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샌델의 책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고 태어나는 순간부터 공평하지 않은 삶에 대해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지금까지 그 공평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저항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저항은 세상에 대한 불만과 내 삶에 대한 포기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나 스스로 내 인생을 비참하게 하는 일. 그동안 내가 살아온 방식이었다.
반년 전부터 독서모임에서 알게 된 형님과 2주에 한번 철학 공부를 한다. 처음에는 서양철학사 전체를 다룬 가벼운 책으로 시작해 지금은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불리는 니체의 삶과 철학을 공부하고 있다. 요즘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서로 같이 읽고 한 문장 한 문장을 함께 해석해 나간다. 한번 시작하면 3시간이 넘게 걸린다. 알 수 없는 단어의 의미를 생각하려고 애쓰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기도 하다. 짧은 한 챕터에 한 시간을 매달린다. 보통 3개의 챕터를 공부하는데 끝나고 나면 뭔가 후련한 느낌까지 든다. 평범한 직장인과 조기퇴직을 하고 주식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두 남자가 생뚱맞게 의기투합하여 철학을 공부하다는 게 나도 좀 이해가 안 가지만 지금은 서로에게 삶의 에너지원이 되고 있다.
갑자기 이 얘기를 하는 건 그동안 공평하지 않았다고 생각한 내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니체의 철학 중에 '영원회귀'라는 것이 있다. 우리의 인생은 결국 영원히 되풀이된다는 것. 그래서 오늘의 태도와 생각이 인생 전체를 만든다는 것. 그동안 그냥 멋진 명언쯤으로 생각했던 '아모르파티(Amor fati:운명에 대한 사랑)'가 마음속 깊이 들어왔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오늘이라는 시간.
그 운명의 시간을 사랑하는 것.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적대적 시선을 고수하며
스스로 주체적으로 살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공평한 시간.
그럼 나는 그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 요즘은 그 고민으로 가득하다. 시간에는 많은 요소들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의 색깔, 온도, 농도 등.. 다소 관념적인 부분 같기도 하지만 하나의 개념은 많은 속성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그 시간의 속성 중 나는 농도에 집중하고 싶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을 천천히 복기해 보며 생각했다. 어떤 시간은 너무나 옅어서 기억조차 나지 않는 시간이 있은가 하면 밀도가 너무 높아서 그 순간에 취하는 시간이 있다. 어찌 보면 짙은 농도의 시간은 우리를 버겁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결국 우리는 그 짙은 농도의 시간을 '삶의 의미'라는 단어와 치환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회 초년생까지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나를 바라보며 살아왔다. '그냥 그런가 보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사실 의미를 두면 더 힘들일이 많았기에 내 감정과 내 표정을 숨기며 살아왔다. 매일 나에게 주어지는 오늘이라는 시간은 그냥 지나 보네야 하는 것일 뿐 큰 의미가 없었다. 모든 걸 적당히 했다. 유리천장 같았던 삶의 성공은 시간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소극적으로 만들었다.
벌써 15년째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한다. 어느 순간부터 지하철을 타면 같이 칸에 탄 사람들을 유심히 보는 버릇이 생겼다. 이상하게 궁금했다.
저 사람들은 지금 어디로 가는 것일까?
저 사람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저 사람들의 하루는 어떨까?
나이가 먹어서 하는 오지랖과는 다른 느낌이다. 내 삶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면서부터 다른 사람의 삶도 궁금해지기 시작한 거다. 내 시간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들의 시간에도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거다. 하루에도 수백 명을 스쳐 지나간다. 그 한 명 한 명의 인생이 스쳐 지나간다. 이런 생각을 하면 갑자기 가슴이 벅차오른다. 서른이 훌쩍 넘어 책을 좋아하면서 느꼈던 감정과 비슷하다. 책 한 권에 담긴 누군가의 시간들. 그 시간을 단 몇 시간 만에 읽어 내려가며 얻었던 것들. 그 깨달음. 이렇게 사람이든 책이든 시간을 담고 있는 모든 것에는 왠지 모르게 뭉클한 무언가가 있다.
이제 시간은 나에게 뭉클해지는 무언가 이다. 그 시간의 농도를 짙게 하고 싶다. 더 큰 감동이 담긴 짙은 시간을 살고 싶다. '줌 아웃'만 했던 내 삶의 소중한 시간을 최대한 '줌 인'하며 살고 싶다. 더 선명하게 보고 더 똑똑히 기억하며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것에 진심이어야 한다.
내 아픔도
내 어리석음도
내 부족함도
내 한계도
진심으로 사랑해야 한다.
결국 시간의 농도는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짙어지게 되어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