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힘겹게 눈을 뜬다.
또 하루가 시작된다.
눈으로 빛이 들어오는 순간부터
시간은 흐르고 내 눈은 하루를 찍기 시작한다.
매일 우리는 일인칭 시점으로 살아간다.
'내가 눈 뜨고 보는 세상이
내 세상이 된다.'
영화나 소설이 흥미로운 건,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스토리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시점에서 인물들의 행동이나 심리를 묘사해 주기 때문이다. 각각의 인물들은 전체적인 상황을 알 수 없다. 그들은 각자의 상황에서 현실을 살아갈 뿐이다. 그 종합적인 상황은 보는 사람만 알 수 있다. 가끔 주인공이 뻔히 보이는 '악의 구렁텅이'로 들어가려 할 때 나도 모르게 소리친 적이 있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난리를 치더라도 주인공은 그대로 고통을 겪게 된다. 왜냐면 주인공의 세상은 눈 앞에 보이는 게 전부이기에 때문이다. 그런 주인공의 모습을 보고 속이 터져하고 안타까워하지만 결국 현실에서의 내 처지도 그 주인공의 처지와 다를 게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헛헛해진다.
내 인생을 이렇게 영화나 소설의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너무나 흥분된다. 내 세상을 중심으로 모든 사람들의 세상을 조망할 수 있다면 세상에는 오해와 어긋남이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건 나에게만 그 특권이 주어졌을 때의 얘기다. 만약 모든 사람이 같은 능력을 갖는다면 또 그렇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어쩌면 서로의 조망력 때문에 더욱 불규칙한 상황들이 생길 것이다. 그럼 아예 모르고 살았을 때랑 같은 결과를 낳게 되는 게 아닐까? 결국 우리는 현실에서 3인칭 관찰자 시점이 아닌 일인칭 시점으로 살아가고 있다. 각자의 작은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전부인 것이다.
우리는 정말
같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단 하나이고
모두가 그 세상에서 함께 살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 모두가 같은 시간을 살고,
지구라는 별에서 같은 세상을 살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물리적인 요건을 배제한다면,
우리는 사실 각자의 세상에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전 세계 80억개의 세상.
각자의 다른 세상이 만나는 순간.
서로의 세상은 교집합을 이룬다.
그 교집합 안에서 지지고 볶으며 우리는 살아간다.
잠시 같은 세상을 공유하다가도 인연이 다하면
이내 서로의 세상을 놓아주게 된다.
잠깐 교집합을 이뤘다고
각자의 세상을 다 알 수는 있을까?
절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오해'는
관계의 디폴트 값인 것이다.
오해가 당연한 세상에서
우리들은 모두가 다 내마음 같은 거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당연히 힘들지 않겠는가?
그 힘듦은
자신의 세상으로 다른 사람의 세상을
재단하고 판단하려 하는
자기중심적 세계관 때문이 아닐까?
그래.
우리 모두는 각자의 세상에 살며,
아주 잠깐 인연의 교집합에서 만날 뿐이다.
우리는
같이 살아가지만
같이 살아가지 않고 있는 것이다.