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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와 찰리 Apr 15. 2020

[타미의 기력회복] 엎드려 취준하기

흔들리는 코로나 속에서 너의 백수 향이 느껴진거야

글, 사진 | 타미


나는 전형적인 한국 사회의 모범생 ‘출신’이다.

코로나19로 자유롭게 외출하지 못한 지 한 달이 훌쩍 넘었다. 할 수 있는 일이 한정적인 집 안에서 내가 즐겨하는 것은 클라우드 정주행이다. 10년 전부터 최근까지 약 100GB 분량의 수많은 사진과 저장되어있는 클라우드는 언제 보아도 새롭다.

학창 시절 사진을 보다가 그때의 내 모습을 떠올렸다. 10대의 나는 모범생이었다. 좋게 말해 말 잘 듣는 모범생이지, 시키는 것만 하는 바보였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 공교육은 좋은 대학 가기를 목표로 한다. 내가 읽는 책 한 권도 대학 가기 위한 스펙이 되고, 신문을 보는 것도 생활기록부에 한 줄 적기 위한 수단이다. 그 외 학교에서 시키는 스펙 관리와 선생님들의 통제 아래 수능과 내신 산출을 위한 공부를 했다.

당시 나는 나름대로 일탈도 즐기는 학생이라고 생각했다. 야자를 몰래 빠지고 친구 집에 놀러 가거나, 보충수업을 제치고 영화를 보러 간다거나. 일탈이라고 생각하며 마음 졸이던 그때를 생각하면 참 귀엽다. 그때의 나는 진짜 반항을 하려던 게 아니라 당장 내 눈 앞에 닥친 국어 혹은 영어 공부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대학생이 되었다. 교수님은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혼내지 않았고, 출석을 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으며, 공부하는 모습을 감시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성적을 잘 받으면 무조건 ‘좋은 대학교’에 간다고 보장되어있던 고등학생 때와 달리, 학점이 높다고 ‘좋은 기업’에 취직된다는 보장도 없었다. 아무도 나한테 기대하지 않으니까 내 멋대로 학점도 버려 가며 대학 생활을 열심히 즐겼다.

대망의 2019년 8월, 졸업을 했다. 막상 졸업이 가까워지니 무척 막막했다. 인생 첫 슬럼프가 오기도 했다. 뭐 하고 싶어서 우리 과에 왔냐고 물어보는 교수님도, 취업 준비에 한창이라 도서관에 살고 있다는 선배도 없어졌다. 아무도 나를 관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나는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의 의도치 않은 관리 안에 있었던 것이다.

당장 나에게 주어진 과제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은 의외로 꽤나 공허함을 주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대학교 졸업까지 23년 동안 한 번도 아무것도 안 했던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쉼 없이 달려온 나에게도 휴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8월에 졸업했으니까 4달만 놀아야겠다. 2019년까지만 ‘쌈빡하게’ 즐기자.

그리고 코로나가 찾아왔다.

백수 생활 8개월째, 계획했던 것보다 백수 생활이 길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금방 지나가겠지 싶었다. 시키는 대로만 곧잘 하던 내가 어떻게 스스로 취업을 준비해야 할지 걱정이었는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취준이 미뤄지니 역설적으로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더 불안해졌다.


집 안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만 있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지금처럼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그럼 나는 도태되고 말겠지. 언제고 부모님한테 용돈 받으며 살 수는 없지 않나.


결국 나는 언니와 신문 스터디를 시작했고, 포토샵도 배우고 있으며 (대학 전공 수업 시간에 상당히 자세하게 배웠는데 기억에 남는 게 하나도 없었다) 매일 집에서 운동하는 언니를 따라 간간이 몸을 움직여보기도 한다.

여전히 아무도 나에게 강요하거나 바라지 않지만, 이제 내가 나에 대한 기대와 신뢰를 가져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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