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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와 찰리 Apr 28. 2020

[사담쓰담] 젊음은 방탄조끼가 아닙니다

건강무새가 된 이유

글 | 찰리

“젊음은 코로나19를 피해 갈 수 있는 방탄조끼가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 19)의 팬데믹으로 전 세계 사망자가 속출했다. 위 말은 미국 스크립스 메모리얼 병원의 숀 에번스 박사가 1040 젊은 층에서도 사망자가 속출하자 LA타임스를 통해 전한 말이다. 우리나라도 정은경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이 “젊은 층의 경우 '사이토카인 폭풍'(Cytokine Storm, 예측 불가능한 중증도로 갈 수 있는 위험)이 올 수 있어 꼭 사회적 거리두기와 개인위생수칙을 준수할 것을 당부했다.*


나에게는 젊음 하나를 무기로 몸을 돌보지 않던 용감한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중 가장 기가 막힌 일화는 중학교 3학년 땐가, 여하튼 신종플루가 유행이던 약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는 신종플루로 결석하는 아이들이 한 반에 대 여섯 명씩은 있었다. 알코올성 손 세정제는 많이들 휴대했지만 딱히 마스크를 하고 등교하거나 이러진 않았던 것 같다. 내 동생은 큰 병원에 가서 확진을 받아 집에서 격리되고 있었고, 우리 삼 남매는 같은 방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그에게서 바이러스를 옮았던 것 같다. 머리가 불덩이처럼 뜨거워지고 식은땀이 줄줄 났지만 워낙 병치레가 없는 편이라도 일 년에 한두 번은 감기로 크게 앓았기 때문에 금방 지나갈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동생이 신종플루 검사를 할 때 젓가락만 한(아마도 과장이었겠지만) 면봉을 코에 쑤신다고 한 말이 겁이 나서 참으려 한 것도 있었다.


당연히 병원에 갔고, 다행히 동네 내과로 가서 진찰을 받았다. 아직도 내가 신종플루 확진자인지 아닌지 확실하지는 않은데 (면봉 쑤시는 검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신종플루 치료제로 사용하는 항바이러스제 타미플루를 처방받았다. 최근 다시 찾아보니 확진자와 접촉하고, 의심 증상이 있는 사람에게 타미플루를 처방했다고 한다. 그때 감기는 정말 역대급으로 기억에 남을 정도로 아팠다. 열이 너무 나서 정신이 흐릿해진 순간도 있었는데 그 어린 나이에도 “이렇게 죽나?”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타미플루는 1일 2회 5일간 먹는 것을 권장한다. 하지만 난 그렇게 죽을 고비(?)를 넘길 때 한 번 먹고 격리가 끝날 때까지 아예 먹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엽기적인데 어릴 때 나는 약을 먹지 않고 감기 등의 병을 이겨내는 것을 은근한 자랑으로 삼았다. 심지어 거의 꽉 차있는 타미플루 박스를 수능이 끝나고 서랍장 정리를 할 때까지 전리품처럼 가지고 있었다.


건강 보조식품에 대한 불신도 엄청났다. 고3 때는 기력 보충을 위해 엄마께서 홍삼이나 양파즙, 사과즙 등 각종 즙들, 멀티비타민을 권하셨는데 늘 가방에 다 넣어놓고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나눠줬다. 엄마, 덕분에 제 친구들이 보신 많이 했어요. 나는 이렇게나 건강한데 그런 걸 먹는 건 약간 자존심도 상하고 무엇보다 맛도 별로 없고.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5화에서 의사 아들 정원(유연석)은 엄마(김해숙)가 챙겨먹는 건강 보조제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엄마 저거 다 먹으면 약물 중독이야"

 

미국 의사의 “젊음은 코로나19의 방탄조끼가 아닙니다”라는 말을 듣자 패기 넘치고 엽기적인 내 십 대가 떠올랐다. 나는 지금도 새파랗게 젊지만, 2-3년 전부터 ‘건강무새’*로 태세를 전환했다.

*건강+앵무새,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사람을 속칭하는 말


규칙적인 생활과, 엄마가 직접 해주시는 집밥을 먹고 자란 나는 성인이 되자마자 낮과 밤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인스턴트, 레토르트 식품, 게다가 음주까지 즐기는 급격한 생활 패턴 변동을 겪었다. 내가 살던 곳에 비해 서울은 대기오염도 심했고, 덕분에 이십 대 초반에는 사춘기 때도 없었던 여드름으로 고생을 좀 했다. 이십 대 중반에 들어서는 생전 없던 생리통이 생겼고, 봄마다 알러지성 결막염이 찾아오는가 하면, 비염과 저혈압이 있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됐다.


일을 할 때는 스마트폰+컴퓨터 화면 콤보로 눈은 거의 매일 충혈되어 있었다. 안구건조증에 난시까지 있어서 블루라이트 차단이 되는 안경과 인공눈물은 가방 속 필수품이 되어버렸다. 회사에서는 먹고 앉고, 귀가하면 먹고 눕고를 반복하던 생활은 나를 복부비만과 거북목으로 만들었고, 지난 1월 내 인생 최고 몸무게를 달성했다.


  통뼈의 자존심을 지켜야겠다

이십 대 후반의 나는 조금만 아파도 바로 병원, 약국으로 달려간다. 매일 프로바이오틱스, 루테인, 멀티비타민을 챙겨 먹는다. 일을 관두자마자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됐고, 칩거 생활은 인생 최고 몸무게를 만들었다. 몸무게 좀 나가는 게 무슨 대수냐 싶지만, 무릎이나 허리가 아프기 시작하니 도통 무시할 수가 없었다. 매일 팔 굽혀 펴기, 플랭크 등 가벼운 맨몸 운동을 한 시간 씩 하고 있다. 지금 두 달이 지났는데, 몸무게엔 별 차이가 없지만 다행히 무릎은 더 이상 아프지 않다. 지인에게 선물할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건강보조식품부터 찾아본다. 홍삼, 석류, 오메가 3, 비타민, 견과류 등등. 연락 시작과 말미에는 항상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건강하고, 아프지 말자”라고.

 

코로나19는 다음 계절에 다시 유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바이러스의 완전 종식이 없듯이 젊음도 영원한 방패막이 아니다. 건강을 챙기는 것에도 비용과 노력이 드는 시대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몸도 마음도 아프지 않기를 바란다.


*"젊음은 코로나 방탄조끼 아니다"…1040 잇단 사망, 머니투데이, 20.04.07, 이재은기자

** 사진| tvN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5화, 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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