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백수의 체력단련
글 | 미지
“너 올해 철인 3종 경기 나간다고 하지 않았어?” 퇴사 후 방바닥에서 붙어 지내던 내게 엄마는 놀림조로 물었다. 나는 보고 있던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며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내가?”라고 되물었다.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분명 내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철인 3종 경기 출전은 작년 초 세웠던 목표였으나 직장을 다니면서 까맣게 잊어버리게 됐고, 퇴사 후에는 운동은커녕 누워 지내는 날이 많았다. 가끔 산책을 하는 날이면 조금만 빠르게 걸어도 숨이 찼다. 철인 3종 경기고 나발이고 간에 회사생활로 인해 만신창이가 된 육체를 돌봐야만 했다.
혼자하는 것보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하고 집 근처 복싱장, 수영장과 같은 운동 센터를 알아봤다.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정말 늦은 것이었을까. 고민하던 중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퍼져버리고 말았다.
모든 운동 센터가 임시 휴업 또는 문을 닫았다. ‘운동을 하지 말라는 신의 계시인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늘어지는 살들과 조금만 뛰어도 헥헥거리는 몸뚱이를 보고 있자니 운동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혼자 꾸준히 할 수 있는 쉬운 운동이 필요했고, 나는 ‘달리기’를 생각해 냈다. 앞으로의 건강한 와식(臥食) 생활을 위해 무작정 달려보기로 했다.
아침 vs 저녁, 나에게 맞는 운동 시간대는?
코로나19로 인해 실내 체육관 운동은 깔끔하게 포기하고 대신 동네 하천길을 달리기로 결정했다. 다음은 어느 시간대에 달릴 것인지를 정해야 했다. 나에게 맞는 적절한 시간대를 모르니 우선 둘 다 해보기로 했다.
운동을 ‘언제’ 하느냐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특히 질환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운동 시간대에 따라 사망 위험이 높아질 수 있어 본인에게 맞는 운동 시간대를 골라야 한다. 천식, 류머티즘 관절염, 허리디스크, 고혈압 및 저혈압 등의 질환이 있다면 아침 운동은 피하는 것이 좋다. 자고 일어난 직후 운동을 하게 되면 혈압에 무리를 줄 수 있고, 근육 경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반대로 우울증이나 불면증을 겪고 있는 사람이라면 햇빛을 볼 수 있는 아침 운동이 좋다.
51일(2월 10일~3월 31일) 동안은 저녁에, 41일(4월 1일부터 5월 11일) 동안은 아침에 30분 동안 달렸다. 미리 말하자면, 내 경우는 아침 운동보다 저녁 운동이 맞았다.
처음에는 밤 9시부터 40분 동안 하천길을 달렸는데, 달리는 시간보다 걷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5분도 채 달리지 못하고 멈춰 서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달리다가 다리가 꼬이는 일도 많았고 숨이 너무 차서 얼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처음 일주일은 달리는 둥 마는 둥 하다가 2주 차가 되니 호흡이 조금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5분 이상은 달리지 못했다. 3주 차에는 신기하게도 전날 뛰었던 것보다 오늘이 덜 힘들게 느껴졌다. 이전에는 매일매일이 똑같이 힘들었다면 3주 차부터는 확실히 폐활량이 늘어난 느낌이었다. 그 후로 꾸준히 달리다 보니 쉬지 않고 달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져 갔다. 한 달째 되던 날은 10분 정도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었고 51일째 되던 날은 아주 천천히이긴 하지만 20분을 계속 달리기도 했다.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거나 비 오는 날을 제외하고 빠짐없이 하천에 출석 도장을 찍었다. 운동이 정말 하기 싫은 날엔 뛰는 대신 걷기라도 했다. 계획한 건 아니지만 저녁 달리기를 하는 51일 동안 체중이 1.5kg 정도 감량됐다. 달리기 후 근력 운동까지 해주니 체력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4월부터는 시간을 바꿔 아침 7시부터 30분간 공복으로 달렸다. 아침 달리기 첫날, 바로 전날 밤에 20분 정도 달렸으니 시간대가 바뀌었더라도 비슷하게는 달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정확히 5분 달리고 멈추고 말았다. 태울 칼로리가 없어서 그런지 조금만 달려도 힘이 들었고 조금 어지럽기까지 했다. 빈혈, 고ㆍ저혈압, 디스크 등과 같은 지병이 없는데도 밤에 운동하는 것보다 확실히 더 힘들었다. 다음날부터는 달리기 전에 5분 동안 빠르게 걷기부터 했다. 그 후 오래 달리는 시간은 처음보다 많이 늘었지만 저녁 달리기 만큼은 아니었다. 꾸준히 달려도 20분을 쉬지 않고 달리는 데엔 무리가 있었다. 41일 동안 아침 달리기를 한 결과 아침을 더 많이 먹는데도 불구하고 체중이 1.8kg 감량됐다.
92일 동안 달리기를 한 후 각각의 장점과 단점을 정리해보았다. 먼저 저녁 달리기는 체력을 강화하는데 효과적이었다. 오래 달리는 시간을 점점 늘려가는 재미도 있었고, 한 번 마시고 내쉬는 숨의 양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또 운동 후 밤에 잠을 더 깊게 잘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평소보다 쉬웠다. 반면 운동하러 나가기까지가 조금 힘들었다. 하루를 마치는 시간에 운동하러 나가려니 더 많은 운동 의지를 다져야만 했다. 그래서 아침보다 저녁에 운동하기 싫은 날이 많았다.
다음으로 아침 달리기의 가장 좋은 점은 하루를 조금 더 일찍 활기차게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달리니 기분까지 좋아졌다. 덕분에 아침밥이 꿀맛 같았다. 하지만 정말 힘들다. 내 경우에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물 한 잔만 마시고 공복에 달렸는데 조금만 달려도 숨이 가빠왔다. 또 알레르기성 비염을 앓고 있어 아침만 되면 흐르는 콧물 때문에 달리는데 조금 불편함을 느꼈다.
달라진 건 내 ‘삶’이었다
약 세 달 동안 달리기를 한 후 나의 체력은 몰라볼 정도로 좋아졌다. 최근에는 주말마다 집 근처에 있는 왕복 1시간 코스 뒷동산도 다니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변화도 있었다. 체중이 총 3.3kg가 감량돼 사이즈가 조금 줄었고 얼굴에 있던 여드름이 감쪽 같이 사라졌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불규칙적인 생활 패턴을 고칠 수 있었다는 것. 아무리 노력해도 고쳐지지 않았던 불규칙적인 식습관과 수면시간—이것들은 직장인 때부터 시작돼 내 건강을 망치고 있었다—이 완벽하진 않지만 분명 개선됐다. 이를 증명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건강한 배변활동이다. 회사를 다닐 때는 끔찍한 변비에 시달렸었다. 지금은 신기하게도 정해진 시간에 신호(?)가 온다. 달리기에도 재미를 붙여 철인 3종 경기는 아니더라도 하프 마라톤이나 러닝크루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코로나19가 종식되면 꼭 참가하고 싶다.
백수가 된 지 5개월을 넘기고 있는 지금, 코로나19는 아직 가시지 않았고 여전히 야외 활동에 제한이 많다. 퇴사 전에 계획했던 여행과 몇 개의 투두 리스트(to-do list)를 포기할 수밖에 없어 탓할 수도 없는 바이러스를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평한다고 별 수가 있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법. 제한된 영역에서 나만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매일 조금씩 움직이는 수밖에.
*참고 기사
<헬스조선> “천식 있다면 저녁, 우울증엔 아침 운동이 좋아요” (https://n.news.naver.com/article/346/00000278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