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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와 찰리 Jun 24. 2020

[균형을 찾아서] 몸은 바쁘지만 마음은 쉬고 있습니다

퇴사 후 6개월의 기록, 바쁘게 쉬기

글 | 미지


쉬면서 하고 싶은 일을 찾자.’ 이 애매하고도 무모해 보이는 한 줄이 나의 퇴사 이유였다. 올해, 1년 1개월 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6개월이 지났다. 반년이라는 시간은 한 분야를 깊게 공부하기엔 매우 짧고 몸을 만들기엔 꽤 넉넉한 시간이었다. 지금이야말로 나의 퇴사 라이프를 돌아보는 중간점검의 적기라고 생각된다. 혹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에게도 이 글이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다.


나는 올해 1월 퇴사를 했고 지금은 백수 6개월 차다. 애초에 세웠던 퇴사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조건을 충족시켜야 했다. 첫째는 ‘쉬는 것’ 둘째는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 하지만 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두 가지 조건이 동시에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쉬면서 ‘일’을 찾는 것은 더 이상 쉬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 나는 멀티태스킹엔 아주 취약했다. 두 가지를 완벽하게 하기 위해서는 기간을 정해 하나씩 해결하는 방법 밖엔 없었다.


나는 일단 무작정 쉬기로 했다. 퇴사 후 2주 동안은 기타 레슨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땐 곧바로 누워 잠을 잤다. 바닥과 한 몸이 되어 보내는 하루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휴식일 줄 알았다. 하지만 금세 지겨워졌고 쉬는 게 쉬는 것 같지 않았다. 몸은 더 피곤했고 마음까지 불안했다. 그토록 꿈꿔왔던 퇴사인데 어느 날은 ‘괜히 퇴사를 했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자신감을 되찾기 위해 무작정 제주도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난생처음 혼자 여행길에 오른 날이었다. 눈 덮인 한라산을 오르니 다시 삶의 의지가 불탔다. 이제야 제대로 된 퇴사 라이프를 즐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난 1월에 다녀온 한라산. 눈 쌓인 백록담은 아무도 발을 디디지 않은 새로운 행성 같았다.


얼마 후 나의 행복한 퇴사 라이프에 예상치 못한 불청객이 찾아왔다. 전 세계의 불청객, 코로나 바이러스다. 하지만 나는 좌절하지 않았다. 아니 무릎을 꿇을 뻔했지만 이내 다시 털고 일어났다. 왜냐하면 나는 한라산을 완등하고 온 사람이었으니까.(그 후에도 한라산 ‘버프(Buff)’는 꽤 오래 지속되었다.) 다시 한번 작년에 쓴 버킷리스트를 열어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한라산 등산으로 꺼져가던 열정에 기름을 부었으니 이제 죽어가던 하드웨어를 되살릴 차례였다. 나는 곧바로 운동을 시작한다. (코로나 시대, 백수가 체력 단련하는 이야기 보러 가기​)


2월에 시작한 달리기가 벌써 4개월째다. 체력은 물론 정신까지 맑아졌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자책하지 않았다. 나는 조금씩 천천히 삶의 균형을 잡아가고 있었다. 곧바로 그동안 미루어왔던 공부와 취미 생활을 시작했다. 기타를 더 열심히 배웠고, 전직 유치원 영어 선생님이었던 엄마와 함께 영어 회화 공부를 시작했다. 2월 말에는 작은 신문사에서 일했던 경험을 살려 KBS한국어능력시험을 치렀으며 틈틈이 그림도 그렸다. 지금은 6월 27일에 있을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위해 공부를 하고 있다.       


퇴사 후 처음 2주를 제외하고 나머지 기간은 나름대로 열심히 몸을 움직였다. 잘 쉬기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처음 2주 동안과 비교해봤을 때 지금은 몸도 마음도 훨씬 건강해졌다. ‘역시 산만한 사람은 잘 쉬지도 못하는 건가’라고 나름의 결론을 내리던 차에 한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생각을 바꾸게 된다. 그 프로그램은 평소에는 잘 챙겨보지 않다가 몇몇의 특정 게스트가 나오면 본방 사수하는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였다. (내가 편애하는 특정 게스트는 손담비와 장도연 그리고 경수진이다.)


그날은 게스트로 배우 경수진이 나왔다. 그는 이전에도 몇 번 출연한 적 있는 ‘무지개 회원(이 프로그램에서는 게스트를 이렇게 부른다)’이었다. 이번 화에서는 촬영이 없는 날 경수진의 쉬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그의 휴식은 조금 특별했다. 한 시라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테라스에서 직접 텐트를 치는 것부터 시작해 갖은 캠핑 장비를 꺼내 도심 속에서 여유로이 캠핑을 즐겼다. 특별한 날에나 먹을 것 같은 밀푀유나베를 혼자 만들어 먹고, 치우기 귀찮아서 잘해 먹지 않는 조개 구이까지 후딱 해치웠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는 잠시 햇살과 바람을 즐기는가 싶더니 다시 나무토막을 꺼내 능숙하게 우드 카빙을 시작했다. 그의 이런 모습을 스튜디오에서 VCR로 보고 있던 MC 박나래와 다른 게스트들은 “제발 좀 가만히 앉아 쉬라”고 애원하듯 말했다. 여기에 대답이라도 하듯 다음 화면에서 제작진과 인터뷰하던 경수진은 이렇게 말했다. “몸이 바쁜 거지 마음은 쉬고 있었다”라고. 그는 자신만의 방법대로 잘 쉬고 있었던 것이다.

‘나 혼자 산다’ 배우 경수진 편 캡처

그 말을 듣고 나는 휴식의 정의를 다시 내리게 됐다. 가만히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누군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휴식이겠지만, 몸을 바삐 움직이며 마음을 비우는 것도 휴식이겠구나 하고. 지난 6개월 동안 나는 꽤 괜찮게 쉬었다. 달리기를 하며 체력을 기르고, 취미 생활을 하며 잡생각을 버렸다. 동네 산책을 하며 일상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됐고, 우울감이 생길 때마다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며 해소시켰다. 이 모든 움직임이 몸은 물론 마음에도 단단한 근육을 심어주었다. 퇴사 이유이자 목표였던 ‘쉬면서 하고 싶은 일을 찾자’ 중에서 ‘쉬면서’를 만족스럽게 달성한 것 같았다. 이제 다음 목표를 이룰 차례다. 지난 6개월 동안 길렀던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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