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는 영화들
글 | 찰리
흔히 가깝다 멀어진 관계를 '남보다 못한 사이'라고 말하고, 아주 가까운 관계를 '가족 같은 사이'라고 말한다. 남과 가족, 두 단어는 마치 반대말처럼 쓰인다. 가족을 미워해본 적이 있는가? 왠지 묻지 말아야 할 것을 물어본 기분이다. 난 있다. 미워하고, 그 마음에 죄스럽고, 다시 미워하고, 또 뉘우치는 일을 반복하며 산다. 남을 미워해본 적은 있는가? 아주 많지만 그 죄책감은 피를 나눈 가족을 미워했을 때에 비교하면 댈 수도 없이 작은 감정이다.
어릴 때부터 가족 간의 유대감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에 불만이 있던 나는 종종 "가족도 남이지"라는 말로 가족들에게 상처 아닌 상처를 주었다. 굳이 대놓고 입밖에 꺼낼 말은 아니라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여전히 가족도 남이라고 생각한다. 가족'은' 남인 게 아니라 가족'도' 남이다.
우리는 아주 친한 사람보다 낯선 사람에게 친절할 때가 있다. 처음 만난 사람이니 예의를 지키는 것이다. 처음 만난 사람, 잘 모르는 사람, 그러니까 '남'에게는 우리가 예의를 지킨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족 같다'는 친밀의 단어는 어느 순간부터 '가, 족같다'는 조롱의 의미로 종종 사용된다. 왜 그런 일이 생겼을까.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는 유명한 말이 있다. 예의를 차리는 것은 친한 사이에서 불필요하게 느껴지고, 편해진 사이에서 섬세하게 감정을 신경 쓰는 게 귀찮기도 하다. 이 정도 이해하잖아, 나 알잖아?
우리 관계에서 거리감이 느껴져.
거리감은 부정적인 단어 같지만 난 관계에 있어 꼭 필요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일례로 자취 6년 차인 나는 자취를 하면서 부모님과 사이가 좋아졌고, 동생이 군대에 간 후 더 애틋해졌다. 가족'도' 남이라는 내 말은, 우리는 건강한 거리를 가지고 인간 대 인간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다. 가족 역시 긴밀한 대화 없이 서로를 알 수 없고, 선을 넘는 말과 행동은 깊은 상처를 남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했다.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들을 함께 보자.
*아래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메리다와 마법의 숲>(2012)
=가깝지만 먼 사이, '모녀'
부스스한 머리, 꾀죄죄한 옷을 입은 메리다는 활 쏘는 것을 좋아하는 장난꾸러기이다. '공주답지 못한' 메리다의 태도에 엄마이자 왕비인 엘리노어는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고치려고 한다. 전통적인 질서를 지키려 하는 엄마 엘리노어가 답답하고 싫은 딸 메리다는 마녀를 찾아가 엄마를 변하게 해달라고 한다. 하지만 엘리노어는 메리다의 바람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버리고 메리다는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엄마와 모험을 떠난다.
디즈니, 픽사의 많은 영화를 사랑하지만 난 이보다 공감한 가족 이야기는 없었다. 우리네 어머니는 <겨울왕국>의 이두나 왕비처럼 자애롭지만은 않다. 모녀 관계는 그야말로 '애증'이다. 딸들은 엄마와 다투고, 화해하고, 그 과정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면서 성장한다.
함께 보기 | <아이 킬드 마이 마더>(2009)
"나는 누군가의 아들일 수는 있지만 엄마의 아들이긴 싫다" 변함없이 나를 사랑하는,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미성년>(2018)
=나이만 먹으면 모두 어른?
같은 학교 친구 엄마가 우리 아빠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면? 아빠 대원의 외도를 알아챈 열여덟 주리는 엄마 영주가 이 사실을 알기 전에 몰래 수습하려 한다. 하지만 대원의 내연녀 미희의 딸, 동급생 윤아가 영주의 전화를 가로채 아빠의 바람 사실을 폭로해버린다. 설상가상으로 미희는 임신까지 한 상황. 문제의 시발점인 대원은 대책도 없다. 영화는 어른들이 만들어낸 문제를 고등학생인 주리와 윤아가 고민하게 만들면서 진짜 '미성년'은 누구인지 질문을 던진다. 아르바이트 하나도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해야 하는 미성년자 주리와 윤아가 고군분투하는 와중에도 대책 없이 쓸데없는 짓만 하는 대원을 보면서 나이를 먹는다고, 아이를 낳는다고 모두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영제는 'Another Child'(또 다른 아이).
함께 보기 | <어느 가족>(2018)
좀도둑질로 생계를 유지하는 어느 가족이 있다. 생필품뿐만이 아니라 아이들을 포함해 가족 구성원까지 모두 도둑질로 이뤄진 가족이다. 갖은 범법행위로 병든 관계지만 서로는 애틋하기 그지없다. 약자를 지켜주지 못하는 시스템 속에서 만들어진 남보다 못한 가족과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남, '어느 가족'의 이야기이다. 가족과 남, 도덕과 부도덕의 경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원제는 '좀도둑 가족'.
<결혼 이야기>(2019)
=알다가도 모르겠는 '부부의 세계'
잘 나가던 십 대 배우 니콜은 뉴욕에서 성공가도를 달리는 뮤지컬 감독 찰리를 만나 결혼해 뮤지컬 배우로 활동한다. 자꾸 엇나가는 관계에 니콜과 찰리는 결혼 생활을 정리하기로 하지만 아들이 있어 이혼 후에도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처음엔 변호사 없이 깔끔하게 헤어지기로 했지만, 친구의 제안으로 니콜이 가정 변호사 노라를 만나면서 찰리와 법정에서 양육권 다툼을 하게 된다. 이혼 소송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악평을 퍼붓고, 불리한 점을 찾아내기 위해 정성을 다하면서 관계는 점점 틀어진다.
두 사람이 사랑했던 것은 맞다. 조정 단계에서 서로에 대한 장점을 그렇게 많이 썼던 둘이었는데. 알다가도 모르겠는, 미혼자는 감히 감도 안 잡히는, 엮인 후에는 무 자르듯이 깔끔하게 잘라낼 수도 없는 복잡한 이놈의 '결혼의 세계'.
커버 사진 | tvn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 4회 장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