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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와 찰리 May 30. 2020

[균형을 찾아서] 실례지만, MBTI가 어떻게 되세요?

MBTI 과몰입이 위험한 이유

글 | 미지


“성격이 급한 편이시죠?” 나의 기타 연주를 가만히 보고 계시던 기타 학원 선생님께서 단호한 어조로 내게 물었을 때 나는 그만 당황해 버리고 말았다. 급한 성격 탓에 직장과 인간관계에서 실수해본 경험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꽁꽁 숨겨두었던 성격 중 하나였는데 선생님은 레슨을 시작한 지 7번 만에 나를 꿰뚫어 보셨다.


사실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성격이 느긋하고 꼼꼼한 편인 줄 알았다. 대학교에 입학해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1년 간의 짧지만 강렬했던 사회 경험을 해보니 오히려 그 반대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밖에도 경험을 통해 나도 몰랐던 나의 여러 성격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세 번의 해외여행과 다수의 국내 여행을 통해 내가 계획적이기보다는 즉흥적이며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빠르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동안 했던 여러 가지 ‘덕질’을 돌아보니 진득하게 한 가지 주제를 파기보다는 새로운 것에 더 끌리고 호기심이 강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도 모르는 내 성격을 알려준다고?

나는 무엇이든 경험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사람이다. 의심도 많아서 내가 직접 겪지 않은 일이라면 잘 믿지도 않는다. 당연히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혈액형별 심리테스트’나 ‘별자리 운세’, ‘사주풀이’와 같은 간단한 검사들도 궁금해서 해보긴 했으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 동기 중 한 명이 “대박이다. 정말 소름 돋는다”라며 ‘MBTI’라는 걸 내게 알려줬다.

나의 MBTI 유형 ‘재기발랄한 활동가’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는 개발자인 마이어스(Myers)와 브릭스(Briggs)가 스위스의 정신분석학자 카를 융(Carl Jung)의 심리 유형론에 근거하여 개발한 성격 유형 검사 도구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개발된 MBTI는 오늘날 기업체나 학교에서 채용 및 진로 선택을 위한 인성검사 과목으로 활용되고 있다.


MBTI를 처음 접했을 때 사실 조금 놀랐다. 다른 성격 검사들과 달리 체계적으로 내 성격을 ‘분석’해 놨기 때문이다. 검사를 시작하기 전 메인 화면에 “검사가 너무 정확해 살짝 소름이 돋을 정도”라고 적혀 있었는데, 결과를 받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MBTI는 사람의 성격을 4가지 선호 지표에 따라 16가지로 분류한다. 우선 4종류의 선호 지표는 에너지 방향에 따라 외향성(Extraversion)과 내향성(Introversion), 인식 기능에 따라 감각형(Sensing)과 직관형(iNtuition), 판단 기능에 따라 사고형(Thinking)과 감정형(Feeling), 생활양식에 따라 판단형(Judging)과 인식형(Perceiving)으로 나눠진다. 총 93개의 문항에 답한 사람들은 각 선호 지표 중 상대적으로 높은 유형들을 하나씩 조합한 독립된 성격 유형을 부여받는다. 예컨대 나는 검사 결과가 ‘ENFP’가 나왔는데, 이는 외향성(E)-직관형(N)-감정형(F)-인식형(P)의 선호 지표가 높게 나타난 유형이 되겠다.

MBTI 검사하러 가기

(이미지 출처 구글)


‘재기발랄한 활동가’라고도 불리는 ENFP(스파크형) 유형은 “열성적이고 창의적이며, 풍부한 에너지를 가지고 순발력 있게 일을 재빨리 해결하는 솔선수범력과 상상력이 있다. 관심이 있는 일이면 무엇이든 척척 해내는 열성파”라고 한다. 반면 “반복되는 일상을 견디지 못해 하는 경향이 있다. 영감과 통찰력과 창의력이 요구되지 않는 일상적이고 세부적인 일에는 도무지 흥미와 열성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한다. ENFP 유형의 유명인 중에는 아이언맨으로 유명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지니의 인간화 윌 스미스, 글로벌 아이돌 BTS의 RM이 있다.


