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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와 찰리 Jun 17. 2020

[타미의 기력회복] 마스크 밖의 세상

취준생의 리틀 포레스트

글, 사진 | 타미


나는 대학 동기들과 자주 만나는 편이다. 대학생 때부터 몰려다니며 놀던 게 습관이 돼서 모두가 졸업을 한 후에도 꾸준히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모임을 가진다. 즉흥 번개 모임은 보너스다.


나를 포함한 모두 아직 취준생이다. 그래서 그들도 나처럼 코로나 19 사태 이후로 집에서 ‘자발적' 자가 격리를 하는 중이었다. 다 똑같이 할 일도 없고, 답답하고, 심심한데 그렇다고 거리두기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누가 먼저 선뜻 만나자고 할 수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가 말했다. 할머니 텃밭이 시골에 있는데 주변에 아무도 안 산다고, 할머니께서 친구들이랑 놀고 싶으면 차라리 거기서 놀고먹고 하라고 하셨다고 말이다.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일사천리로 날짜를 정했고 이왕 가는 김에 2박은 해야 되지 않겠냐는 의견에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시골집까지는 친구 부모님께서 차를 태워다 주셨다. 주변에 슈퍼나 상가는커녕 친구의 말대로 전방 200m 안에 다른 집도 없는 진짜 시골이었다.

들어가는 길이 무려 '오프로드(off-road)'였다.

도착하자마자 일제히 마스크를 벗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해방감이었다. 서울과 달리 공기도 아주 맑아서 상쾌함이 배로 느껴졌다.


취준생의 집콕이 위험한 가장 큰 이유는 생각하는 시간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생각에 깊이 빠질수록 나는 왜 취직이 안 될까, 혹시 내가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닐까, 결국 자존감을 깎아먹는 결론에 도달하고 만다. 특히 나와 친구들은 주로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 자취생들이라 모두 같은 어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틀 동안 맑은 공기를 마시며 아무 생각 없이 놀고먹으면서 코로나 19로부터, 그리고 취준으로부터 잠시 벗어날 수 있어 더 큰 자유를 느꼈던 것 같다.


우리는 2박 3일 동안 핸드폰도 거의 보지 않고, 문명과 떨어져 자급자족 라이프를 즐겼다. 마스크 없는 자유로운 생활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타기 위해 다시 친구들이 하나둘씩 마스크를 꺼내 쓰는 것을 보며 잊고 있던 마스크를 가방에서 꺼냈다.


마치 꿈에서 깬 기분이었다. 몇 달 동안 외출 시 잊지 않고 꼭 하고 다니던 마스크를 단지 3일 안 하고 있었을 뿐인데도 답답했다. 불과 네 달 전까지만 해도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 그것도 내킬 때만 마스크를 쓰고 다녔는데 그때가 얼마나 자유롭고 행복했는지,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어느새 훌쩍 여름이 왔다. 올여름은 상상 이상의 폭염일 거라는데 답답하고 더운 마스크로부터 언제쯤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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