
그들을 통해 내 안에 무언가가 건드려진 것이었다.
글을 쓰고 싶었다.
내 생각과 감정들을 표현하며 소통하고 싶었다.
그리고 배움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그것을 나는 독서와 강연을 통해 발견했다.
외부의 자극에 의해 내면의 꿈틀거림이 시작되었다.
대학로에서 연기 수업을 받던 시기에 줄리아 캐머런의 <아티스트 웨이>를 읽었고
'하고 싶다'는 마음을 실천으로 옮기며
다양한 환경에 새로운 나를 던지고 있던 당시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만났다.
행동이 먼저였는지, 독서가 먼저였는지는 가물가물 하지만, 분명한 건 둘이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는 거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_헤르만 헤세 <데미안>
기존의 것들에서 벗어난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된 시점은 자아가 확장되는 시점과 닿아있다.
불안한 마음에 1급 상담사에게 개인심리상담을 10회기 받았고
분석심리학자 융도 어느 시점엔 내면(self)에 집중한 시기가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된다.
그때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왜 예상치 못한 길 위에 서게 되었는지.
당시에는 머리로 계산해서 알 수 없던 것들이
지금은 그저 내 삶이 나대로 흐른 것이라는
자연스러운 앎으로 다가온다.
주어진 환경에 순응해 살아왔다는 말이 아니다.
그보다는, 마음이 말하는 방향에 귀를 기울이며
내가 원하는 것들을 실현해 나갔고
그에 어울리는 사람들과 경험들이 나타났을 뿐이다.
그 시기에 내 앞에 나타난 작가, 심리학자, 인문학자들 모두
내 마음에 머물렀고, 변화에 귀 기울였기에 그 인연이 스며들 수 있었던 것 같다.
내 삶에 반드시 필요한 인연들이었음을
이제는 알겠다.
모든 여정은
나를 바로 보게 하기 위한
세상과의 소통이었다.
결국은 나로 귀결되는.
그래서
미처 스스로 보지 못한 걸 깨닫게 해주는
귀한 내면의 울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