MZ세대의 ‘사주풀이  MBTI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한 물리적(사회적) 거리두기로 집 밖에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MBTI가 인기를 끌게 되었고, 이를 활용한 유튜브 콘텐츠들이 많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10대~30대 MZ세대(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아울러 일컫는 말)에게 인기가 많은데, 이 두 세대의 특징 중에는 ‘나’를 알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는 것이 있다. 또 MBTI는 사주나 타로카드처럼 멀리 찾아가지 않아도 집에서 12분만 투자하면 검사 결과를 받아 볼 수 있다. 거기에 비용까지 무료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MBTI의 가장 재밌는 점은 같은 유형의 사람들끼리 끈끈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MBTI 관련 유튜브 영상만 봐도 같은 유형의 MBTI들끼리 서로 대댓글을 써가며 공감을 외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 역시 유튜브나 다른 SNS에서 ENFP와 관련된 콘텐츠가 보이면 주저 없이 클릭을 한다. 최근에는 일부 연예계 소속사에서 소속 가수들의 MBTI 결과를 보여주며 팬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고, 방송에서도 이를 활용해 흥미를 끌고 있다.        

작은 자기님 저와 같은 ENFP이시군요. (출처 <유퀴즈온더블럭> 캡처)


뭐든지 과하면 문제가 생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는 어떤 두 가지에 과몰입해 현실과 이상 사이를 허우적대고 있었다. (어떤 것에 갑자기 빠졌다가 금방 식는 것도 ENFP 유형의 성격 중 하나라던데…) 그중 하나가 MBTI이고, 다른 하나는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이다. <부부의 세계>는 매일같이 답답함에 가슴을 치며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하는 마음으로 봤다.


MBTI는 자기소개서를 쓰는 과정에서 참고하기 위해 다시 한번 검사를 하게 됐는데, 관련된 유튜브 콘텐츠가 너무 재밌어서 알고리즘을 통해 추천받은 ENFP 관련 영상을 모두 본 것 같다. MBTI에 빠져 있는 동안 “MBTI는 과학이다”라는 말을 외치고 다니기까지 했다. 내가 MBTI 과몰입에서 빠져나오게 된 계기가 몇 개 있다. 하나는 다른 사람들의 MBTI를 미친듯이 알고 싶어져 버린 것.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인사처럼 그들의 MBTI를 물어보았고, 그 자리에서 ‘MBTI 궁합’을 검색해 나와 그들이 얼마나 잘 맞는 성격인지 확인했다. 또 어떤 날에는 나도 모르게 나의 MBTI 유형의 성격에 맞춰 예전에는 하지 않았을 법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어느새 나는 완벽한 ENFP 유형의 사람이 돼버렸고, 모든 인간관계를 MBTI에 대입해 생각하고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너 자신을 알라.” 그의 MBTI는 무엇일...아차차! (사진 출처: 구글)


과하면 아닌 것만 못하다. MBTI에 미쳐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정말 ‘살짝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불과 며칠 전의 나와 같이 MBTI에 과몰입해 있는 사람들을 보면 말해 주고 싶다. “MBTI는 그저 재미로만 보자.” 실제로 MBTI를 만든 마이어스와 브릭스는 심리학에 대한 정식 교육을 받지 않은 미국인들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MBTI 과몰입자들이 많아졌는지 한계를 지적하는 기사들도 자주 나오고 있다. 애초에 인간의 성격을 단 16가지로 분류한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않는가.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고유한 성격이 있고 관계를 맺는 법도 다양하다. 기어코 성격을 정의 내리고 싶다면 MBTI 결과가 아닌 지난날을 돌아보며 ‘나만의’ 성격에 대해 고찰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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