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지와 찰리 Oct 27. 2019

오래 살기 위해 ‘쓴다’

자책할 시간에 움직여!

글 | 미지 올여름 출간된 개그맨 유세윤과 그의 아들 유민하 군이 주고받은 질문과 답을 엮어 만든 책 <오늘의 퀴즈>는 내게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초등학생 시절 나에게 일기 쓰기란 그저 재미없고 지루한 숙제 그 이상도 이하의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일기 쓰기를 그만둔 이유

열두 살 무렵의 이야기다. 갓 임용고시를 치르고 교사가 된 나의 담임은 일기 쓰기를 숙제로 내주며 이렇게 말했다. “어제의 일을 반성하며 일기를 써보세요. 미래를 위한 다짐 한 마디를 추가해도 좋고요.” 과거의 나와 마주하는 글쓰기는 꽤나 흥미로웠다. ‘경험-반성-다짐’의 구성으로 후다닥 공책 한 페이지를 채워 나갈 수 있었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 한 줄은 어제의 잘못 또는 실수를 속죄하는 동시에 보다 성숙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이러한 글쓰기는 계속됐다. 특히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했던 사춘기 시절,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차마 할 수 없었던 말들을 일기장에 쏟아붓곤 했다. 어느 날은 문득 그동안 써왔던 일기가 읽고 싶어 져 일기장 첫 장부터 읽어 내려갔다. 글은 대개 이런 내용이었다.

  “2학기 성적표를 받았다. 1학기 때보다 점수가 떨어졌다. 왜 이것밖에 못하는 걸까. 잠을 줄이고 공부량을 늘려야겠다.” “엄마에게 별 것도 아닌 일로 짜증을 냈다. 먼저 화를 낸 건 나인데 엄마가 먼저 사과를 했다. 나는 정말 못된 딸이다. 이제부터 그러지 말아야겠다.”      

  반성과 다짐 사이에 꼭 자책을 끼워 넣었다. 돌이켜보면 지난 쓰기의 과정에는 ‘왜 난 이것밖에 안 될까’하는 자기혐오의 시간을 빼놓지 않았다. 더 중요한 것은 다짐한 내용을 한 번도 실천으로 옮긴 적이 없었다. 비슷한 실수와 같은 반성, 같은 다짐을 매번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과거와 다를 게 없는 지금의 나를 보고 있자니 나 자신이 무능력하게 느껴졌다. 일기 쓰기가 내게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됐다. 또 과거의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 나에 대한 책망으로 이어질까 봐 그 시간도 줄여갔다.

다시 시작된 일기 쓰기

그런데 최근 일기 쓰기를 다시 시작했다. 과거의 나와 마주해야 할 이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새로 시작한 일기에는 자책 대신 구체적인 각오를 더했다.

아이폰에 적은 일기. 거창하게 쓰지 말자. 약속은 지킬 수 있는 범위에서만, 펙트만 쓰자.


지난 15일 인바디 검사를 한 결과. 체성분 종합점수는 100점 만점에 66점. 체지방량이 29.4kg이나 된다. 적정 체중이 되려면 여기서 15kg을 감량해야 된다. 현재 BMI 지수는 ‘과체중’이며, 체지방률은 ‘비만’으로 나타났다. 신체균형 평가는 모두 ‘균형’으로 확인됐다. 상체, 하체, 상하체 모두 균형잡힌 비만이란 소리다. 다행인 것은 골격근량은 표준이다. 힘은 좋은데 지구력이 약하다. 앞으로 유산소 운동을 위주로 체지방을 줄여나가야 한다.    

그날 하루 먹어 치운 것들도 기록했다. 대체로 아침은 거르고 점심은 거하게 먹었다. 회사에서 습관적으로 먹어치운 간식은 까먹고 기록하지 못했다.

사실 일기를 ‘쓰는’ 행위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호기롭게 적어나간 과거의 다짐들이 그저 글자로만 남아있을 때 그 순간을 마주하기 민망했을 뿐. ‘변하지도 않을 거면서 무슨 약속은 이렇게 많이 한 거야!’라는 자책이 될까 봐 무서웠을 뿐이다.   이번엔 내 몸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사실만을 기록하려고 한다. 어제의 약속을 못 지켜서 ‘난 왜 이것밖에 안 되는 인간이지…’라는 자책이 나도 모르게 또 튀어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진짜 걱정해야 할 대상은 현재의 ‘나’다. 이대로 가다가는 성인병으로 돌연 세상을 뜰 수 있다. 자책 대신 목표를 되뇌자. 체지방 15kg… 철인 삼종 경기… 무병장수…  

작가의 이전글 병원비로 월급을 탕진할 순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