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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와 찰리 Apr 22. 2020

[무턱대고 취미활동] 박치도 기타를 칠 수 있을까요-上

못 먹어도 고, 삼세번 기타 도전기

글 | 미지


백수에겐 돈도 없고 가오*도 없다. 그럼 뭐가 있나? 시간이 있다. 아주 넘쳐흐른다. 예상치 못한 COVID-19의 확산으로 집 밖에도 나갈 수 없는 ‘진정한’ 백수다. ‘까짓것 제대로 한 번 쉬어보자.’ 직장인일 땐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도전해보지도 못 했던 것들을 시도해보려 한다. 누가 백수의 삶을 무미건조하고 지루하다고만 했던가. 취미로 가득한 미지의 컬러풀한 백수 라이프!


백수가 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기타 학원을 등록한 일이었다. 레슨 첫날 쭈뼛쭈뼛해하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선생님께 물었다.


박치도 기타를 칠 수 있을까요?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쉽진 않겠지만 꾸준히 하면 돼요”라고 대답했다. 선천적으로 음치, 박치를 타고난 내게 희망적인 말은 아니었지만 수강생을 잡기 위해 무조건 된다고 하는 상투적인 말이 아니었기에 믿음이 갔다.


사실 기타를 배운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중학생 때 아빠에게 한 번, 대학생 때 동아리에서 한 번 그리고 지금이 세 번째 도전이다. 처음 기타를 배우게 된 건 아빠가 대학 시절 쳤던 통기타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면서부터 시작됐다. 기타를 보고 추억에 잠긴 아빠는 이에 얽힌 진부한(?) 사랑 이야기를 내게 늘어놓았다. 이야기는 대략 엄마에게 잘 보이고 싶어 기타를 배우게 됐고 피나는 연습 끝에 그녀 앞에서 기타로 세레나데를 연주해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내용이었다.


알겠으니까. 그냥   쳐봐.”


나의 말 한마디에 추억 여행에서 강제 로그아웃 당한 아빠는 머쓱해하며 곧바로 가장 자신 있다던 김광석의 <일어나>를 노래와 함께 연주했다. 전에는 보지 못 한 아빠의 새로운 모습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악기를 다룰 줄 아는 모습이 조금 멋져 보이기까지 했다. 그날 바로 아빠에게 기타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호기롭게 시작한 아빠와의 기타 레슨은 결국 한 달도 못 가 중단돼 버렸다. 하나 배운 것이 있다면 공부와 악기는 부모에게(특히 아빠에게) 가르쳐 달라고 하면 안 되는 것들 중 하나라는 것. (성인이 돼서는 운전이 그렇다.) 나의 첫 기타 레슨은 그렇게 끝이 났다.


다시 기타를 배우게 된 건 대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였다. 교내외 동아리를 소개하는 동아리 홍보 주간에 즐비하게 늘어져 있는 부스들 사이로 ‘클래식 기타 동아리’가 눈에 들어왔다. 잊고 있었던 기타에 대한 열망이 다시금 꿈틀거렸다. 클래식 기타는 ‘연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보니 남들 앞에서 노래를 하지 않아도 돼 더욱 끌렸다. 곧바로 가입서에 이름을 적고 다음날 신입 회원 환영회에 참석했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이번에도 끝은 미약했다. 정확히 2옥타브 계이름까지 배우고 활동을 그만두었다. 여느 음악 동아리가 그러할 테지만 이 동아리를 계속했다가는 간과 쓸개가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다. 두 번째 기타 레슨이 허무하게 끝나자 나와 기타는 인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4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는 기타에 대한 열망과 옛 추억까지 기억하지 못 하게 됐다. 가끔 TV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가수들을 볼 때면 그들의 타고난 음악적 재능을 부러워할 뿐 직접 기타를 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사이 나는 취직을 했고 지난 1월, 1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 잠시 쉬며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 ‘잘하는 일’을 찾기 위해 결정한 퇴사였다. 하지만 막상 어떤 것부터 시작해야 될 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좋아하는 것부터 해보자 하는 마음에 그동안 미뤄 두었던 버킷리스트를 꺼내 보았다.

아이패드에 적어놓았던 ‘20대에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앱은 ‘Notebook’)


기타로 ‘캘리포니아 드림연주하기


이 황당무계한 버킷리스트를 보자마자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싶었다. 경거망동을 조심해야 한다는 엄마의 말이 떠올랐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늘 생각이 짧고 무모하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겐 ‘백수‘라는 히든카드가 생겼다. 그때의 열정을 되살려 마지막으로 도전해보기로 했다.


어쩌면 타고난 음치 유전자와 만성 박치 질환을 갖고 있는 내게 악기를 배우는 것 자체가 무모한 도전일지도 모른다. 중간에 ‘역시 나는 음악을 하면 안 돼!’라고 하며 또 포기할 수도 있다. 뭐 그러면 좀 어때. 백수에겐 하루하루 즐기는 것이 중요한데.

에반, 너는 기타를 아무렇게나 둘러메도 맵씨가 나는구나. (출처: 네이버 영화 <어거스트 러쉬>)


<어거스트 러쉬>의 에반처럼, <싱 스트리트>의 코너처럼, <코코>의 미구엘처럼 타고난 음악적 재능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 내겐 잘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음악으로 밥 벌어먹고 살라는 것도 아니니 그저 즐기는 수밖에. 그렇게 나의 세 번째 기타 레슨이 시작됐다.    



*가오: 일본어 kao顔 / 폼(form)을 속되게 이르는 말. 영화 <베테랑>의 대사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를 차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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