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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와 찰리 Oct 13. 2019

병원비로 월급을 탕진할 순 없다.

프롤로그_최종 목표는 철인 3종 경기

글 | 미지

아뿔싸 또 일을 저질렀다. 꼼짝없이 스물일곱 전에 철인 3종 경기에 나가야만 한다. 이 사실을 주변 친구들에게 알렸다. 그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과 함께 “… 왜?”, “살 게 없어서 고생을 사서 하냐”, “벌칙이야?” 등등의 반응을 보였다. 대회 상금이 얼마냐고 되묻는 친구도 있었다. 모두 내 출전 이유에 대해 무척이나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사실 출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무시무시한 이유 같은 건 없다. 나는 오래전부터 땀 흘리는 체육인들을 부러워하곤 했는데 그들처럼 꾸준히 운동하며 몸을 가꾸기란 쉽지 않았다. 작년 겨울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로는 더욱 힘들었다. 자리만 있으면 눕기 바빴고 시간이 남으면 잠을 잤다. 몸을 사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몸이 점점 짐짝처럼 느껴졌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있듯 내 몸에는 탁한 영혼이 빠르게 채워지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멍 때리는 시간이 많아져 지적을 당하기 일쑤였으며 텀블러 닦으러 가기가 귀찮아 일회용 컵을 사용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어느 날은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내리기도 전에 먼저 들어가 자리를 차지하려는 내 모습이 보였다. 나는 빠르게 지쳐가고 있었다. 살기 위해서는 잃어버린 건강을 되찾아야 했다. 운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를 떠올렸다. 때는 바야흐로 수능을 막 끝내고 대학교 합격통지서를 기다리고 있던 겨울. 당시 나는 수시에 미리 합격한 상황이었고 수능 최저등급도 맞춘 터라 사실상 대학에 합격한 거나 다름없었다. 처음으로 아무 걱정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자유의 시간이 주어졌다.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낼까 고민하던 중에 나보다 먼저 대학에 합격한 친구가 제안을 해왔다. “미지 나와 함께 복싱해보지 않을래?” “복싱? 링 위에 올라가서 싸우기도 해야 돼…?” 겁이 많은 편은 아닌데 복싱은 조금 무서웠다. 마우스피스 사이로 피가 흐르고 있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거절의 의사를 밝히려는 순간 친구가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거기 잘생긴 사람들 많아.” 다음날 나는 친구를 따라 복싱장에 갔고 우선 한 달을 등록하기로 했다. 첫날에는 기본 스텝과 샌드백 치는 법을 배웠다. 다행히도 마우스피스를 끼고 실전처럼 대련하는 시간은 없었으나 대신 링 위에 올라가 코치와 함께 미트*를 치는 훈련이 있었다. 코치의 ‘원 투 쓰리’ 구호와 함께 미트를 있는 힘껏 가격해야 했다. 두 세트 동안 계속 펀치를 날려야 했는데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코치의 공격이 날아오기 때문에 정신을 놓으면 안 됐다. 훈련이 끝나면 온 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몸에서 독소가 빠져나간 것처럼 상쾌했다. 한 달 강습이 끝나자마자 나는 두 달을 더 신청했다. 처음으로 운동이 재밌게 느껴졌다. 매일 2시간씩 세 달간 꾸준히 하다 보니 살이 빠지고 근육이 붙었다. 그때 알았다. 건강한 육체가 자부심을 불러온다는 것을.                         현재의 나는 그때 느꼈던 건강한 자부심이 절실해 보였다. 내 몸은 운동을 시작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확실한 목표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이번 생엔 포기하려고 했던 철인 3종 경기를 눈 딱 감고 시작하기로 했다. 이 험난하고 어려운 일을 혼자서 해낼 자신이 없어 짝꿍을 구했다. 나와 내 짝꿍은 이 과정을 모두 기록하기로 결정했다. 최종 목표는 철인 3종 경기지만 대부분의 글은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 20대 보통 여자 둘이 운동하는 이야기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하지 않을지 걱정도 되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하는 마음으로 일단 꾸준히 해보려 한다. *미트: 다양한 공격과 방어 기술 그리고 실전에 가까운 움직임을 연습할 때 사용하는 복싱 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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